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시사인 초대 편집국장

기자명 진가연 기자 (iebbi@skku.edu)

리영희 교수 강의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들어서게 된 기자의 길. 문정우는 시사저널 창간 당시부터 참여했던 경륜 있는 기자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시사저널’사태를 겪으며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웠고 결국 <시사IN>이라는 새로운 주간지를 창간하고 초대 편집국장이 됐다. 시사IN은 현재 한국에서 꽤 성공한 독립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깊이 있는 취재를 해 독자들에게 질 높은 기사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 진정한 기자의 모습을 위해 고민하는 언론인 문정우를 만나 대한민국의 독립언론에 대해 들어봤다.

# 기자 문정우와 리영희 교수

■ 기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생 시절 리영희 교수의 강의를 듣고 나서 부터라고 보면 된다. 그 당시는 ‘서울의 봄’이라고 해서 전국 곳곳에서 민주화를 한창 요구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최고 지성인이라고 꼽히는 리영희 교수가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우리 학교에서 리영희 선생은 첫 강의를 했다.

그는 대뜸 왜 기자를 하려고 하느냐고 묻더라. 처음에는 단순히 신방과 왔으니까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교수님은 기자를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기자가 됐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니까. (웃음)

■ 기자가 되지 말라?

물론 선생님은 진정한 기자가 될 것이 아니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기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기자라고 하면, ‘제대로 하면 감방가고 아니면 건달’이라는 인식이 컸다. 실제로 그 때 면세점(갑근세를 안내는 사람)이하의 월급을 받는 기자들이30~40%나 됐다. 그만큼 생계가 힘들기 때문에 어디 가서 천대 받거나 남을 뜯어먹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때문에 기자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았고 정말로 열심히 기자답게 일하는 사람은 배도 고파야 하고 감방도 가야 했다.

리영희 교수님은 강의실을 가리키면서 “봐라! 여기 한국 기자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당시 한국에서 핍박받던 최고의 지성인이 풀려나서 강의를 한다는 소식에 외신 언론들의 취재 열기는 대단했었다. 아마 강의를 듣던 우리 보다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사람이 강의를 하는데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기자를 택한 어떤 사회적 책임감이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기자를 할 때만 해도 책임감을 느끼기 보다는 단순히 리영희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 보여 결심한 것이 크다. 그분은 한국 언론계에 전무후무한 존재다. 지금에 와서는 그 양반이 쓴 책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모든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이는 여담이지만, 그는 자기가 출입하던 외무부와 내무부 도서관 대부분의 책에 빌려간 흔적을 남겼다. 그만큼 어느 부서의 어떤 관료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항상 메모를 통해 그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그와 관련된 여러 일화 중에 기자로써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한번은 리영희 교수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미국 정부가 이 사람은 원전(비밀 문서)을 본 것 같다며 어떻게 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모진 고문 끝에 난 결론은 그는 원전을 본 게 아니고, 미국 신문에 한 줄 씩 난 기사를 보고 그것에 자신의 외교적 상식을 입혀서 완성한 것이었다. 나는 이처럼 기자란 단순히 단편적인 사실들을 묶어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들에 자신의 지식·상상력·통찰력을 더해 큰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사IN 그리고 독립언론

■ 1년 전 대한민국 언론을 떠들석하게 만든 ‘시사저널 사태’가 있었다. 생계를 내팽겨 치고 투쟁에 임했는데 어떤 각오였나

가장으로서는 참 무책임했다.(웃음) 원래 시사저널은 처음부터 자본과 편집국간의 묵계가 있었다. 자본은 자본만 대고 절대로 편집국에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그동안은 큰 문제없이 전통과 문화를 쭉 이어왔다. 그러나 IMF이후 새로운 사람이 우리 회사를 인수하게 되면서 초반에는 어느 정도 기존의 묵계가 지켜오다가 그 사건이 터졌다. 이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기존 묵계를 어기겠다는 신호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편집국에서는 이걸 받아들일 경우 앞으로 우리의 신념대로 기자 생활을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기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정당한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생계도 중요했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앞으로 계속 무너질 것이 보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 시사IN 창간 1주년. 처음 마음가짐이 그대로인지 궁금하다

초심보다는 많이 풀어진 것이 사실이다. 우린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시작했다. 다행히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모두들 1년을 못 넘긴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결국 이만큼까지 왔고 잘하면 더 일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다소 여유가 생긴 것 같다.

