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및 시나리오 부문 우수작 - 박세준(국문0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작의
 어린 학생들의 학교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갈수록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때 일이라며 가벼이 넘기는 경향이 있지만, 피해자 학생들의 마음마저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든, 학생이든, 남의 인생을 망치는 짓을 했으면 응당 그에 맞는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을 부를 뿐이다.
 
■등장인물
김성훈(32/남) : 서울시 경찰청 강력계 수사관. J고교 연쇄살인 사건의 담당자.
이선영(32/여) : J고교 교사. 성훈과는 과거 연인사이. 성훈의 수사를 돕는다.
김진호(18/남) : J고교 2학년 학생.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나, 실은 연쇄살인범.
이하라(18/여) : 2년 전 J고교 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 당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연쇄살인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최동혁(19/남) : J고교 일진회의 우두머리 격. 2년 전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변승환(18/남) : 동혁의 단짝이자 측근. 마찬가지로 2년 전 사건의 가해자.
김정무(49/남) : J고교 교무주임으로서 교내 실세. 성훈의 수사를 방해한다.
유영진(18/남) : 진호의 단짝. 동혁 패거리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한다.
윤재규(43/남) : J고교 체육교사. 2년 전 사건의 목격자.

기타 피해자 및 일진회 학생들, 수사관 등등.


■줄거리
 손가락이 없다?
 J고교 봄소풍 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J고교 2학년 재학 중인 박철호. 목과 양쪽 손목의 동맥을 모두 끊어버린 잔인한 살인. 그리고 잘려나간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연쇄살인사건임을 암시한다.  

 2년 전의 참혹한 기억, 그리고 열쇠를 쥐고 있는 소녀
 담당수사관 성훈은 J고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옛 연인 선영을 통해서 피해자들이 전부 2년 전 J고교에서 있었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낸다. 제대로 수사도 해보기 전에 합의로 끝난 은폐된 사건. 한 편 연쇄살인과 똑같은 내용의 만화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정보에 성훈은 만화의 원안자를 찾아 나서고, 그 원안자는 놀랍게도 2년 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였던 이하라라는 소녀였다. 정신병원 수용소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는 하라. 어떠한 정신적 후유증도 보이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 더욱 오싹하다. 연쇄살인에 대해서 캐묻는 성훈을 교묘히 따돌리는 하라. 그녀는 성훈 앞에서 그리던 그림을 어디론 가로 보내고, 그 그림은 며칠 후 2년 전 사건의 목격자로 추정되던 J고교 체육교사 윤재규의 집 안에서 윤재규의 시체와 함께 발견된다.

 소년, 칼을 들다.
 선영의 학급 학생인 2학년 진호는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성실한 모범생. 그러나 그는 2년 전 여중생 집단 성폭행 한 가해자 학생들을 모조리 살인하려는 무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진호가 살해대상으로 삼은 동혁과 승환 패거리들은 학교를 휘어잡는 폭군과 같은 존재. 그들은 진호의 단짝 영진을 무참히 괴롭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호.
 박철호에 이어 2년 전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준권과 당시 사건을 은폐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교무주임 김정무가 각각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이 잘린 채로 발견되고, 학교는 공포에 휩싸인다.

실수인가? 계획인가?
 단짝 영진이 동혁과 승환 패거리에게 구타당해 자살하자, 진호는 광적으로 변한다. 더욱 더 잔인한 방법으로 네 번째 대상을 살해하는 진호. 그런데 네 번째 피해자의 손가락이 약지가 아닌 가운데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네 번째 피해자와 세 번째 피해자 정무가 잘린 손가락이 겹치는 이유는? 성훈이 그 이유를 파악하기도 전에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사투
 진호는 다섯 번째 대상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친구들에게 얼굴을 들키는 바람에 전국에 수배되고 만다. 진호의 다음 계획을 암시한 그림을 그려서 성훈에게 주는 하라. 성훈은 선영의 집에서 선영이 모아 놓은 학교 폭력 관련 기사를 보다가 그 의미를 간파하게 된다. 진호는 일진회들의 집회를 노려 일진회 학생 수백 명을 한꺼번에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사지에서 쾌락을 즐기는 패거리들의 리더 동혁과 수백 명의 고교 일진회 학생들. 그런 동혁을 살해하는 진호. 남은 것은 집회 장소 안에 가스폭발을 일으켜 일진회 학생들 수백 명을 날려버리는 것뿐이다. 이 때 성훈이 나타나고, 진호는 가스관을 열고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아비규환 같은 일진회들의 광적인 집회 속에서 벌어지는 죽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 그리고 찾아온 비극적 결말.

 

애초부터 둘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즈음, 성훈은 후배로부터 세 번째 피해자 교무주임 김정무가 살해당했을 당시 진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고 보고 받는다. 처음부터 사건을 정리해가는 성훈. 이 때 성훈의 머리를 한 가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일전에 성훈이 선영 앞에서 세 번째 피해자인 김정무와 네 번째 피해자가 똑같이 가운데 손가락이 잘린 것에 대해 말을 꺼냈다가, 학교 측과의 비밀수사 약속 때문에 주워 담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선영의 입에서 나왔던 아주 평범한 한 마디! 그러나 그 한 마디는 범인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애초부터 진호와 선영 두 명이 각각 독립적으로 같은 연쇄살인을 진행해왔다는 놀라운 진실이 밝혀지고, 성훈은 선영을 찾아 달려간다. 
 2년 전의 하라 성폭행 가해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변승환을 집으로 납치해온 선영. 평범한 교사인 그녀는 어째서 승환을 납치해서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는 진호와 무슨 관계인가?
 모든 전말을 알아채고 선영의 집으로 달려온 성훈. 사랑하는 연인을 멈추게 하고 싶은 성훈. 그러나 선영에게는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선영의 칼이 승환의 목을 찌르려는 순간, 성훈이 방아쇠를 당긴다.

에필로그
 성훈의 자리로 전화 한 통이 온다. 형사가 대신 받아 성훈이 없다고 하자 상대방 여자가 412호에 성훈에게 줄 선물을 두었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해맑은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넣는 하라. 어느 아파트의 현관 호출기 버튼을 누른다. 잠시 후 들려오는 승환의 목소리. 현관 자동문이 열리고, 하라가 그 안으로 들어가며 영화는 끝난다.

 

 

 

 

 

 


S#1. 오프닝 시퀀스 - 산 (낮)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한 명이 산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누구를 찾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무성한 수풀을 비집고 나오는 남학생. 순간 표정이 얼어붙는다.
구석진 음지 나무 그루터기에 누군가가 앉아있다. 남학생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앉은 모양새로 죽어있는 피해자 박철호.

(시간 경과)

시체 주변으로 학생들이 몰려온다. 학생들 다들 얼어붙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담담한 표정으로 시체를 보고 있는 진호.
죽은 시체의 오른 손 엄지손가락이 잘려 있다.
진호, 양지쪽으로 혼자 걸어 나온다.
햇빛이 눈부시다. 진호, 햇살을 느끼듯이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콧노래 소리.

눈부신 햇살 위로 타이틀 떠오른다.

타이틀 - “빛나는 재능”

S#2. 부검실(낮)
S#1에서 죽은 피해자 박철호의 시체가 부검대 위에 올려 있다. 부검실 안으로 들어오는 담당 수사관 성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용모에 형사보다는 교사에 어울리는 인상이다. 그러나 강력계 형사답게 체격은 다부지다. 성훈이 철호의 시체를 보고 있던 검시관에게 캔커피를 건넨다. 검시관, 캔 뚜껑을 따며,

검시관        지독하네요. 목 경동맥을 정확히 찔렀어요. 그러고도 양쪽 손목의
              동맥을 다 끊어서 생존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었어요.
성훈          흉기는?
검시관         좀 더 봐야겠지만 확실히 식칼 같은 투박한 건 아니에요. 목에 난 상                처의 직경이 좁은 것을 보면 송곳 종류일 가능성이 있고요.

성훈, 시트를 들추고 안을 본다. 다시 시트를 덮는다. 고개를 흔드는 성훈. 

검시관        그리고 피해자 몸에서 클로로포름 성분이 검출 되었어요.
성훈          그게 뭔데?
검시관        동물 마취할 때 쓰는 건데 요새는 독성이 너무 강해서 거의 안 쓰이
              죠. 아마도 그걸 음료수 같은 데다 타서 먹이고 난 뒤에 움직이지 못하게 해두고 살해한 게 아닐까 싶네요.
성훈          똑똑하군.
검시관        우발적 살인이 아닌 건 확실하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한 범행
              이에요. 그런데 참… 고등학생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해
              놓은 건지…….

시트 밖으로 튀어나온 피해자 박철호의 손목 부위. 부패가 진행되는지 희미한 검은색 얼룩이 보인다.

 검시관       참, 잘려나간 피해자 오른 손 엄지손가락은 못 찾았습니까?

성훈, 고개를 젓는다.

S#3. 박철호의 집(낮)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박철호.

철호모(소리)  우리 철호는 착했어요.

피해자 박철호의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담담한 눈빛으로 마주보고 있는 성훈.

철호모        원한이라니 말도 안돼요. 우리 애가 철없을 때 엇나간 적이 있긴
              했지만, 고등학교 올라와서부터는 맘 잡고 말도 얼마나 잘 들었는데
              요. 본바탕만큼은 착한 아이였어요.
성훈          예. 압니다. 하지만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철호모        생각해보세요, 형사님! 설혹 애들끼리 안 좋은 일이 있어봤자, 이렇 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이건 완전히 미친
              놈이 한 짓이라고요! 우리 애는 억울하게 미친놈한테 그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철호 어머니.

S#4. J고교 교무실(낮)
피해자 박철호의 학교인 J고교 이사장과 교무주임 김정무, 성훈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다.

이사장        그러니까 요지는 이곳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교
              육을 받는 학교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한 창 민감할 때 아닙
              니까? 상상력도 풍부할 나이고요. 안 그래도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끔찍한 일을 당해서 충격이 클 텐데 굳이 학생 개개인을 직접 대면
              하면서 수사하실 것 까지 있느냐는 말입니다.
성훈          (발끈해서)그럼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입니까?
이사장        제 말은 굳이 학생들 수업도 못 듣게 해가면서까지…
              안 그래도 기자들 때문에 벌써 시끄럽습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 관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성훈          (어이가 없다.)
정무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상적인 인간이 한 짓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 던데요.
성훈          그러니까 더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사장이 교무주임 김정무에게 눈짓을 준다. 정무, 일어난다.

정무          (성훈에게)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오시죠.   

S#5. 학교 흡연실(낮)
흡연실로 들어오는 교무주임 김정무와 성훈. 먼저 담배를 피우고 있던 교사들이 정무를 보자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끄고 밖으로 나간다.
정무, 성훈에게 담배를 권한다. 사양하는 성훈.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는 정무.

