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진짜가 뭐지? 만약 너가 느끼고, 맛보고, 냄새맡고, 보는 것을 진짜라고 말한다면, 진짜는 단지 네 뇌에 전달되는 전자신호에 불과해”
매트릭스 속의 세계가 ‘진짜’냐는 질문에 대한 모피어스의 반문이다. 이처럼 영화 <매트릭스>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모르는 현실에 던지는 섬뜩한 음모론이다. 그렇지만 영화 전반에 걸친 이 물음은 결국 답을 내놓지 못한다. X-File의 마지막 문구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셈이다.

할리우드를 넘어 우리 영화 <황산벌>의 전투현장을 보자. 진실이라는 존재가 ‘거시기’라는 말로 유쾌하게 포장됐다. 거시기는 어떤 것을 직접 가리키기 어려울 때 붙이는 일종의 방언으로, 영화 속에서는 난해한 진실의 속성을 상징하는 또다른 표상이다.
특히 영화는 “거시기해서 거시기해라”는 계백 장군의 말을 해석하려드는 해프닝에 웃음의 포인트를 맞춘다. 사실 노자의 말로 거시기를 표현하자면 이름이 없는 무명(無名)이다. “손을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는 신동집의 시 〈오렌지〉처럼, 진실은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거시기의 뜻을 풀려 애쓰는 신라군들의 노력은 2500년 전의 노자와 천만 관객의 비웃음과 함께 헛수고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마무리까지 이름에 대한 <황산벌>의 조롱은 멈추지 않는다. 계백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며 가족들을 죽이는가 하면, 신라의 수많은 화랑도들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간다. ‘이름’을 위해 경쟁적으로 ‘목숨’을 내놓는 모습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벌기보다, 돈을 통해 행복해지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겹치는 듯 하다.
진실은 곧 ‘이름 없음(無名)’이다. 사물을 이름이라는 매트릭스에 가둬두지 않는 것, 즉 어떤 속성에 한정짓지 않아야 사고의 자유가 보장된다. 노자가 강조했던 도(道)라는 진실은 이처럼 먼 곳이 아니라 ‘이름’ 너머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