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Family라는 영어단어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흥미를 끄는 가설이 있습니다. Family가 바로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약자라는 설인데요. 그만큼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가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스페인 문학 『남쪽으로』에 나오는 아버지 ‘환’과 딸 ‘클라라’에게서 Love는 커녕 가족이라는 말조차 찾기 힘듭니다. 아버지는 딸의 사랑을 애타게 구하지만 클라라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경멸. 왜냐하면 환은 클라라가 어릴 적 죄를 짓고 양육권을 박탈당한 탓에 자식에게 가족의 따뜻함을 물려주지 못한 0점 아버지기 때문이죠. 그렇게 4년 동안 남남처럼 지낸 부녀에게 법원은 단 15일의 시간만을 부여합니다.

이 15일의 시간동안 딸과 화해하기 위해 환이 선택한 방법은 남쪽으로의 여행입니다. 비록 가진 것 하나 없는 환이지만 클라라를 위해 정말 온갖 행동을 서슴지 않죠. 처음에 클라라는 환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해 했지만 여행이 진행될수록 닫혔던 마음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바다에 다다라 환이 연주하는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을 듣는 순간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그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리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이든의 인생이 클라라의 불우한 과거와 비슷한 길이었다는 점이죠. 하이든은 5살 때부터 친척집에서 음악교육을 받느라 가족과 생이별을 했고 28세에 마리아 켈러라는 악처를 맞이하게 되면서 오랜 시간동안 가족의 온기라고는 단 한줄기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나이에 레베카 슈레테라는 참된 사랑을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마련하죠. 이 시기에 작곡된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은 늦은 나이에 찾아온 안식처에 대한 느낀 포근함과 감사의 마음이 빚어낸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곡은 힘차면서도 안락한 트럼펫 소리로 클라라와 하이든의 가슴 아픈 과거를 쓰다듬어 주죠.

『남쪽으로』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위에서 말한 Family의 어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말이죠. 왜냐구요?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것을 클라라와 환, 그리고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이 증명했으니까요. 아마 마지막에 클라라가 환에게 남긴 “아빠…”라는 한마디는 Love보다 수천, 수만배 많은 사랑이 담겨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