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가은 기자 (hello212@skku.edu)

카메라 지지대를 놓고 비디오카메라를 고정시키는 그의 손짓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찍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는 홍선표(신방05) 학우, 그의 다큐멘터리 세계를 소개해본다.

홍 학우는 2006년부터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해 지금까지 15여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사육되는 곰의 현실을 다룬 ‘곰돌이를 구해주세요’ 부터 평화 운동가들을 담은 ‘평화를 위한 여행’, ‘희망의 이유를 찾아서’ 등. 8개월 간 발로 뛰며 찍었던 한 다큐멘터리는 공중파까지 탔다. “다큐멘터리는 고등학교 때 매일 한 편씩 봤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저널리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신방과에 진학했고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것은 미군기지 이전으로 전국이 한창 들썩였을 때. 대추리 소식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곳으로 내려간 바로 그 때였다. 과격 시위 중 유치장에서 만난 평화 시위주의자 2명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풍물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서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풍물도 하면서 평화로운 방식으로 시위가 진행됐죠. 사회 문제로 랩을 만드는 친구도 만났어요. 그 때, 이것을 꼭 다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는 다큐멘터리에 그 때 만난 지인의 랩을 입혔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진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를 담아냈다. 그 안에는 티베트 독립을 위해 오체투지로 시위하는 젊은 여성, 점박이 물범을 보호하려는 백령도의 중고등학생, 환경전문변호사와 같은 녹색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자유롭게 땅을 밟고 돌아다닌 지 2년 째, 다큐멘터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사실 처음에는 내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했었던 게 조금은 달라졌어요” 거대담론을 다루듯 다큐의 의식적인 차원만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영상미학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을 문득 깨달은 것. “제 다큐는 아직 딱딱하고 유머가 부족해요. 좀 더 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거죠” 예전과 달리 지금은 스스로의 다큐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기보단 그저 좋은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홍씨에게 가장 뭉클했던 촬영을 물었다. 3초간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뗀 홍 학우는 뜬금없이 가장 후회스러운 기억을 풀어놓는다. “예전에 종로구에서 장애우재단의 시위에 함께 밤을 지샌 적이 있는데 그 때 약속이 있어 아침까지 남지 못한 게 마음에 많이 안 좋게 남더라고요. 카메라가 갖고 있는 힘이 바로 현장 억제력이거든요.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지 못 해요. 다 기록되니깐. 아침이 되고 보는 눈이 없어지자 장애우를 가리키며 ‘치워버려’라고 하더라고요. 많이 ‘울컥’했었어요.” 실제로 빈곤 지역이나 전쟁지를 찾아가는 카메라맨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보호벽이 되는 것을 그제야 느끼게 됐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식상하게도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의 비전을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평생하겠다’ 각오하고 만들지는 않는다”며 “다만, 지금은 이 일이 내겐 가장 재밌다”고 수줍게 웃는다. 그렇다. 놀랍게도 그는 아직 22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