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플란다스의 개’라 하면 원작 소설보다도 만화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들에게 ‘파트라슈’를 부르는 네로의 목소리는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플란다스를 누비던 네로와 파트라슈의 모습이 어린 동심의 기억으로 남아 있겠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일본의 닛폰애니메이션이 영국 소설가 위다의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KBS에 방영되면서 유명해진 작품입니다. 이 만화영화가 수많은 동화 중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네로와 파트라슈의 아름다운 비극적 결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예술가를 꿈꿨던 네로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두 그림,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려짐>을 보며 죽어가는 마지막은 그 슬픔을 더욱 극대화시키죠. 이 때 어두운 성당 안에서 빛을 발하는 두 그림은 17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루벤스의 작품입니다. 그 위상에 걸맞게 호화롭고 화려하며 장식미가 뛰어난 바로크 양식과도 같은 인생을 산 화가로 유명한 루벤스. 날로 높아가는 명성과 수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화려한 그림들을 그려나갔던 루벤스의 대표작인 두 그림 또한 그러한 삶을 반영하듯 특유의 장대하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합니다.

이런 역동적이고 웅장한 구도와 관능적인 색채는 귀족주의 그림의 특징을 이룹니다. 특히 루벤스의 그림은 유명세를 타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볼 수 있었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커튼에 가려져 ‘금화 한 닢’이 있어야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네로에게는 ‘루벤스의 그림을 본다는 것 자체’가 정말 꿈에 불과했죠. 그렇기에 추운 겨울 눈보라를 해치고 두 그림을 보고서야 고이 잠들 수 있었던 고단한 네로의 일생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화려하고 웅대한 예술을 펼쳐간 루벤스의 일생과 대비되면서 문화 예술을 아무나 즐길 수 없었던 그 당시 사회상이 그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은 우리의 생각만큼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그림 속 천사의 인도로 하늘에 올라가는 네로의 모습은 여전히 명랑한 모습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꿈을 이뤘다는 밝은 표정으로 평소에 뛰놀던 플랑드르의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빛냅니다. 우유배달로 하루 한 끼도 힘들던 당시에 가지기엔 너무 벅찼던 예술가의 꿈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