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기자명 이승아 기자 (singav@skku.edu)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살인마 조커는 시민들이 탄 배와 죄수들을 호송하는 배에 서로를 폭파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넣어두고 자정까지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시키는 쪽을 살려주겠다고 협박한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정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당신이 살기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 내가 먼저 기폭장치를 누르는 이기적인 선택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경제학적 지식에 따르면 항상 이기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합리적인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다. 나 자신의 편리함과 이익을 위한다면 어차피 이뤄질 청소는 하지 않는 것이 낫고, 동창회를 할 때 내가 싼 것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같은 액수의 돈을 내야하므로 비싸게 먹는 편이 낫다. 하지만 우리는 거리에서 헌혈을 하고, 아침에 먼저 나와 사무실 정리를 도맡아 하는 등 경제학의 메마른 시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타적 인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기적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사회에서 ‘이타적 인간들’은 어떻게 존재해 온 것일까.

우리 주위에서 가장 이타적 인간을 꼽으라면 ‘부모님’일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키움으로써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는데 헌신적으로 아끼고 도와준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이런 행위가 자기 자신과 동종의 유전자가 번식할 수 있도록, 한 개체가 혈연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를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종족 번식의 본능이 엄마가 아픈 딸을 간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반복 호혜성 가설은 친족관계가 아니더라도 반복해서 서로 혜택을 베풀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과일가게 아저씨가 “오늘은 사과가 안 좋으니 다른 걸로 가져가세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품질에 대해 털어 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속여서 팔면 자신의 이익이 될 테지만 당장 속여서 단기적 이익을 내는 것보다는 속이지 않음으로써 앞으로의 장기적인 거래를 돈독히 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본적도 없는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까지 설명하지는 못 한다. 이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집단선택’이다.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가 많은 집단일수록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이타적 행위자가 많은 집단이 살아남아 지배적 지위에 오르게 되고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이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다크나이트에서도 위기가 닥치자 도시의 주요 도로에는 먼저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배에 탔던 그들은 끝내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았고, 그 결과 모두 살아남게 된다.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의 대결. 우리는 언제나 이기적 인간의 승리를 예견하지만 실제 우리 세상은 이타적 인간의 승리로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