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인어공주>

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현대에 인어공주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일단 목소리를 잃어버렸으니 재능을 잃어버려야 겠고, 왕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했으니 러브스토리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품이 돼서 바다에 흩어졌으니 모든 걸 잃은 가녀린 소녀다. 노트에 끄적거린 인어공주 캐릭터를 다시 들여다보자. 안데르센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쉽지 않은 삶’이라는 교훈을 주려고 했다면 인어공주는 실패작이다. 꿈이 이뤄지지 않는 스토리는 교훈이 아닌 좌절만을 낳을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어공주>의 ‘인어’ 알리사는 현대판 ‘인어공주’로서 참으로 바람직한 캐릭터다. 러시아의 한 시골마을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알리사는 배를 타고 나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가난한 소녀다. 그러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자 집에 불을 지르고 영원히 말을 하지 않겠다며 입을 닫아버릴 정도로 독종이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장애학교에 입학시켜버리지만 그 속에서 알리사는 소원을 빌면 이뤄지는 초능력을 우연히 얻게 되면서 꿈을 하나씩 이뤄나간다. 시골을 떠나고 싶다며 태풍을 일으켜 마을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알리사는 꿈에 그리던 모스크바 땅을 밟는다.

물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살벌한 모스크바에서의 삶이 녹록하진 않다. 돈에 치이고, 시위대에 치이고, 심지어 사랑이라고 믿었던 달을 파는 부자 샤샤의 바람기에도 치인다. 심지어 집은 자본주의의 상징인 광고 현수막에 가려진다. 그래도 관객들은 마트에서 향수로 물총을 쏘고 집을 가린 현수막을 찢어가며 밝은 햇빛을 쬐고자 하는 알리사의 모습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시종일관 영화가 놓지 않은 희망의 끈 덕분에 ‘다소 어둡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삶’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판 인어공주를 그려본 노트로 다시 시선을 옮겨보자. 인어공주는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다. 아무리 밝고 힘차더라도 그녀는 가난하며 출신도 보잘것없다. 애시당초 자본주의를 이겨내면서 성공하는 인어공주의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인어공주>의 마지막 3분을 직시한다면 ‘쉽지 않은 삶’이란 교훈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은 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인어공주의 모습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