정무          요새 학교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솔직히 사립학교 중에서 안 그런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재단 합병 문제니, 운영권 문제니 해서 이  쪽저쪽에서 부터 현 이사진에 대한 공세가 드세지고 있습니다. 이사장님도 다 입장이 난처해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
성훈          이 학교 다니는 학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협조 안 하시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정무          협조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최대한 조용히 해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거지요. 기자들한테도 모든 게 확실해질 때까지 자제해달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 입장에서 학교가 이런 흉한 일로 시끌시끌
              해지면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괜히 불안감만 더 커지지요.
성훈           학교가 시끄러우니까 쉬쉬하면서 얼버무릴 생각이군요? 죽은 피해자
              입장은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오늘 중으로 피해자 박철호군의 생활
              기록부와 기타 모든 서류 사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무, 담배를 벽에 비벼서 끈다.  정무 히죽히죽 웃으며 성훈을 바라본다.
정무          요새 경찰 월급이 어떻게 되지요? 세상 좋아졌다고 해도 공무원 월
              급은 예나 거기나 고만고만 할 텐데?

성훈, 정무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정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정무          정 필요한 자료가 있으시면 영장을 받아오세요.
              회의 때문에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담배 두고 나갈 테니 천천히 태우다가 나가십시오.

정무, 담배 각을 창턱 위에 놓고 밖으로 나간다.
성훈, 정무가 나가자 담배 각을 집어 든다. 담배 각 열면 흰 종이봉투가 나온다.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피식 웃고 마는 성훈.

S#6. 복도(낮)
흡연실에서 나오는 성훈. 가려고 하는데 문득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여자직원한테 눈이 간다.
성훈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 여자는 생김새는 평범하지만 유난히 피부가 뽀얗다. 
성훈, 실눈을 뜨고 여자를 바라보다가,

성훈           선영아?

성훈을 지나쳐 가던 여자, 돌아서서 성훈을 바라본다. 잠시 성훈을 보다가 환하게 웃는 여자.

S#7. 벤치(낮)
성훈과 지나가던 여자 - 선영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다.

선영           그랬구나……. 교무주임 선생님이 보통내기가 아니야.
               아마 정말로 영장 안 가져오면 협조 안할지도 몰라.
               나도 교사지만, 생각보다 학교라는 조직이 깨끗하지가 못하더라고.
성훈           다 그런 거지 뭐. 그나저나 네가 이것 좀 돌려주지 않을래?

선영에게 돈 봉투 건네는 성훈.

성훈          내가 돌려줬다고 하면 별 말 안 할 거야.
선영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힘닿는 선에선 알아봐줄게.
성훈          고마워.
선영의 목에 걸려 있는 교사 신분증. 국어과 이민성이라고 되어 있다.

성훈          이름이…?
선영          나 이름 두 개잖아. 부모님이 아들 낳기를 바라서 나 태어나기 전에
              남자 이름으로 지어놨었어. 어렸을 때는 내가 싫어서 이선영이라고 하고 다닌 거였고, 몰랐니?

[플래시 백] - 12년 전. 어느 술집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자리. 새내기 성훈이 쭈뼛거리며 앉아있다. 촌스러운 옷차림에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짧은 머리. 성훈, 주변 사람들과 자기 옷차림을 비교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생머리의 세련된 여학생이 앉는다. 그녀는 피부가 유난히 새하얗다. 선영이다. 선영이 성훈을 보더니, 살짝 미소 짓는다.

선영          안녕?

성훈, 얼굴이 빨개진다. 더듬거리며 안녕이라고 화답하지만 주변의 잡음에 묻힌다.
미소 짓고 있는 선영. 그 아래로 가슴에 “이선영”이라고 적힌 명찰이 보인다.
(플래시 백 종료)
        
다시 현재.

성훈          몰랐어. 나 기억력 좋은 편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우리… 5,6년만이지?
선영          더 된 거 같은데. 졸업하고 거의 처음 보는 거니까. 참 오래됐다.
성훈          혹시 결혼은…

건너편에서 김정무가 지나가고 있다. 성훈을 보자 발걸음을 멈추는 정무.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훈.         

성훈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먼저 일어날게.

성훈, 가려고 하는데,

선영          전화번호도 모르면서 어떻게 연락하려고?


S#8. 경찰서(밤)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수사파일을 보고 있는 성훈.

인서트 - 피해자 박철호의 시체 사진.
인서트 - 피해자 박철호의 오른쪽 손 클로즈업 사진. 엄지손가락이 없다.

검시관(소리)  그리고 피해자 몸에서 클로로포름 성분이 검출 되었어요.

성훈,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린다.

S#9. J고교 2학년 2반 교실(낮)
선영이 교탁 앞에 서서 아침 조회를 하고 있다.

선영          주번 임의로 바꾸지 말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바꿀 시에는 꼭 나한테 말해. 알겠지?
학생들       네.
선영         그리고 작문 숙제 제출 안 한 사람! 이번 주까지 꼭 내고…….

교실 뒤쪽에 나란히 앉아있는 진호와 영진. 진호는 문제집을 풀고 있고, 영진은 옆에서 웅크리고 있다. 진호는 머리 스타일, 옷매무새 모두 단정한 전형적인 모범생 상이다. 단, 무테안경이 인상을 차가워 보이게 한다. 그 옆에 영진은 체격도 왜소하고 표정도 멍하다.
창가 쪽 뒷자리에 앉아있는 동혁과 승환. 한쪽 귀에 귀걸이를 차고 머리에 노란색 염색기가 남아있는 동혁. 산적 같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왁스로 머리를 요란하게 띄운 승환. 동혁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낄낄대고 있고, 승환은 껌을 잘근잘끈 씹으며 동혁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

승환, 종이를 뭉쳐서 영진에게 던진다. 영진의 머리에 맞고 떨어지는 종이뭉치.
진호, 슬그머니 눈을 돌려 승환을 바라본다. 승환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문제집으로 눈 돌리는 진호.

S#10. J고교 화장실(낮)
화장실에서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고 있는 진호와 영진.
화장실 문 열고 들어오는 동혁, 승환, 준권.
준권이 영진의 엉덩이를 한 번 때리고 간다.
영진 소변기에서 떨어지자, 바지가 소변으로 축축이 젖어있다.
왁자지껄하게 웃는 동혁과 승환, 준권.
영진, 세면대로 가서 바지를 물로 닦는다. 뒤에서 준권이 놀리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진호.

S#11. 진호 방(밤)
진호가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책상 위에 올려있던 진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진호, 핸드폰을 집어 든다. 문자를 치는 진호.

진호(소리)    내가 할 수 있을까?

다시 울리는 핸드폰.
 
핸드폰 액정 화면 : “너한테는 재능이 있어. 너 자신을 믿어. 심판을 내려야지. 어서 일어나.”

일어나서 외투를 걸치는 진호.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외투 안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S#12. 골목길(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진호가 걸어가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S#13. 독서실 건물 앞(밤)
인서트 - 독서실 간판

독서실 건물 입구에서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준권과 친구들. 준권은 학교에서와는 달리 뿔테 안경을 써서 모범생처럼 보인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친구1         씨발, 나 그냥 갈게.

친구1이 교복 마의를 뒤집어쓰고 뛰어나간다.

(시간경과)

준권과 친구2 앞을 지나가는 늘씬한 여성의 다리.

준권          씨발년, 따먹기 딱 좋게 생겼네.
친구2         미친새끼. 아직도 그렇게 사냐?
준권          왜 이래, 형 철들었어. 알잖아.
친구2         야 그냥 뛰어가자. 언제 기다려.
준권          시간도 많잖아.
친구2         좆까, 아빠가 늦으면 지랄한다.
준권          먼저 가라. 난 어차피 약속 있다.

친구2도 교복 마의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준권           (핸드폰 꺼내어)여보세요? 난데. 언제 올 거야. 씨발 빨리 와.
               나 혼자 좆 빨고 있어. (누군가가 지나가자 황급히 핸드폰 내리며)                 안녕하세요. (잠시 후) 독서실 총무 형. 우리 아빠 친구 아들이라                 잘 해야 해. 요새 나 철들었대도. 오늘도 수학 열 문제인가 풀었다                 니까.

(시간경과)

준권, 교복 마의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달려 나간다.
멀리 사라지는 준권의 뒷모습. 그 뒤에서 나타나는 진호의 등.

S#14. 어느 건물 화장실(밤)
준권이 문 열고 뛰어 들어온다. 머리부터 온 몸이 완전히 젖었다. 욕을 내뱉으며 세수를 하는 준권. 변소로 들어가 휴지를 뜯는데,
화장실 문 열리며 진호가 들어온다. 진호의 손에 들려있는 벽돌.
진호, 벽돌을 든 손을 높이 치켜 올려드는 순간, 준권이 진호 쪽을 돌아본다.
준권, 진호를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데,
진호가 준권을 향해 벽돌을 던진다. 준권, 벽돌 피하면서 진호와 엉겨 붙어 싸운다.
준권에게 제압당하는 진호. 진호의 모자를 벗기는 준권.

준권          (기가차서)너 2반 새끼 아냐? 미쳤냐?

진호에게 주먹을 퍼붓는 준권.

준권          맘 잡고 살려고 했더니 별 좆밥이 다 지랄을 하네. 뒤졌어.

진호 맞으면서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다. 진호의 손에 칼이 들려 나온다. 준권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진호. 준권 소리를 지르며 진호에게서 떨어진다. 칼에 배인 준권의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진호, 칼을 치켜들고 준권에게 덤벼든다. 다시 몸싸움이 벌어진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진호의 칼에 배를 찔리는 준권. 진호, 연달아 준권의 배를 칼로 쑤신다.
진호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준권. 진호를 밀어뜨리고 밖으로 도망가려다가 진호에게 붙잡힌다. 진호, 뒤에서 팔로 준권의 목을 조른다. 준권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는 진호. 진호, 발버둥치는 준권의 목을 칼로 긋는다.
인서트 - “수리중”이라고 종이가 써 붙여 있는 화장실 입구.

숨을 헐떡이는 진호.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준권의 사체.
준권의 오른 손을 들어 올리는 진호. 준권의 집게손가락에 칼을 가져다댄다.
진호의 얼굴에 튀는 핏방울. 진호, 역겨운지 변기에 대고 토악질을 해댄다.

(시간경과)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하여 화장실 바닥을 물로 씻고 있는 진호.

S#15. 거리(밤)
셔츠만 입은 채로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달리고 있는 진호. 환희에 가득 찬 얼굴.

S#16. 2학년 2반 교실(낮)
교실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있다.
앞문 열리며 선영이 들어온다.

선영          최동혁, 변승환 일어서.

동혁과 승환, 일어난다.

선영          너희 둘 뭐야. 숙제가 장난이야?
              (종이 두 장을 흔들거리며)너희가 써낸 작문 내용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아.

승환, 옆줄의 영진을 노려본다. 외면하고 있는 영진. 앞으로 나가는 동혁과 승환.

선영          그리고 내용이 참…

동혁과 승환, 선영이 들고 있는 종이에 써진 글을 읽는다.
동혁           내 취미는 삥 뜯기입니다. 삥 듣기가 뭐냐면 돈을 뺏는 거죠. 용돈이 없어서 하냐고요? 아니요, 타고난 성격상 그렇게 되네요. 그리고 특기는 싸움, 주먹질…

선영 종이를 동혁과 승환이 못 보게 치운다.

