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쇼펜하우어

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인생론』쇼펜하우어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다만 생존의지가 시키는 대로 고통에 대하여 벌이는 휴전없는 싸움의 연속이며, 인간은 그러다가 허무하게 손에 무기를 든 채 죽어가는 존재이다”

대표적인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원제 : 부록과 보유집)』에서 정의된 인생은 이처럼 ‘고통과 벌이는 휴식 없는 전쟁’이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행복에 대해 당대 어느 철학자보다 ‘삐딱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어느 누구보다 재치있고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언제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있었다. 사교적인 활동을 즐겼지만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 않았던 그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언제나 2인분을 시켜 남들이 자신의 테이블에 앉지 못하게 했다. 극도로 인간과 그 삶을 싫어했던 쇼펜하우어에게 인생이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책머리서부터 그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 괴로움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의지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혹시 세상만사가 아무 문제 없이 풀린다 해도 권태라는 것 때문에 삶은 언제나 괴롭다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먹고 사는 빈민층은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죽어가지만, 100년을 살아도 모자란 것 없는 대부호들은 무료함 속에 자살을 택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삶의 속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생존의 욕구만이 가득한 인간에게 “사랑은 성욕의 대체물”이며, “우정은 의존감과 이기심의 합작품”이라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날카로움을 넘어 독설에 가깝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비참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행복이라는 거대한 이상은 놓지 말라고 말한다. 단,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행복은 환경이나 소유에 한정된 ‘고통의 최소화’보다 더 높은 관념의 것이다. 인간이 결코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얻은 행복은 ‘거지가 손에 넣은 푼돈’과 같다. 목표한 바를 얻으면 행복해지기는커녕 더 허무해지고 ‘기대 이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돼버리는 것이다. 즉, 스스로가 아닌 ‘주위’에서 행복을 찾을수록, ‘환경’에 스스로를 굴복시킬수록 행복은 더욱 찾기 어려워진다.

“행복이란 인생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명랑함을 발전시키는데 있다”는 구절은 쇼펜하우어가 행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합리화시키는 행위 자체 속에서, 즉 스스로가 행복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부산물인 행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전의 행복론이 인생이라는 환경적 측면, 즉 수동적 측면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했다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은 오히려 스스로의 진정한 통찰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에게 삶이란 가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행복이란 소중하다. 나의 삶이 괴롭듯 세상이 고통과 악으로 가득차 있더라도, 행복이라는 고귀한 이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적 선’인 것이다. “나는 사람으로 사느니 차라리 개가 되겠다”고 역설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그의 세계관이 단순한 비관론과 독설로 끝나지 않은 것은 한 줄기의 ‘희망’이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