■ 독립언론을 표방한 시사IN, 광고의 압박과 사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독립’이라는 가치를 실현 했나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세운 기준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우선 기업의 지배 구조 자체가 독립적이다. 어떤 제왕적인 오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주주라 해봐야 17%밖에 없고 전체적으로 700명 가까운 소액주주로 이뤄져있다.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민심에 반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유로운 기사를 써도 문제될 일이 없다. 두 번째 목표로 세운 것이 수익구조의 건전함이다. 나는 언론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기업은 굉장히 건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독립언론이 제대로 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사저널에 있던 시절 정기구독 수익은 광고 수익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요즘 기성 언론을 보면 사실상 정기구독 수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광고비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언론은 절대로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고는 언론의 예방주사가 아닌 광고일 뿐이다.

■ 시사IN 기사들은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본다는 의견이 있다. 이것도 ‘독립언론’이라는 시사IN의 창간 가치와 연관이 있나

창간 가치와 연관이 있기 보다는 기자 자신들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지금 시사IN기자들은 거의 대부분 시사저널에서 온 기자들이다. 아무래도 기자들이 한 번 된통 자본 권력의 바닥에 떨어져 보니 성향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한 번 어려움을 겪고 나니 약간의 운동권 같은 색채가 조금 강해졌다. 그래서 옛날보다 삐딱하다,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점은 굉장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기자들이 어쩔 수 없이 변하긴 했지만 기자는 정치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언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때문에 좀 더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독립언론으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앞으로 더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단순히 시각이 다른 기사를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깊이 있는 탐사로 승부를 보는 것인데 이를 위해 취재에 정말 많은 돈을 쓰고 싶다. 그래야만 기사의 질이 좋아지고 독립언론으로 차별성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독자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조금 더 시간·돈·노력을 투자해서 질 높은 기사를 제공해야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보다 1~2억만 더 투자해서 좋은 기자를 확보하고, 더 많은 취재원을 만나 심층취재를 해 기성언론에서 보지 못한 기사 및 사진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시사 IN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인디펜던트> 창립자와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는 ‘이윤없이 독립없다’라는 말을 했다. 독립언론의 위업을 보여주려면 건전한 수익구조 창출을 해 취재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기자의 진실한 이야기

■ 언론계의 현주소는 어떤가

한마디로 무참하다. 각종 매체들의 수많은 낙하산 인사들. 정부에서 그들을 높은 자리에 앉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결국 방송국을 장악하려는 속셈 아니냐. 문제도 있었지만 진실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PD수첩, 미디어 포커스, EBS 지식채널 e까지 모두 존폐의 위기에 있다. 권력과 자본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그런 보도를 했던 프로그램들의 현 상황은 정부의 엄청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언론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다.

■ 그렇다면 언론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정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부는 언론과 친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이는 정당 자체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 엊그제까지 기자며 언론계에 있던 사람들을 데려다가 정당의 인사로 쓰는 법이 어딨느냐. 언론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언론인은 언론생활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언론인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

나도 ‘기자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열심히 할 테니까.(웃음) 여전히 기자는 힘들고 배고픈 일이며 기자는 힘들고 배고파야만 제대로 할 수 있다. 요즘은 기자가 별 인기직종이 아닌데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기자라는 직함을 정치를 위한 어떤 디딤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기자가 하고 싶은 사람만 각오를 하고 열심히 하길 바란다.

■ 시사IN 편집국장으로의 임기가 끝났다.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

일단 좀 쉬고 싶다. 난 굉장히 게으른 사람인데 이 일을 맡으면서 1년 동안 너무 부지런히 산 것 같다. 일단 쉰 다음에 나중에 경비나 하던가 해야겠다. 우리 시사IN 기자들이 워낙 사납게 글을 쓰니까 경비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하하하.

■시사IN 초대 편집국장

 

 

 

 

 

 

 

 

 

 

 

 

 

 

글 : 진가연 기자 iebbi@skku.edu
사진 : 이가은 기자 hello212@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