선영          이따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
동혁          밥 먹어야 하는데…….
선영          밥 먹고 와. 알겠니?
동혁          점심시간은 보장해주세요. 안 그래도 공부하느라 피곤한데…
선영          …… 안 오면 내가 찾아간다. 12시 30분까지 와.

선영, 교실 밖으로 나간다.
동혁과 승환, 뒤돌아본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영진을 노려보는 승환. 그 반면 히죽거리면서 승환을 말리는 척 하고 있는 동혁.
엎드려 자고 있는 영진. 동혁과 승환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진호.

S#17. 화장실(낮)
승환이 영진을 때리고 있다.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구경하고 있는 동혁. 그 뒤로 학생들이 모여서 구타 장면을 보고만 있다.

승환            너는 니 숙제도 그런 식으로 하냐? 왜, 아예 담임한테 바로 꼬지르지 그래?

진호의 표정. 점점 더 굳어져간다.
부르르 떨리고 있는 진호의 주먹.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진호의 뒤통수를 친다. 진호, 돌아보면
옆 반 복학생 혁수이다.

혁수          (진호를 가리키며)이 새끼는 유영진이 깔따구야? 맨날 같이 다니대?

동혁, 진호를 보고 씨익 웃는다.

혁수          에리냐?
진호          (고개 떨군다.)
동혁           걔는 냅둬. 우리 반 공부 넘버원인데, 고등학교에서 먹물 에이스 함                부로 건드렸다가는 너도 피곤해진다.
더욱 더 무자비하게 영진을 때리는 승환.

승환          취미는 구타? 그래, 오늘 취미생활 좀 제대로 해보자.
혁수          야. 그만 해라. 애 죽겠다. 그래도 물주인데.

화장실 문 열리며 선영이 들어온다. 모두들 놀라서 선영을 쳐다본다.
구타를 멈추고 얼빠진 눈으로 선영을 쳐다보는 승환. 동혁도 담배를 버리고 선영을본다.

선영          최동혁, 변승환, 따라와.

S#18. #교무실(낮)
교무실 원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동혁과 승환. 선영이 둘 앞에 백지 한 장씩을 내려놓는다.
동혁과 승환이 뭐냐는 식으로 쳐다보면,

선영           반성문이야. 한 페이지 가득 빽빽이 써. 글자크기, 띄어쓰기로 머리 굴릴 생각하지 말고 영진이한테 과제 시킨 것부터 오늘 일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다 써. 알았어?

동혁, 피식 웃는다.

선영          웃어?
승환          선생님,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 네?
동혁          애들끼리 싸울 수도 있지 뭘 그러세요?
선영          싸워? 아까 그게 싸운 거야? 너희 같이 큰 애랑 영진이 같이 조그
              만 애랑 뭘 싸워? 니들이 일방적으로 때린 거지.
동혁          학년 다른 것도 아니고, 같은 학년끼리 체급 따질 일 있어요?
              맞장 떠서 센 놈이 때리고 약한 놈이 맞는거지.
선영          뭐?
동혁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네?
선영          너희 자꾸 이러면 교사회의에 올릴 거야. 요새 교내 폭력 잡는다고
              학생주임 선생님 난리나신 거 …
동혁           저희 폭력학생 아니에요. 왜 그러세요. 저희가 언제 또 애들 때리는
              거 보셨어요?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우리가 그러나.
승환          오늘은 피차 한 판 붙기로 했던 거라니까요.
선영          (기가 막히다.)

교무실 문 열리며 정무가 들어온다.

정무           이 선생!

S#19. 회의실(낮)
긴 테이블에 둘러 앉아있는 교장과 J고교 교사진.

교장          2학년 11반 이준권 학생이 오늘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답니다.

얼어붙은 교사들 표정.

교장          경찰 말로는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군요.
교사1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교장         언론에는 새나갈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일단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임시휴교를 할까 합니다.
정무          그건 안 됩니다.

모두 김정무에게 시선 집중한다.

정무           아직 정확한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경찰이 미루어 짐작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언론에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첫 번째 사건만으로는 그렇게 크게
              기사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학부모님께도 그렇게 설명하고 이번
              학기까지만 어떻게든 마치도록 하는 방향이 낫지 않겠습니까?
교장          피해자 부모들은 어떻게 하고요?
정무            제가 직접 설득해보겠습니다. 어차피 너무 떠들썩해져서 그쪽도 좋을
              건 없지 않겠습니까? 신문에 난다고 해서 범인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요.
교장          하지만…….
정무          무엇보다도 이사장님께서 휴교는 원치 않으실 겁니다.

교장, 입을 다문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교사들의 얼굴.
선영,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란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체육선생 윤재규가 뭔가에 홀린 얼굴로 몸을 떨고 있다.
         
S#20. 여교사 휴게실(낮)
선영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인서트 - S#19에서 떨고 있는 체육선생의 모습.

교사A(소리)   진짜로 그 때 그 일이랑 연관 되어 있는 거 아냐?

선영이 돌아보면,
중년의 여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사B         내가 알기론 지금 죽은 애들이 재작년 그 일이랑 연관 있던 애들일
              거야.
교사C         그 때 명단 비공개했잖아. 황 선생이 어떻게 알아?
교사B         왜 몰라, 그 때 함구령이 떨어져서 그렇지 한참 돌아다녔던 내용들
              이잖아. 윤 선생님이 그거 때문에 법원까지 들락날락 거렸던 거 기억
              하잖아. 나야 윤 선생이랑 친하니까 얼핏 들었지. 지금 우리 학교
              2학년 중에 나이 한 살 많은 애들이 그 때 정학먹어서 그런 걸 거야.
교사C         그럼 지금 1년 꼬른 애들이 그 때 그 사건 가해자란 말이야?
교사B         정확한 건 윤선생이 알겠지?

고개를 돌리고 계속 해서 대화내용에 귀 기울이는 선영.

S#21. 두 번째 사건 현장(S#14, 낮)
화장실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성훈. 담배를 꺼내어 문다. 시체운구대를 든 형사들이 성훈 옆으로 지나간다. 강력계 반장이 성훈에게 다가온다.

반장          이번에는 집게손가락이 잘렸다면서?
성훈          (고개 끄덕끄덕)
반장          새끼손가락까지 있으니까 다섯 명이 목표라는 뜻인가?
성훈          오른손 끝나면 왼손 시작할 수도 있겠죠.

S#22. 경찰서(낮)
반장과 서장 앞에서 보고하고 있는 성훈.

성훈          피해자의 성별, 연령, 학교가 같다는 점,
              사망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손가락 부위를 의도적으로 훼손
              하여 살해순서를 암시하는 것 등을 보았을 때 이 사건은 명백한
              연쇄살인이라고 여겨집니다.
반장          흉기는?
성훈           두 번째 사건은 아직 정확한 부검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나이프 종류로 추정됩니다.
서장          이봐. 여기까지 와서 이게 연쇄살인인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
              기고, 단서 같은 것은 못 찾았어?
성훈          네, 아직은 파악 중입니다.
서장          주변조사는?
성훈          그게… 학교 측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 신상 자료
              열람도 막고 있고,
서장          그 까짓 거에 뭐 대단한 거 써있다고 난리야?
성훈          학교 측에서는 아무래도 여론을 의식해서 조용히 수사를 진행하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서장          이미 인터넷 상에 기사 돌고 있던데 뭐. 입막음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튼 거 시끄러워지면 우리도 피곤한건 매한가지야.
              여기서 더 죽으면, 무능력한 경찰 소리 나온다. 검찰한테도 지랄할
              건덕지 만들어주는 거고. 최대한 조용조용하게 수사하되, 최대한 조
              속히 용의자 잡아내라고. 알겠어? 옛날에는 이런 거 터지면 어지간
              해서는 용의자 검거까지 일주일을 안 넘겼는데 말야…….

서장, 나간다. 반장, 슬그머니 성훈에게 다가와서는

반장          너 지금 속으로 씨발놈이라고 욕하고 있지?

무심코 고개 끄덕였다가 황급히 고개를 젓는 성훈.

S#23. 경찰서(밤)
TV를 보면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성훈과 반장, 성훈의 후배 형사들.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여배우 자살”이라는 타이틀이 뜬다.

아나운서      여배우 K씨가 오늘 낮 2시에 자택에서 목매달아 숨진 채로 발견되
              었습니다. K씨는 어제 밤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혼자 사는 자택에
              서 오전에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K씨와 약속이 있
              어서 기다리던 매니저가 K씨 집으로 가서 K씨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평소 K씨는 자주 우울증을 호소했으며…
후배형사1     이걸로 우리 사건은 완전히 묻히겠는데요?
성훈          학교 놈들은 지금쯤 노래를 부르고 있겠지.
 
성훈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성훈           여보세요? 어? 어! 지금?

S#24. 병맥주집(밤)
성훈이 들어온다.
구석진 테이블에서 손 흔들고 있는 선영.

(시간경과)
창밖을 보고 나란히 앉아있는 성훈과 선영.

성훈          그런 사건 신문에서 본 적이 없는데?
선영          기사에 짤막하게 나긴 했었대. 여자애 쪽 부모랑 가해자 학생들
              부모랑 합의가 되는 바람에 순식간에 덮어졌지.
성훈          그니까 이번에 죽은 두 명이 2년 전에 있었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란 말이지? 관련된 사람이 더 있나?
선영          그건 정확히 모르겠어. 나도 다른 선생님들이 하는 얘기를 몰래 들
              은거라…….
성훈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면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을 텐데.
              너 다니는 학교는 사립이니까 2년 전에 일하던 선생님들 거의 다 그  대로일 거 아냐. 너도 그 때 있지 않았어?
선영          나는 올해 들어왔어.
              내가 들은 얘기 했던 선생님들도 대략적인 것만 들어서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그런데 그 분들 하시는 말 중에 그 때 일로 법원  까지 갔다는 선생님이 있었어. 그 선생님이 그 사건에 뭔가 관련이   있어서 법원에도 불려가고 그러신 거 아닐까?
성훈          그게 누군데?
선영          우리학교 체육선생님.

S#25. 체육교사실(낮)
체육선생 윤재규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다. 노크소리.
문 열리면서 성훈이 들어온다.

재규          누구신지?
성훈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시간경과)

성훈과 재규가 마주 앉아있다. 재규, 불안한 듯 계속 안절부절 못한다.
성훈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이번에 죽은 아이들과 관계있다는 2년 전의
              사건이?
재규          …….
성훈          제가 알기론 성폭행…
재규          난 몰라요.
성훈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
              려면 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숨기지 말고 말해주십쇼.
재규          (자리에서 일어나며)수업이 있어서 나가봐야겠어요.
성훈          어차피 기록 뒤져보면 다 나오는 거 피곤하게 구실 필요 없을 텐
              데요.

성훈,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어 재규 앞에 내려놓는다.

성훈          대한민국 경찰 좋아졌습니다. 예전처럼 트집 잡아서 얽어버리는 일
              도 없고요, 비밀 보장도 확실합니다. 아무쪼록 교사다운 판단 부탁
              드리죠.

