황상진(독문08)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세상은 의외로 안온한 곳이다. 병에 걸렸는데 보험사가 발뺌을 하거나,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잘리거나, 자던 중 갑자기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엑스파일>은 미스테리 드라마인 한편, 다른 한편으론 그런 ‘사고들’에 대한 드라마였다. 별 것 없을 거라고 믿는 평범하기만 한 오두막 속에 실은 돌연변이 괴물이 살고 있어 누군가를 죽여버렸지만, 그 사건은 은폐되어 당신은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갈 것이란 식의 이야기.

정작 나를 이제껏 평생에 걸친 충격에 빠뜨려놓은 것은, 예컨대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보고 듣고 이해한 그대로를 믿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 힘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모두를 속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설사 누군가가 ‘사고’를 당한들, 다수의 안온한 세계를 위하여 그 사고는 너무도 쉽게 묻혀버릴 수 있을 거라는 사실.

멀더는 그 사실들 속을 질주했더랬다. 무려 FBI라는 거창한 직업을 가진 채,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피해자를 향해 서슴없이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폭스 멀더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 엄연히 일어난 ‘사고’를- 벌어진 세상의 틈에서 얼핏 드러난 불쾌한 진실을- 자신의 안온한 세계를 위해 알량하게 부정해버리거나 하지 않는, 정직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엑스파일>의 두 번째 극장판 <나는 믿고 싶다>의 멀더 또한 이전의 그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때, 멀더는 어른이 되는 것을 포기한 어른이다. 부조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른들과 타협할 생각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그것이 편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편해지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만 그렇게 살아가는 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참 많이 고맙다. 이 땅위에 오늘도 여전한 숱한 멀더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