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바야흐로 21세기, 현대의 여성시대는 ‘벨 에포크’시대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벨 에포크란 ‘좋은 시대’, ‘아름다운 시대’를 뜻하는 프랑스말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전무후무한 풍요와 평화를 누렸던 파리의 시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남성과 견줄만해진 이 시대는 ‘여성의 아름다운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 벨 에포크 시대에 그려진 그림,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꿈> 속 여인도 지금까지 자신을 억눌러 왔던 사회를 향해 한껏 당당한 모습으로 마주합니다. 턱을 괴고 정면으로 치켜든 고개와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는 시대의 치열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런 그녀의 옆에 놓여있는 볼테르의 대표작 『캉디드』는 그녀의 고민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순진한, 순박한’을 뜻하는 캉디드, 그 이름 그대로 순진한 낙천주의를 가진 주인공과 보기 힘든 비극적인 경험담이 극단적으로 배치된 이 소설에는 두 가지 사랑이 눈길을 끕니다. 바로 이상주의적인 소설에나 어울릴법한 사랑을 꿈꾸는 캉디드의 모습과 성적 충동, 강간, 매춘이라는 잘못된 성 욕망에 사로잡혀 여성들을 짓밟는 그외 인물들의 모습이죠. 특히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 파케트, 퀴네공드, 노파의 운명은 후자에 휘둘리는 당시 여성들의 암울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요리를 하고 세탁을 하는 첩, 창녀, 하인으로 남성의 욕구와 필요의 대상으로만 존재합니다. 퀴네공드를 비롯한 이 여성들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며 농락당해야 했던, 순환되는 탐욕의 대상으로 묘사될 뿐인 거죠.

그러니 ‘내가 겪은 불행만큼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랑하듯 말하는 그녀들의 일생은 ‘쓰레기장에 내다 버릴만 했던’ 당시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에게서 희망이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죠. 그럼에도 주인공 캉디드의 순수한 사랑으로 악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결말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한 집단에서 훌륭하게 과자를 구워내고 수를 놓으며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니까요. 그림 속 여인 또한 이런 『캉디드』 속 옅은 희망을 읽은 걸까요? ‘끔찍하게 불행했기에 마음의 문이 거의 닫힌 퀴네공드’의 시대를 기억하는 여인의 공허한 눈빛에서, 세상과 미래를 향해 아직 남아있는 ‘꿈’이 아스라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