성훈, 나간다. 재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성훈이 연락처 적어놓은 메모지를 쳐다보다가, 메모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S#26. 차 안/ *경찰서(낮)
성훈이 운전을 하고 있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전화 받으면,

성훈          별 성과 없었습니다. 말을 안 해주려고 하네요. 뭔가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캐봐야죠. 어차피 제 친구가 그 학교
              에 있으니까요. 네?
*반장         교통과 김수미씨 알지? 수미씨가 재밌는 걸 찾아냈더라고. 한 번
              와서 봐.

고개 갸웃거리는 성훈.

S#27. 경찰서(낮)
여경 김수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그 주변에 반장과 성훈, 형사들이 모여 있다.
수미가 마우스 버튼 클릭하면,
모니터 화면으로 만화가 뜬다.


<모니터>
컷1 - 여자가 남자들한테 강간당하는 장면.
컷2 - 복면을 쓴 괴인이 남자 한 명을 잔인하게 난도질한다.
컷3 - 살해한 남자의 손가락을 잘라서 씹어 먹는 괴인.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형사들 인상을 찡그린다.

수미          동급생들에게 집단강간 당한 소녀가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는 내용
              인데, 요새 인터넷에서 인기 최고예요.
반장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유혹해서 자기를 강간한 놈들을 죽이게
              하고, 죽인 순서대로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내는 게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사건이랑 비슷하지 않나?
성훈          지금 몇 명까지 죽었어?
수미          약지 손가락까지 잘렸어요.
성훈          작가가 누구야?

모니터 화면 상단에 작가명이 “몬스터”라고 적혀있다.

성훈          연락처 알 수 있어?
수미          힘들걸요? 이 사람이 신비주의 컨셉을 추구하고 있어서, 게시판 관
              리자 조차 이메일로만 연락한다고 들었어요.
형사1         쌩쑈를 하는구만. 지가 서태지도 아니고…
              일단 여기 포탈사이트 관리자한테 전화해보고 안되면 주소추적이라
              도 해봐야지.
성훈          잠깐만.

성훈이 모니터 화면을 가리킨다.
작가&팬 채팅 공지글이 보인다.

성훈          (형사 한 명을 지목하며)너 채팅 매니아라고 했지?

모두의 시선, 일제히 성훈이 가리킨 채팅 매니아 형사에게로 향한다.
정색을 하며 손을 가로젓는 채팅 매니아.


S#28. 동(밤)
컵라면을 먹고 있는 성훈. 반장은 옆에서 자고 있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채팅매니아(이하 매니아).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성훈(소리)    진전 있냐?
매니아         성별을 바꿔서 하려다 보니 좀 걸리네요. 상대가 여자였으면 벌써 간
              거였는데…….
              어? 이거 봐라?
성훈          (허겁지겁)왜, 왜?
매니아         연락처 알려달라는데요? 새끼 이거 별 수 없는 놈이네? 누구 번호 알려주죠?
성훈          수미 번호 알려줘야지.

매니아, 자판을 두들긴다. 모니터 화면 위로 뜨는 핸드폰 번호.

S#29. 야외 까페 테라스(낮)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있는 수미.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있는 성훈과 매니아. 들고 있는 무전기를 잡지로 가리고 있다.

성훈          야, 그런 변태 같은 놈한테 이런 데는 안 어울리는 거 아니냐?
매니아        아니에요. 꼴에 작가라고 가오 좀 잡으려고 하는 눈치였어요.
성훈          (무전기에 연결된 핀마이크에 대고)올 때 됐어. 잘해.
수미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블라우스에 꽂은 핀마이크에 대고)왜 하필                  나예요. 찝찝하게.
성훈          왜~ 좋아하는 만화 작가 직접 보고 좋잖아.
수미          몰라요. 나 폰 번호 바꿔야겠네. 짜증나~
성훈          잠깐!

(성훈의 시점)수미가 앉아있는 테라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장발의 남자.

성훈          저 새끼다. 잘해!

수미, 핀 마이크를 블라우스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작가, 수미를 보더니 느끼한 미소를 짓는다.
인상 찌푸리는 수미.
작가, 수미 앞에 앉으며

작가          분홍나비님이시죠?
수미          예…

성훈이 매니아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시간경과)

작가          보통 새벽까지 원고작업을 하고 일어나면 아침 열시 정도라서 이런
              카페에 나와서 브런치를 먹곤 합니다. 참, 분홍나비… 아니 수미씨
              는 직업이?
수미          학생이에요.
작가          아~ 그렇게 안보이시는데. 대학원 다니시나 보군요.
수미          (죽이고 싶다.)

낄낄대는 매니아와 성훈.

수미          정말 오랜만에 보는 멋진 만화인거 같아요. 어쩜 그렇게 근사한 작
              품을 생각해내셨죠?
작가          하하하~!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글쎄요… 저는 어려서부터 인간의 어두움에 대해서 많은 탐구를 해
              왔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두움을 쫓아가는 면이 있지요. 자기
              안의 어두움을 발견한 인간만큼 아름다운 이는 없을 겁니다. 제 작품
              의 주인공인 제이를 보세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수미          예에…….

성훈과 매니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성훈          (무전기에 대고)슬슬 시작한다.

수미, 몸을 비비 꼬며 교태를 부린다. 몹시 어색하고 뻣뻣하다.

작가          왜 그러시죠?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수미          (꾹 참고)그냥 갑자기 몸이 나른해서… 브런치를 먹었으니 시에스
              타를 즐겨야 될 것 같지 않나요?
작가          괜찮으시다면 마저 제 작품의 설명을 듣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
              까? 그러니까 제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내적 메시지 외에
              도, 외적으로는 만화가 애들이나 보는 삼류 매체라는 편견을 지우
              고 싶었습니다.
성훈          (무전기에 대고)안되겠다. 그냥 우리가 바로 테이블로 가서 앉겠다.

성훈과 매니아가 여경과 작가 옆으로 다가온다.

작가           누구신지?

여경과 성훈, 매니아가 작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작가의 시선이 성훈이 들고 있는 무전기로 향한다.

작가          …니들 경찰이지?

일제히 뜨끔하는 셋.
작가가 갑자기 커피를 수미 옷 위로 뿌린다. 비명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수미. 어느새 달아나기 시작한 작가.
성훈과 매니아, 이게 아닌데 라는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작가를 뒤쫓기 시작한다.

S#30. 골목길(낮)
미친듯이 달리는 작가. 이어서 미친듯이 쫓아오는 성훈과 매니아. 매니아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성훈이 작가의 뒷덜미를 잡을 듯 말듯 하다. 성훈의 손을 뿌리치고 달리는 작가. 성훈은 균형이 무너져 놓치고 마는데,
옆에서 튀어나온 리어카에 치여 넘어지는 작가.

S#31. 슈퍼 앞(낮)
슈퍼 앞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서 하드를 먹고 있는 성훈과 작가.

작가          재능이 없으니까 생각한건 맨날 뻔한 것들뿐이고… 그래서 에로
              만화만 진창 그리다가 우연히 채팅방에서 그 아이를 만난 거예요.
              그 아이가 제게 보여준 샘플 그림이랑 스토리를 보고 이거다 싶었
              지요. 사실 스토리만 그 아이가 제공한 게 아니라 그림도 거진 걔가
              샘플로 그려놓은 컨셉 그대로 따라한 거거든요. 한마디로 사실상 오리지널은 그 아이라 이거죠.
성훈          직접 만난 적은 없고요?
작가          채팅으로만.
성훈          만남을 피하던가요?
작가         아뇨. 현실적으로 그 애가 있는 곳이 자기 맘대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곳이라서요.
성훈          알려주세요.
작가          대신 제가 아까 했던 말은 잊어주시면 안됩니까?
성훈          무슨?
작가          채팅해서 고등학생이랑 했다는 거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미성년 자인 줄은 몰랐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하지 않는 건데…! 아무튼 제발…
성훈          신고도 안 들어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작가, 메모지에 끄적거려서 성훈에게 건넨다.

작가          제가 알려줬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주세요. 괴인이 저한테 올
              지도 모르니까요.
              
웃고 있는 작가의 표정 어딘가가 불안해 보인다.

S#32. 정신병원(낮)
인서트 - 정신병원 전경.

복도를 걸어오고 있는 성훈과 의사.

의사          매우 특별한 환자입니다. 사실 특별히 이상이 있어 보이는 점은 없
              습니다. 오히려 말하는 것이나 기타 모든 면에 있어서 정상으로 보                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한 거지요.
성훈          …….
의사          사춘기 때 집단 강간을 겪은 소녀로서 당연히 드러나야 할 후유증
              , 가령 우울증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전혀 나타나
              지 않는다는 점이 저희 의료진의 의문입니다.
성훈          혹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의사          아, 그림은 자주 그립니다. 하지만 뭐 대개가 평범한 일러스트 같
              은 거라 신경은 안 쓰고 있습니다만. (복도 쪽 끝을 가리키며)
              412호입니다. 어쨌든 심한 일을 겪었던 환자라 언제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주세요.

의사, 돌아간다. 412호로 걸어가는 성훈.

S#33. 412호 - 하라 방(낮)
성훈이 방문 열고 들어온다. 10평 남짓한 독실.
방 한가운데 놓인 이젤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하라. 피부가 무척 하얗다.

성훈          실례합니다.
하라          제가 기다렸던 분은 아닌 것 같네요. 어쨌든 좋아요.
              모처럼 만의 손님이니까. 들어오세요.
성훈          경찰에서 왔습니다. 이하라 학생 맞죠?
하라          학교는 그만두었으니까 학생은 아니죠.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에
              , 적절한 호칭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부르세요. ‘하라야.’라고
              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요.

성훈, 하라에게 다가가서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본다.
숲속에 통나무집이 보이고 그 앞에 다섯 명의 요정같이 생긴 소년들이 서 있거나 앉아있다. 소년들은 일제히 가운데에 있는 덤불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덤불 위로 비치는 햇살. 따스한 느낌의 그림이다.

하라          병원에 있다 보면 뭐든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가 필요하지요.
              병원이라는 환경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고, 저는 그림을 선택했어요. 그림 좋아하세요?
성훈          아뇨.
하라          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점은 예술적인 영감이 마구 솟아오른다는
              거예요. 아저씨, 형사라고 하셨죠?
성훈          네.
하라          그럼 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시겠네요?

성훈, 하라 앞에 문제의 만화를 인쇄한 종이를 내려놓는다. 괴인이 손가락을 잘라 씹어 먹는 장면이다.

