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서툰,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치료의 손길

기자명 이승아 기자 (singav@skku.edu)

남쪽으로 난 창으로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오고, 방안에는 기분 좋게 햇빛을 맞고 있는 할머니들과 “안녕하세요. 할머니” 라며 진료권을 나눠주는 하얀 가운의 의사선생님들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그리 넓지 않은 평화의 집. 방 세 칸에 치과와 진료실, 약국과 간호실이 자리 잡으니 진료를 위한 대기실이 간신히 마련됐다. 시선을 조금 돌리자 진료준비로 분주한 학생들 사이로 ‘구구진료회’라고 적힌 약 봉투가 눈에 띈다.

많은 사람(九)을 구한다는(求) 뜻의 구구진료회. 서울대에서 시작된 이 동아리는 현재 뜻을 같이하는 △성균관대 의대 △한양대 의대 △이화여대 간호학과와 약학과 △숙명여대 약대 학생들이 함께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중계동 사회복지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최근에는 장소를 미아리 강북 ‘평화의 집’으로 옮겨 그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방학 중에는 산골지역과 같이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곳에 찾아가 일주일 동안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활동에 필요한 모든 재정은 선배들의 후원이나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우들의 자발적인 회비로 이뤄진다.

진료를 기다리는 할머니들께 어디가 아파 오셨냐고 물어보니 “안 아픈 데가 어디 있어. 나이 먹으니까 허리도 아프고…….”하는 대답이 한숨과 함께 돌아온다. “병원에 가도 소용없어. 여기 오면 손자 손녀 같은 선생님들이 얼마나 신경을 써주는데” 이내 할머니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찾아온 할머니는 열 분 남짓. 하지만 3시간이 넘도록 진료는 끝날 줄 모른다. 아픈 곳만 물어보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는 요즘 병원과 다르게 이 얘기 저 얘기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들. “오늘은 어디가 안 좋으세요? 약 꼬박 꼬박 챙겨 드셨어요?” 혈압을 재는 손에 정성이 묻어나고, 할머니들은 이 얘기 저 얘기를 풀어 놓는다. 다른 의료 동아리에서는 보기 힘든 치과 치료에서부터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건강 상담까지 꼼꼼히 살핀다.

현재 이 동아리는 우리 학교 의과 3학년 김태호 학우가 회장을 맡고 있다. 의사가 되거든 일주일에 한 번쯤 남을 돕는 하루를 꼭 남겨두고 싶었다는 김 학우. “큰 도움이 돼드릴 수 없어서 아쉽죠. 하지만 설사 해를 끼치게 될까봐 섣부르게 도움을 드릴 수도 없어요.” 그래도 씻은 듯이 나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몸이 좋아지시는 할머니들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다음 진료가 있을 때까지 약 잘 챙겨 드시라는 당부의 말을 뒤로 한 채 고갯길을 천천히 내려가시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미래의 슈바이처들에게도 그날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담은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