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노자

기자명 이승아 기자 (singav@skku.edu)

도라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덕경 제 1장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를 말로 설명할 순 있지만 그 설명이 도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과연 ‘도’란 무엇일까. 노자는 우주가 시작되는 근원적 측면을 무(無)라 했고, 구체적인 만물을 만들어낸 측면을 유(有)라 했다. 하지만 이 무와 유는 모두 도에서 나온 것으로 도의 특성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고 설명하느냐에 따라 이름만 다른 것뿐이다. 즉 우주 만물의 근원인 유와 무조차도 창조해내는 진정한 근원이 바로 도인 것이다. 이처럼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통해 이같이 난해한 도를 설명하는데, 81장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무위자연에서의 자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 즉 ‘스스로 그러함’과는 조금 다르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이란 ‘만물의 본래의 성질이나 모습에 어긋남이 없는 것, 즉 처음 있었던 그대로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 ‘무위(無爲)’다. ‘무위’는 ‘자연’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무위(無爲)의 뜻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다. 즉 무위자연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연’스럽게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바쁘게 뛰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다. 그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無爲)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같은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자는 무위라는 이름의 자유를 제시한다. 세상사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라고. 여기에 몸을 맡기고 남들이 뭐라 하던 내 특성과 상황에 알맞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자의 관점에서 세상사에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로운 상태로 행하는 모든 행위가 노자가 말하는 진정한 도(道)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자가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무(無)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본성을 끄집어 낼 때 자유라는 단어를 쓰면 그 조차도 우리를 가두는 틀이 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은 아닐까 싶다. 무가 무이고, 무가 유이며, 유가 무인 이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