성훈          아는 만화죠?
하라          유치한 그림체네요.
성훈          하라 학생이 이 만화의 원안자라고 들었어요.
하라          3류죠. 이 만화의 작가. 하지만 나름대로 쓸모는 있었어요.
              어쨌든 내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킬 수는 있었으니까요.
성훈          이런 거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 만화, 하라 학생의 경험
              을 토대로 생각해낸 거… 맞죠?
하라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기 마련이죠.
              더불어 작가의 욕망도 함께요.
성훈          지금 밖에서는 하라 학생의 만화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
              요. 아니, 몇 가지 디테일한 점을 빼면 전개상황은 완전히 똑같죠.
하라          신기해요.
성훈          박철호, 이준권. 제가 맡고 있는 사건의 피해자들이지요.
              들어본 이름인가요?
하라          먼저 사건 내용부터 좀 말해주세요.
성훈          만화 그대로예요. 박철호 군은 엄지손가락이, 이준권 군은 집게
              손가락이 잘려 나갔어요. 이제 제 질문에 대답해줄래요?
하라           그런 건 이미 서류 찾아보고 확인해 오신 사항 아니에요? 제가 아저 씨라면 만화에 나오는 ‘괴인’을 아느냐고 물어볼 거 같아요.
성훈          (이 녀석 봐라?)…….        
하라          그런데 어떡하죠? 곧 진료 시간이라서요.
성훈           제가 때를 잘 못 맞춰 왔나보군요. 다시 또 올게요. 다음엔 잘 좀 대
              답해주세요.

성훈, 나가려고 하는데,

하라          생각보다 금방 다시 오시게 될 거에요.
성훈          ……?
하라          그 때는 맛있는 거 사오셔야 해요.
              
성훈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하라.
성훈, 멍하니 하라를 보고 있는다.

S#34. 교실(낮)
쉬는 시간의 교실. 동혁과 승환은 나란히 컵라면을 먹고 있다.
책을 보고 있는 영진과 진호.
교실 앞문 열리며 옆 반 병훈이 들어온다. 병훈, 영진 앞으로 와서

병훈          나 오천 원만 빌려줘.
영진          …….
병훈          시간 없어, 빨리!
영진          없어.

병훈이 동혁과 승환 쪽으로 고개 돌린다.

동혁          얼른 빌려줘라. 친구끼리.

영진,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마지못해 병훈에게 건넨다.

병훈          고맙다, 친구야. 언젠가는 갚을게.

낄낄대며 나가는 병훈. 뒤에서 동혁과 승환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다시 책을 보는 영진. 그런 영진을 바라보는 진호.

주번(소리)    진호야! 담임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내려오래!

S#35. 체육교사실(낮)
재규의 책상에 구깃구깃해진 성훈의 연락처가 놓여있다.
재규, 전화기를 든다. 내려놓는다. 다시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그러나 곧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노크소리. 문 열리며 정무가 들어온다.

(시간경과)
책상 위에 놓여있는 흰 봉투.
재규가 물끄러미 봉투를 바라보고 있다.

정무          한 서너 달 쉬었다 오라고.
재규          …….
정무          경찰이 눈치를 챈 것 같아. 이제 와서 다 끝난 일로 골치 아파지기                싫잖아? 교장 선출과 이사장 선출이 코앞인데 내 입장도 난처하고.
              좀 잠잠해지면 내가 다시 연락하지.
              
정무 나간다. 떨리는 손으로 돈 봉투를 집어 드는 재규.
다시 노크 소리. 택배 직원이 들어온다.

택배          윤재규 씨 맞으시죠?

노란 서류봉투를 내려두고 나가는 택배직원. 봉투를 집어 드는 재규.

S#36. 교무실(낮)
진호와 선영이 마주 앉아있다. 선영은 노트를 펼쳐서 읽고 있다.

선영          “인간쓰레기들은 죽여야 한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강간과 폭력을
              일삼으며 이 세계를 파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 용서란 있을 수 없
              다. 그들을 없애는 것이 선한 사람들의 세계를 살리는 길이다.
              죽어 마땅한 인간쓰레기는 꼭 어른이란 법도 없다. 대게 쓰레기의 천성은 날 때부터 타고나는 법이기 때문에 그 싹을 잘라내는 것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사형제 폐지 찬반논쟁에 대한 글을 쓰라고 했더니 완전히 살인 예
               찬론을 썼구나.
진호          …….
선영          여기에 쓴 내용, 네 진심이니?
진호          (고개 끄덕인다.)
선영          선생님도 기본적으로 사형제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야. 하지만 너 처
              럼 극단적인 사고방식은 위험해. 특히 마지막 문장은 문제가 많아.                물론 어렸을 때부터 악한 품성을 갖춘 사람들도 있겠지. 그렇기 때문                에 이렇게 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으면서 인격을 다듬어가는 거잖아.                나쁜 심성이 있다고 무조건 죽여 버려야 한다는 건, 정말 대단히 잘                못된 생각이야.
진호          학교가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잡아준다면 선생님 말씀이 맞겠죠.
선영          네 말은 학교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뜻이니?
진호          선생님도 며칠 전에 보셨잖아요.
              어른들이 그런 애들을 교육한다 어쩐다 할 동안에 착하고 순한 애
              들은 그 애들한테 죽도록 괴롭힘 당한다고요. 그런 애들을 교육하는                것 보다는 애초부터 그런 애들이 이 세상에 없는 게 모두를 위해 좋                은 거 아닌가요?

선영, 어이가 없는 얼굴. 수업 종 치는 소리.

선영          나중에 더 이야기하자. 이 페이지는 선생님이 가져도 되지?
진호          네.

선영이 수업할 책을 들고 일어난다. 진호, 선영에게 인사하고 나간다. 안타까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영.

S#37. 재규의 집(밤)
잠옷 차림의 재규가 혼자 거실에 나와 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는 재규. 스케치북이 나온다. 스케치북을 펼치면 S#33에서 하라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다.
재규, 그림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빛에 비추어본다.
그림 속 다섯 소년들이 바라보고 있는 덤불 위로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소녀의 나체가 떠오른다.
소녀는 미소를 짓고 재규 쪽을 보고 있다.
비명을 지르며 그림을 떨어뜨리는 재규.

S#38. 교회(밤)
아무도 없는 텅 빈 예배당에 영진이 우두커니 앉아있다. 뒤에서 진호가 다가와 옆에 앉는다.

침묵.

진호          진짜로 믿냐?

인서트 - 십자가

진호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
영진          (고개를 가로젓는다.)
진호          그럼 왜?
영진          희망을 버리게 되니까.
              이렇게 매일 와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쓸데없는 희망을 안 가지게 되잖아.

퀭한 영진의 눈. 무표정하게 영진을 보고 있는 진호의 얼굴.
          
S#39. 경찰서(낮)
성훈과 반장이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반장          이하라가 나온 J중학은 J고교와 같은 재단의 학교야. 하라가 강간
              을 당한 것은 중3 겨울방학 때군.
성훈          피해자 박철호와 이준권은 J고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6개월 정학 조치를 당하고 이듬해 다시 1학년으로 복학했죠.
반장          죽은 둘이 2년 전 강간사건의 가해자라는 거 확실한 거야?
성훈           현재 제가 입수한 자료는, 소송상대를 가해자 개개인이 아니라 학 교 를 상대로 낸 것이라 정확한 가해자 명단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건 발생 직후 정학을 당했다는 점이나, 교사들의 증언 등등 어느   정도 심증은 있습니다.
반장          이 둘이 끝은 아닌 거 같지?
성훈          아마 몇 명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윤재규도 역시 그 당시 J고교에 있었습니다. 하라 사건에 관련해서                법원에 갔다는 것은 그가 사건과 관련된 주요 증인이라는 뜻이겠죠.
              그래서 오늘 다시 윤재규한테 가보려고요.

성훈, 핸드폰 꺼내어 번호를 누른다.

성훈           여보세요. 거기 윤재규 선생님 핸드폰이죠. (경악)네?

S#40. 재규 빈소(낮)
재규의 영정사진.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상복 차림의 재규 부인.
성훈이 들어온다. 재규의 영정사진 앞에 향을 꽂고 절을 한다. 부인에게 다가가서,

성훈          윤재규 선생님 사모님 되십니까?
부인          경찰에서 오셨죠?
성훈          네.
부인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S#41. 영안실 휴게실(낮)
성훈과 부인이 휴게실 의자에 앉아있다.

부인          죽은 남편의 옆에 이게 있었어요.

부인, 성훈에게 노란 서류봉투를 건넨다. 봉투에 손을 집어넣는 성훈. 하라가 그린 다섯 소년의 그림이 나온다.

부인          저기 어두운데 가서 빛을 향해 그림을 비춰보세요.

성훈, 부인이 시키는 대로 구석진 곳으로 가서 그림을 빛을 향해 들어본다. 가운데 덤불위로 피투성이 소녀의 나신이 나타난다.

성훈          (다시 부인에게로 와서)이 그림은 수사를 위해 가져가도 괜찮겠
              습니까?
부인          그렇게 하세요. 이 그림 누가 보낸 지 알아주실 수 있으시죠?
성훈          사실 지금도 짐작 가는 데는 있습니다.
부인          저도 그래요.
성훈          ?
부인          그 여자아이… 어딘가 병원에 있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그랬어요.
성훈          알고 계십니까? 남편께 2년 전에 있었던 일을?
부인          저는 아내이니까요. 하지만 남편이 자초지종은 얘기해주지 않았어
              요. 확실한 건 남편 말고도 그 사건의 목격자가 더 있었다는 거예요.
성훈          (놀라움) 그게 누군지 아십니까?
부인          그건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 사람이 학교
              측에 먼저 알렸지요. 그래서 사건을 덮으려던 학교의 압력 때문에 남                편은 가해자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해야 했죠.
              그 일 때문에 남편은 그 이후로 계속 괴로워했어요. 마음이 워낙 약한 사람이라…….

흐느끼는 부인. 성훈, 부인을 위로하려고 하는데,
휴게실 밖에 서 있는 선영과 눈이 마주친다.

S#42.  병맥주집(S#24와 동, 밤)
맥주를 마시고 있는 성훈과 선영. 성훈의 앞에 빈병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선영          술이 땡겼나 보네.
성훈          가끔씩 이럴 때가 있어. 너도 애들 가르치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
              아?
선영          많지.
성훈          한 중학생 여자애가 선배들한테 집단강간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입
              원했어. 가해자들은 훈방조치나 다름없는 정학으로 끝나고 버젓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었고. 그리고 2년 뒤에 그 가해자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해. 누군가가 여자애를 대신해서 복수를 하고 있 
              는 거겠지. 기껏해야 스무 살도 안 된 애들끼리 모여 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너도 이런 애들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
              겠다.
선영          오늘 우리 반 학생 작문을 검토했는데 범죄자는 싸그리 죽여 버려야
              한다고 써놓은 거야. 거기다가 아예 악한 기미가 엿보이는 애들마저 일찍 싹을 쳐내야 한다고 하는 거 있지.

멀리서 사장이 이쪽을 보고 있다.

 선영           따로 불러서 뭐라고 주의를 주기는 했는데, 우리 반에도 약한 애들만 골라서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두어 명 있거든? 그런 애들한테 당하는 입장이 되면 나 역시 오늘 나한테 불려온 애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성훈, 술을 더 시킨다.

선영          윤 선생님도 많이 힘드셨겠지?
성훈          그랬겠지. 나라면 밤마다 생각나서 못 견뎠을 것 같아.
선영          세상이 참…
성훈          그러게…
선영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화장실 가는 선영. 호프집 사장이 성훈에게로 다가온다.

사장          미인이시네요. 김 형사님 애인?
성훈          대학동기예요.
사장          두 분이 잘 어울리셔서 저는 애인 사이신줄 알았지요. 즐거운 시
              간 되세요.

