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선영 기자 (sun3771@skku.edu)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다. 그런 내가 이 답답한 세상을 바꾸고자 할 땐 많은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을 만큼의 지위와 권력이 동반돼야 한다. 아무런 권력도 지니고 있지 않은 나는 공허한 메아리 속에서 더 작고 연약한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은 미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해봤자 어차피 안될 거라면 사회에 순응한 채 편하게 살아가자는, 이러한 인식 속에 우리들은 활력을 잃어간다. 젊음과 패기로 활활 타올라야 할 대학생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학점과 취업에만 매몰돼 생기 없는 동태눈이 되어버린 현실은 모두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런데 한 전공 수업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힘’이라는 주제 아래 Star5팀을 결성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비록 한 명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5명의 사람만 모이면 파워가 생기고 이 힘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는 것도 힘든데 나와 관련이 없는 수많은 타인들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단 주제가 매우 넓은 의미의 ‘변화’였기 때문에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대인들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인맥쌓기팀이나 성균관대 주변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잔반사용을 금지시키겠다는 팀, 이외에도 우리 모두 친구가 되자는 다단계 프로젝트 등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제기됐다. 그리고 필자 역시 스스로의 선택으로 한 팀에 소속됐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이 ‘변화’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요구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효과적인 기제는 무엇일까. 촉발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과연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해봤자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꾸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그러던 중 ‘Pay it forward’라는 영화를 접했다. 왠지 나의 공허한 마음에 대답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영화 속 주인공 트레버는 남편의 충동적인 매질과 삶이 주는 무게에 못이겨 알코올 중독에 걸린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그는 담임선생님 시모넷으로부터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것을 행동에 옮겨보라”는 주문을 받는다. 그리고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pay it forward. 자신이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다시 각각 세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 나가다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이런 유토피아적인 발상은 실제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선행을 낳으면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의 죽음에 애도하는 촛불행렬이 줄을 잇는 장면은 전율을 느끼게까지 한다.
사실 과제를 내주었던 영화 속 시모넷 선생님은 정작 본인은 세상을 바꿀만한 어떤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완강한 현실에 대한 체념의 정서가 잠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순된 현실에 저항하고 개입할 의지를 포기한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꾼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 직접 움직인 트레비였다.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가 힘든가봐요. 그래서 결국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자신에게 지고 마는 것이겠지요. 두려움 속에서 시간낭비 하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작은 소년의 목소리가 하루 종일 울림이 되어 남아있다. 이로써 필자는 이제 겨우 마음 속에 변화를 위한 작은 부싯돌 하나를 켰다. 이 약한 불꽃을 지켜나가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정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한 지하 묘지 앞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2004년 한 호주 청년이 시드니에서 시작한 작은 행동은 전 세계적인 프리허그(Free Hug) 운동을 낳았다. 그렇다. 사회는 작은 힘에도 분명 변할 수 있고, 그 변화의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마주 선 사람만이 비로소 작은 거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