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수 기자 (ibdest@skku.edu)

1960년대의 가난한 분단국가, 꿈 많은 젊은이들이 동생들 대학공부 시키고 번듯한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꾸며 독일행을 결심했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시절에 선발됐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었다.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파견되기는 했지만 독일에서의 월급은 한국의 6~7배였고, 해외에 나가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쟁률만 수십대 일. 50년대 말부터 77년까지 광부는 약 8천 명, 간호사는 1만 명이 파견됐다.

그러나 타국에서 그들은 동양인 외국인 노동자들일 뿐이었다. 독일인 광부들이 일하는 것보다 깊은 지하 1000m에서 40도에 달하는 열기를 이겨내야 했고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거나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간호사들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제 그들 중 일부는 독일에서, 일부는 조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독일마을은 바로 이 독일교포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독일식 건축양식으로 건물을 지어 조성한 마을이다. 남해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있는 이국적인 모습의 독일마을, 교포들의 삶 속에 간직하고 있는 타향의 흔적을 담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