사장, 간다. 성훈, 화장실로 향하는 선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S#43. 화장실(낮)
동혁, 승환, 병훈, 혁수가 변소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승환          형! 그나저나 걱정 안돼요?
동혁          뭐가?
승환          준권이 형이랑 철호 형이랑 다 그렇게 당했는데…
혁수          (승환의 머리를 친다.)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동혁          그건 그렇고 남부 연합회 언제 한대냐?
병훈          그거 다음 달이면 할 텐데요. 저희 다 가야하죠?
동혁          가야지. 우리 학교만 안 갈 수도 없잖아. 혹시 어디서 한다는
              말 못 들었냐?
병훈          Y고 다니는 제 친구가 그러는데 이태원 근처에서 한다고 들었거든
              요?

병훈이 차고 있는 고급손목시계.

동혁          그거 영진이 거 아니냐?
병훈          제가 먹었어요.
혁수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승환          저 새끼, 애한테 삥 뜯고 안 준걸로 지 여자친구 가방 사주고 그러
              잖아요.
병훈          형도 그 신발 형 꺼 아니잖아요?
혁수          뭐 이 새끼야?

화장실 문 열리며 꼬봉이 들어온다.

꼬봉          저… 학생부에서 찾아요.

S#44. 교실(낮)
선영이 들어온다.
동혁과 승환의 자리가 비어있다. 아이들 자꾸 그들의 빈자리를 힐끔 쳐다본다.

선영          걔네들은 이번 시간 안 들어올 거야.

아이들, 긴장한다.

선영          선생님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절대로 미워하지 않아.
              반대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해가면 원칙대로 처리하는
              사람이야. 급우 간의 폭력과 금품 갈취는 교칙 상 퇴학인 거 알지?

아이들, 웅성거린다.
진호, 영진을 바라본다. 영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

선영          수업 시작한다.

뒷문 열리며 동혁과 승환이 들어온다.
선영, 놀라는 표정.
동혁과 승환, 선영을 노려보고는 자리로 들어간다.
동혁과 승환을 곁눈질하는 진호.
 
S#45. 학교 휴게실(낮)
정무와 선영이 마주서 있다.

선영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에요. 걔네들은 상습범이라고요.
정무            이 선생님. 여기는 학교에요. 처벌하는 기관이 아니라 타이르고 가르치는 곳이란 말이에요.
선영          그럼 반성을 해야죠. 선생님을 우습게 알고 하는 짓은 점점 더 심
              해지는데, 걔네들한테 피해를 입는 학생들 생각도 해주셔야죠.
정무            애들이에요, 애들! 내가 알아듣게 잘 타일렀어요. 한 달 간 청소벌을 주었으니 지켜보세요.
선영          승환이가 재단 이사진 아들이라서 그렇게 관대하신건가요?
정무          이 선생님!
선영          저는 최소한 운영위원회에는 넘겨야 된다고 생각해…
정무          (말을 끊으며)그만해요. 이 일은 내 선에서 정돈 된 거예요. 더 이
              상 이 일로 소란피우지 말고, 이 선생님 할 일이나 잘 하세요. 경
              찰 친구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요.

정무 나간다. 선영, 잔뜩 열 받은 얼굴로 정무를 쳐다본다.

S#46. 교실(낮)
영진이 진호와 책을 보고 있다. 교실 문 열리며 동혁과 승환이 들어온다.
바짝 긴장하는 영진과 아이들.

승환          야!

지목당한 아이가 주춤거리며 일어선다.

동혁          대걸레 두 개 일루 갖다 줘.

아이, 대걸레 두 개를 동혁과 승환에게 건네준다. 동혁과 승환, 걸레 들고 다시 나간다.

S#47. 복도(낮)
걸레질하고 있는 동혁과 승환, 병훈, 혁수.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선영.

S#48. 교무실(낮)
선영과 영진이 마주 앉아있다. 선영, 영진에게 시계를 건넨다.

선영          이거 네 거라며? 다시 가져가.
영진          …….
교무실에 들어오는 진호. 다른 일을 보는 척 하며 슬그머니 선영 쪽 눈치를 본다.

선영          앞으로는 학교에 너무 비싼 시계 차고 오지 마.
              그리고 병훈이한테 빌려준 돈은 그 쪽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병훈이
              네 어머니께서 너희 어머니께 돈 드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려봐.
영진          감사합니다.

선영에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영진. 진호가 손을 들어 보인다.

S#49. 하라의 집 거실(낮)
인서트 -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부유층 저택.

넓은 거실. 고풍스러운 원목 가구들과 벽걸이 텔레비전, 대리석 테이블 등이 집주인의 재력을 알게 해준다. 성훈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그녀는 하라의 고모이다.

고모          하라 엄마는 하라가 네 살도 되기 전에 집을 나갔어요. 하라는 자
              기 엄마 얼굴을 기억 못할 거예요.
성훈          아버님께서는…
고모          오빠요? 오빠도 이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됐어요. 지난 해 겨울에
              나갔으니까 아마도 외국 휴양지 어딘가 있겠죠. 있는 건 돈 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성훈          재혼은 하셨고요?
고모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성훈          그럼 하라 학생은 죽 혼자 생활했던 겁니까?
고모          하라는 외롭게 컸죠. 이 넓은 집에서 거의 혼자 보냈으니까.
              제가 이집에 들어온 게 불과 3년 전이었는데, 그 때 이미 하라는 모                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난 뒤였어요.
성훈           의사 말로는 현재로서는 정신적 이상징후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 집에 들여보내셔도 될 텐데 왜 계속 병원에 입원시키시는 거죠?
고모          본인이 거부해요. 늘 무슨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면서요.

인서트 - 거실 벽 한 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 액자.
         사진 대신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들어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어린 딸이 가족사진 구도로 앉아있는 그림. 형태는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엉성한데 반해, 표정이 실감나고 붉은색과 보라색이 주로 사용되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고 있는 성훈. 고모도 성훈이 보고 있는 곳을 본다.

고모          하라가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이에요.
성훈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군요.
고모          하라가 그린 그림을 보셨어요?
성훈          그럼요. 인상적이었죠.

S#50. 412호 - 하라 방(낮)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다섯 소년과 피 묻은 소녀의 그림.
자신의 그림을 보고 있는 하라. 그 앞에 마주하고 있는 성훈.

성훈          이 그림을 본 윤재규 선생은 자살했어요.
하라          왜 그랬을까?
성훈          윤재규는 그 때의 목격자였죠. 그래서 복수하려고 이 그림을 보
              낸 거죠?
하라           글쎄요? 그건 그 선생님이 원래 죽을 마음이 있어서 죽은 거지, 제가 꼭 죽으라고 그림을 보낸 건 아니잖아요?
성훈          하라 학생의 작품을 보면 목격자도 괴인을 시켜서 살해하죠.
하라          작품과 현실이 반드시 같다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하라, 스케치북을 꺼내어 스케치를 하기 시작한다.

성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모두 하라 학생과 관련이 있죠?
하라          어렸을 때 싸움 잘하시는 편 아니었죠?

하라, 성훈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다.

성훈          말해요. 누구를 시켜서 복수를 하고 있는 거죠?
하라          얼굴에서 콤플렉스가 느껴져요.
성훈          누가요?
하라          아저씨요. 학교 다닐 때 싸움 못했죠?
성훈          갑자기 그런 얘기는…
하라           주머니에 늘 한 손을 집어넣고, 담배를 피울 때는 꼭 눈가를 찌푸리
              죠. 말투는 공손한 듯하면서도 말꼬리는 꼭 조금씩 올라가고요.
              학교 다닐 때 싸움 못했던 남자들이 커서 강한 척 하기 위해 자주 쓰는 표현법이거든요.
성훈          그래. 맞아. 나 싸움 못했어요.
              아무튼 하던 이야기마저 하자면…
하라          다음 편쯤에 괴인 얼굴을 드러낼까 생각중인데 아저씨 얼굴로 그려
              도 될까요?
성훈          장난 그만 치고…….

하라가 성훈 쪽으로 보이게 스케치북을 펼친다. 어느 새 완성된 성훈의 얼굴 스케치. 눈 밑에 다크서클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 잡아 있다.

성훈          말을 안 듣는 아이로군.
하라          아저씨는 악을 미워하죠?
성훈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라          아저씨는 내심 악인을 아주 강력한 방법으로 처단하는데 동의하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직접 자기 손으로 그러고 싶어 할지도 모르죠.
              나이프로 난도질을 한다거나, 손으로 갈길이 찢는다거나…
성훈          강력한 방법으로 처단하고 싶어 하는 거는 맞군.
하라          실제로 닮았어요.
성훈          …….
하라          그 ‘괴인’과, 아저씨랑은.
성훈          말해요. 누구인지.
하라          그는 아저씨처럼 악을 미워하는 사람이에요. 차이점이 있다면 아저
              씨는 직업적으로 악을 쫓는 사람이고, 그는 소명을 받고 그 소명에 따라 악을 심판한다는 거죠.
              그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어요. 그는 악인들을 죽임으로써 이 세계
              를 구원할 거예요.
성훈          학생이 조종하는‘괴인’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 인정하는 거군요?
하라          이상 제 작품의 캐릭터 설명이었다고 하면 김새시겠죠?
              안심하세요. 그건 아니니까. 단,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나는 그를 알지만 그를 조종하지 않아요. 뭐든 행동의 결정권은 그에게 있어요.
성훈          그럼 하라 학생의 역할은 뭐지?
하라          격려를 해주는 것뿐이죠. 그가 자신의 소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성훈          살인에 대한 격려? 그것도 공모라는 거 알아요?
하라          어쨌거나 저는 정신병자인걸요.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까요?

하라, 호출벨을 누른다.
하라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 대화를 중단할 수가 있어요. 환자잖아요.
성훈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병원에 있는 이유를 알겠군.  

간호원이 문 열고 들어온다. 나가는 성훈.
하라, 간호원에게 노란 소포상자를 내민다.

하라           이것 좀 우편함에 넣어주세요. 저 아저씨가 간 다음에요.
          
S#51. 운동장(낮)
화창한 오후.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스탠드 한 편에 나란히 앉아있는 영진과 진호.

진호          요새는 애들이 시비 안 걸지?
영진          응.
              이렇게 학교 다니면서 맘 편한 것 처음 같아.
진호          이제 또 괴롭히고 그러면 선생님한테 말해.
영진          진짜로 처음이야.
진호          ?
영진          이렇게 선생한테 믿음이 간 적 처음이야.

저 멀리 동료 교사들과 걸어가고 있는 선영이 보인다.
 
영진          문제를 올바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 혼자서 데쓰노트 같은 거 안 써도 될 것 같아.
진호          아직도 가지고는 있지?
영진          버려야지.

진호, 선영이 가는 것을 응시한다.

S#52. 하교길(낮)
진호와 영진이 나란히 하교길을 걸어가고 있다.
모퉁이에서 멈추는 진호.

진호          내일 12시에 교회 앞에서 보자. 전화할게.

진호, 간다. 영진도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데,
영진의 앞을 막고 있는 병훈. 영진이 병훈 뒤를 보면,
멀리서 영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동혁과 승환, 그리고 혁수.

S#53. 교회 앞(낮)
나들이 차림을 하고 서 있는 진호.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한다. 12시다.
영진에게 전화를 거는 진호. 전화를 안 받자 핸드폰 집어넣고 움직인다.

S#54. 영진의 집 앞(낮)
주택이다. 대문 앞에서 초인종 누르는 진호. 대문 열린다.

S#55. 영진의 집 거실(낮)
진호가 들어온다. 영진 어머니가 맞이한다.

영진모        영진이가 어제 늦게 들어와서 깨워달란 말을 안 하기에 냅뒀지.
              약속이 있는 줄 알았으면 깨울 걸 그랬네. 올라가 봐.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진호.

S#56. 영진의 방(낮)
영진의 방문 열고 들어오는 진호.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어서 밤처럼 캄캄한 방 안.
진호, 영진을 찾는다.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다. 의자에도 아무도 없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
진호,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위층 베란다 난간에 목을 매단 채로 죽어있는 영진. 얼굴 곳곳이 피멍이 들어있고, 눈을 힘없이 뜨고 있다.

진호, 섬뜩할 만치 무표정하다.

S#57. 영진의 빈소(밤)
영진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그 사진 앞에서 울고 있는 가족들. 기타 조문객들.
영진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는 진호.
(진호의 시점)사진 속에서도 영진은 웃지 않는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진호의 두 눈.

S#58. -1 진호의 방(밤)
진호, 책상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진호(소리)    그만 두려고 했어. 왜냐하면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희망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어. 역시 악과 희망은 공존할 수 없어.

S#59. - 1 하라의 방(밤)
편지를 읽고 있는 하라. 펜을 들고 답장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한다.

하라(소리)    너의 신념에 확신을 가져. 너에게는 이 세상을 바꿀 놀라운 재능
              이 있잖아. 그 재능을 외면하지 마. 신은 우리에게 쓰라고 재능을 주셨어.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을 믿지 마. 너 스스로 완전한 구원자가 되는 거야.

S#58. - 2 진호의 방(밤)
진호,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수건에 둘둘 말려 있는 물체. 진호, 수건을 푼다. 칼이 나온다.

S#58. - 2 하라의 방(밤)
붓을 내려놓는 하라. 하라, 이젤에 놓여있는 도화지를 집어 든다. 희미한 불빛 아래로 가져간다.
인서트 -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잘려나간 손을 들고 있는 소년의 그림.
         소년의 표정이 매우 온화하고 평온해 보인다.
 
S#60. 카페(낮)
굉장히 어둡고 사람도 뜸한 중년 카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아 있는 성훈과 중년의 남성.

남자          이겁니다.

테이블 위에 서류봉투를 내려놓는다.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꺼내는 성훈.
법원 재판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윤재규의 얼굴이 보인다. 그 옆에 흐릿하게 보이는 정무의 얼굴.

남자          목격자는 윤재규 뿐만 아니라 김정무도 있었습니다. 윤재규는 사실
              대로 증언하려고 했으나 김정무가 가해자 학생들한테 유리한 방향
              으로 증언을 했죠. 남자아이들이 여자를 끌고 온 것이 아니라, 여자
              도  원래는 같이 술을 마시고 놀다가 일이 터진 것처럼. 당시 상황에
              대해 인터뷰한 테잎도 있습니다.
품속에서 워크맨을 꺼내는 남자.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정무(소리)    어차피 여자애 쪽 아버지는 이 일에 큰 관심도 없어. 지금 이렇게
              몰고 가면 틀림없이 우리가 이겨요. 그 쪽만 협조해주면 바깥에도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묻혀버리겠지. 좀 도와줘요.
성훈          그쪽이란?
남자          언론을 말하는 거죠. 당시 저는 이 사건의 담당기자였습니다.
성훈          그에게 돈을 받았군?
남자          덕분에 저도 기자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테잎을 꺼내어 성훈에게 내미는 남자.

남자          비밀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성훈          알았어요.
남자          뒤에 보시면 당시 법원 소송에 관련된 서류도 몇 장 첨부되어 있으
              니 참고하세요.
성훈          한 가지만 더, 피해자 이하라의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남자          그냥 졸부 아들입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죠. 그는 사건이 그저
              빨리 마무리되기만 바랐습니다. 원래부터 가족을 짐짝처럼 생각하던 남자라… 그 당시 이미 세 번째 여자가 생겼거든요.         
성훈          세 번째?
남자          하라는 두 번째 아내에게서 난 딸이었습니다. 원래 부인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난 자식도 있었는데 하라 어머니를 만나고 바로 이혼해  버린 거죠. 첫 번째 부인과 트러블이 심했는지, 한국에 있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그의 사후에 하라 앞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단, 하라에게 문제가 생기면 지금  실질적으로 하라의 보호를 맡고 있는 고모에게 유산이 돌아가지요.
성훈          그래서 병원에 계속 두는 거군. 아무튼 고마워요.
남자          약속 꼭 지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리는 남자. 성훈, 테잎을 안주머니에 집어넣는다. 핸드폰 꺼내
서 전화를 거는 성훈.

S#61. 학교 복도(낮)
정무가 전화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다.

정무          글쎄요. 내가 형사님 볼 일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오늘은
              저녁 약속도 있고요.

학생 몇 명이 하얀 꽃 한 송이씩 들고 2-2반 교실로 가는 것이 보인다.

정무          다시 통화합시다.(전화 끊는다.)
              너희들 뭐하는 거니?
학생1         영진이 자리에 꽃 놓으려고요.
정무          수업 시작했어. 다들 자리로 돌아가. 얼른!

각자 반으로 흩어지는 학생들. 정무, 교실에 있던 교사 한 명을 밖으로 불러낸다.

정무        안 그래도 기자니 경찰이니,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소란스럽게 할 거에요? 발인도 끝났다면서 뭘 이렇게 난리법석들                 인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진호가 정무를 노려보고 있다. 주먹을 움켜쥐는 진호.

S#62. 교무주임실(낮) / *성훈 차 안(낮)
정무가 자리에 앉아있다. 책상 위에 노란색 소포 상자가 놓여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정무           네. 말씀하세요.
*성훈          (운전 중)아무래도 시간 좀 내주셔야겠는데요. 제가 지금 뭘 가지
               고 있는지 아시면 시간 내게 되실 겁니다.
정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 정 그러시면 내일 낮 정도에 학교로
               오세요……

소포 뜯어보는 정무. 소포 안에서 정무의 스냅 사진 한 장이 나온다. 정무의 얼굴 둘레로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가 쳐 있고, 피처럼 붉은색으로 “NEXT!"라고 써있다.

정무           오늘 봐야겠군요.
                            
S#63. 성훈 차 안(낮) / * 빈 교실(낮)
운전하고 있는 성훈. 핸드폰 벨이 울린다.

성훈          김성훈입니다.
선영(E)       나야. 오늘 좀 볼 수 있어?
성훈          무슨 일인데?

*인서트 - 아무도 없는 빈 교실. 영진이 앉아있던 자리 책상 위에 놓여있는 꽃 몇            송이.

*선영         아니. 술 한 잔 할 수 있을까 해서.
성훈          미안한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아니, 이따가 너희 학교 갈 건데
              그 때 봐서.
*선영         우리 학교?
성훈          너희 학교 교무주임 있지? 그 인간도 죽은 윤재규 선생처럼 2년 전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목격자였어. 자세한 건 이따가 만나서 이야기 하든지 하자. 서에서 전화 온다.           
*선영         아니야.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선영, 핸드폰 끊는다. 어딘지 걱정스러워 보인다.

S#64. 차 안(밤)
성훈이 운전하면서 통화중이다.

성훈          네. 오늘 김정무랑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마 수사에 협조를 안 할
              수 없을 거예요. 밤늦게라도 서에 들를게요.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 끊는 성훈.

인서트 - 학교 앞에서 멈추는 성훈의 차.

성훈, 차에서 내린다.

S#65. 교무주임실(밤)
정무가 초조한 얼굴로 방 안을 왔다갔다하고 있다.

[플래시 백] - 어두운 체육실 안.
체육실 안으로 들어오는 정무.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무의 동공이 커진다.
교복 입은 남자아이들이 하라를 강간하고 있다.
반대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재규. 정무와 눈이 마주친다.
황급히 집게손가락으로 ‘쉿!’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정무.
(플래시백 종료)

다시 현재. 노크소리.

정무           들어오세요.

문 열리며 운동화가 보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무.

S#66. 학교 층계(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는 상태로 어두운 복도 층계를 올라오고 있는 성훈.

소리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소리샘으로…….

핸드폰 끊고 위층으로 뛰어올라가는 성훈.

S#67. 복도(밤)
성훈이 오고 있다.
교무주임실 문 열리며 후드티를 입은 괴한이 나온다. 성훈을 보자, 재빨리 반대편으로 달아난다. 성훈, 교무주임실로 달려간다.

S#68. 교무주임실(밤)
교무주임실 안으로 달려오는 성훈.
정무가 자리에 앉은 채로 죽어있다.
가운데 손가락이 잘려 있는 정무의 오른 손.
성훈, 밖으로 달려 나간다.

S#69. 복도->층계(밤)
괴한이 모퉁이 돌아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뒤따라 달려가는 성훈.
층계로 달려온 성훈.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쫓아 내려가는 성훈.
갑자기 계단 난간사이로 막대기가 튀어나와 성훈의 발에 걸린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성훈. 의식을 잃는다.

S#70. 회의실(새벽)
교장과 성훈, 그리고 반장이 앉아있다.

교장          2년 전 그 사건의 가해자였던 학생들의 명단을 드리겠습니다.
              그와 관련된 모든 필요한 자료도 제공하겠습니다.
              다만 부탁이 있습니다.
              오늘… 교무주임의 일을 비밀로 부쳐주세요.
성훈          그건 곤란합니다. 원활한 수사를 위해서는…….
교장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까지 피살 대상이라고 하면 그 파급이
              무지막지 할 겁니다. 재단 쪽에서도 요새 눈치가 심상치 않고요. 수사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일부 몇 명만 협조해드려도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반장          나도 교장선생님 생각에 동의해.
성훈          네?
반장           무차별 연쇄살인이 아닌, 명백한 동기에 의한 표적살인이라면, 너무 공개적으로 수사를 해서 범인에게 우리의 동선을 알려줄 필요가    없어. 범인이 학교 내부인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교장          오늘 당장 임시 휴교를 할 생각입니다. 교무주임의 죽음은 사건이
              종결되면 다른 교사들에게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성훈, 탐탁하지 않은 표정.

S#71. 교실(낮)
학생들이 선영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선영, 창가로 다가간다.
(선영 시점) -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학생들.

소리          내달 2일까지 임시휴교하기로 하였으니 선생님들께서는 이후 학사
              일정에 차질이 없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S#72. 병원(낮)
침대에 누워있는 성훈. 팔에는 깁스를 하고 있다.
간호원이 온다.

성훈          가면 안 돼요? 바쁜데.
간호원        선생님 검진 끝나셔야 해요.

간호원 간다. 성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문 열리는 소리. 성훈, 재빨리 침대로 들어가 눕는데,
선영이다.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다.

선영          어떻게 된 거야?
성훈          어…

[플래시 백] - S#70 회의실

  교장           오늘… 교무주임의 일을 비밀로 부쳐주세요.

(플래시 백 종료)

다시 현재.
성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성훈          선배들이랑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다가 헛디뎠어.     
선영          깁스까지 하고…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성훈          가벼운 골절상이래. 염려 마.
선영          죽 사왔어.

선영이 쇼핑백에서 죽그릇을 꺼낸다.

성훈          잠깐 있는 건데 뭐 이런 걸 사왔어.
선영          잔소리 하지 말고 드세요.

선영이 성훈에게 숟가락을 건넨다.

선영          손 불편하지. 내가 떠먹여 줄까?
성훈          무슨 소리야. 내가 먹을게.
선영          옛날 생각난다.
              그 때 내가 아플 때 네가 우리 집까지 와서 밥해주고 청소해주고
              그랬잖아.
성훈          갑자기 옛날 얘기를… 그 땐 군대 가기 전이라 순진했지.
선영          지금은 안 그렇고?

성훈, 실없이 웃는다.
선영,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성훈에게 먹이려고 한다. 성훈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자,

선영          나 선생님이야. 안 먹으면 혼난다?

죽을 받아먹는 성훈.

선영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어.
성훈          …….
선영          그 때 너 아니었으면 대학생활이 너무 힘들었을 거야.
성훈          나 군대 가고 나서도 잘 지냈으면서, 뭘.

성훈, 죽을 떠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선영.

성훈          이번 사건 끝나면 우리 놀러나 갈까?

선영, 고개를 끄덕인다.
          
S#73. 납골당(낮)
“유영진”이라고 명패가 붙어있는 납골함.
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납골함을 보고 있다.

S#74. 주차장(낮)
비가 올 것 같이 먹구름이 낀 어두컴컴한 날씨.
인적이 없는 주차장 구석.
봉고차 뒤에서 진호가 혁수의 목을 칼로 따고 있다. 혁수, 발버둥치지만 소용없다.
진호의 품속에서 늘어져버리는 혁수의 몸.
진호, 혁수의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가운데 손가락에 칼을 가져다 대는 진호.

S#75. 동(밤)
주차장 둘레로 출입제한선이 쳐 있다. 형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봉고차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성훈.
혁수의 시체를 운구대에 싣고 있는 경찰들.

성훈          잠깐만.

경찰들, 운구대를 내려놓는다. 성훈, 시트를 제친다.
가운데 손가락이 잘려나간 혁수의 오른 손.
고개를 갸웃거리는 성훈.


S#76. 교무실(낮)
학부모들이 단체로 들어와 농성중이다. 울고불고 난리치는 학부모도 있고, 교사들에게 삿대질 하며 따지는 학부모도 있다. “아이들을 죽이는 무책임한 학교행정, 진상규명하라!”라고 적은 팻말도 보인다.
선영, 학부모들을 제지하고 있다.

선영          죄송합니다만 나가서…

한 어머니가 선영을 붙잡고 늘어진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
성훈이 반대편에서 걸어오다가 그 모습을 발견한다. 성훈, 달려와서 선영에게서 어머니를 떼어놓는다. 학부모들 뚫고 선영을 데리고 나가는 성훈.

S#77. 학교 운동장(저녁)
노을이 지고 있는 해질녘의 하늘.
선영과 성훈이 스탠드 위에 나란히 앉아있다.

선영          얼마 전에 우리 반 영진이가 목을 매달고 자살했어.
              혁수는 영진이를 상습적으로 괴롭히던 애 중 한 명이었지.
성훈          혁수란 애도 2년 전 이하라 강간사건 때 가해자인 거 같아. 교장이  넘긴 명단에는 없지만, 당시 수사기록 보니까, 윤재규의 1차 증언 때 거론되더라고. 혹시 얘도 집이 부자야? 변승환이라는 애는 아버지가
              학교 재단 관계자라면서?
선영          혁수는 큰아버지가 높은 데서 일한다고 들었어.
성훈           윤재규 증언을 보니까 1차에서는 승환이랑 혁수도 강간을 했다고 되 어 있는데, 2차 증언에서는 걔네 둘은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고 증언이 바뀌었더라고.              

선영,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성훈          왜…?
선영          (눈물을 글썽이며)무력해.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하게 느껴져.
              아까 나 붙잡고 늘어진 분은 살해된 아이들의 가족이 아니야. 자살한 영진이네 어머니셨어. 죽은 영진이 온몸이 온통 피멍이 들어있었대. 죽기 전날 누군가한테 끌려가서 무지막지하게 맞았나봐. 아마 혁수란 애도 영진이를 때린 놈들 중 하나였겠지. 그런데 그 혁수도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했어. 애들끼리 죽고 죽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선생인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고…….
성훈, 선영을 감싸 안아준다.
                          
S#78. 차 안(밤)
운전석에 타고 있는 성훈, 보조석에 타고 있는 선영.

성훈          (혼잣말로)왜 이번에도 가운데 손가락일까?
선영          응?
성훈          아니야. 사건 생각하고 있었어. 이번에는 약지 손가락 차례인데
              똑같이 가운데 손가락이 또 잘렸기에. 범인도 실수를 하나…….
선영          그러게. 이상하네.

교장(소리)    오늘… 교무주임의 일을 비밀로 부쳐주세요.

성훈, 입을 다문다. 선영의 눈치를 본다.
선영은 별 생각 없는 듯 창밖 경치만 보고 있다.

인서트 - 아파트 앞에서 멈추는 성훈의 차.

선영          오늘 고마웠어.
성훈          무슨. 조심해서 들어가.
선영          올라와서 차 한 잔 하고 갈래?
성훈          아니야. 괜찮아.
선영          이제는 낯설지?
성훈          ……. 아니야. 오늘은 서로 가 봐야 해서.
선영          그래.

선영, 차에서 내린다. 인사하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한 참 동안 선영 보고 있다가
출발하는 성훈.

S#79. 경찰서(밤)
성훈이 수사자료를 보고 있다.
피해자 손바닥 사진을 하나씩 차례대로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박철호 사진 - 엄지손가락이 잘려있다.
이준권 사진 - 검지손가락이 잘려있다.
김정무 사진 - 중지손가락이 잘려있다.
정혁수 사진 - 중지손가락이 잘려있다.
성훈,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반장이 성훈 앞에 커피를 내려놓는다.

반장          오늘 최동혁 어머니가 강간사실을 인정했다며?
성훈          네. 신변보호를 요청했습니다.
반장            또… 변승환이란 애도 신변보호를 요청했다던데, 얘는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고 되어 있던데?
성훈          변승환이 아버지가 재단 주요 관계자랩니다.
반장          (알겠다는 듯이 고개 끄덕인다.)
              명단에 있는 애들은 그게 다인가?

짜장면 배달부가 들어온다. 성훈 앞에 짜장면을 내려놓는다. 주머니를 뒤지는 성훈. 동전만 나오는데, 반장이 대신 돈을 내준다.

반장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야근수당.
성훈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 명단은 백프로 신뢰할 게 못됩니다. 정혁수도 그 명단에는 없었거든요. 
              일단 2년 전 사건 당시 학교에서 징계조치를 받았거나, 피살자들과 가까이 지 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건 관련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반장           그런데 말이야, 최동혁 같은 경우 어떻게 되는 건가? 강간사실을 인
              정하기는 했는데 이미 법적절차도 끝난 거니까 처벌 없이 그냥 넘어가는 건가?
성훈          이미 합의로 끝난 거니까 그렇죠.
반장          애들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지켜주고 싶지 않군. 내가 그 여자애 부
              모 입장이라면 속으로는 살인범을 응원할 거 같아.

반장, 짜장면 포장을 뜯어 손수 면을 비벼서 성훈 앞에 두고 나간다.
성훈, 고개 숙여서 인사하면,

반장          그래도 경찰이니까, 별 수 없잖아?

손 흔들고 나가는 반장.
한참 동안 짜장면을 보고만 있는 성훈.

S#80. 영진의 집(낮)
영진의 어머니와 성훈이 마주 앉아있다. 울고 있는 영진의 어머니.

영진모        그 놈들이 우리 영진이를 죽게 한 거예요. 애가 온 몸에 멍투성이
              였다고요! 그런 놈들을 왜 그냥 냅둬요? 경찰이 나쁜 짓 하는 놈들
              잡으라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애들 목숨이 귀하면 우리 영진이
              목숨은요? 우리 영진이는 아무도 안 괴롭히고 그저 착하기만 했는
              데도 그 지경이 됐잖아요!

통곡하는 영진의 어머니. 안쓰럽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성훈.

S#81. 진호의 집(낮)
진호의 어머니가 진호 방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살짝 열려진 문틈 사이로 방 안을 엿보는 진호 어머니.
진호가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진호 어머니, 돌아서서 베란다로 온다. 수도 아래에 놓인 대야에서 진호의 검은색 셔츠를 올려드는 진호 어머니.
인서트 - 대야에 담긴 물이 핏빛으로 물들어있다.

S#82. 병훈의 집(낮)
인서트 - 주택
거실에 술판을 펴놓고 질펀하게 놀고 있는 병훈과 친구들. 여자들도 끼어 있다.

친구1         야, 학교가 쉬니까 좋긴 한데, 우리도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
병훈          우리 죄진 거 없잖아?
친구2         없긴 뭐가 없어. 너 그 때 영진이 깔 때 같이 있었다며?
병훈          난 망만 봤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쳐 마셔.
여자1         오빠, 근데 우리 이번에 남부연합 모임 꼭 가야해?
병훈          안 가면 형들한테 뒤질걸?
여자2         그런데 가면 막 이상한 거 시킨다며. 선배랑 빠구리 뜨게 한다면서?
병훈          걱정 마. 형들한테 말해서 내가 빼줄게.
친구1         그러고, 지가 먹는다. 씹새끼.

왁자지껄하게 노는 병훈과 친구들.

S#83. 진호의 집(낮)
진호가 방에서 나온다.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대문 열고 나가는 진호.
베란다에 있던 진호 어머니, 재빨리 진호 방으로 들어간다.


S#84. 병훈의 집(낮)
거실에서는 여자들이 늘어져 자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거실 뒤 방에 혼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병훈.

병훈          지금 간지가 중요하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너는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했다며? 나는 엄마한테 말도 못했단 말이야. 그냥
              집에서 있으면 안 돼? 까놓고 우리 이러다 뒤지면 동혁이 형이 책
              임 진대냐? 난 몰라. 아프다고 하고 안 갈 거야.

전화 내려놓는 병훈.

인서트 - 거실 베란다 쪽 창문이 스르르 열린다.

S#85. 진호의 방(낮)
방 안을 뒤지고 있는 진호 어머니.
인서트 - 괴기스러운 그림들과, 빽빽이 적혀있는 노트가 나온다.

책상 서랍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
경악하는 진호 어머니. 책상 서랍을 꺼내어 뒤지는데,
주먹만 한 불투명 용기를 찾아낸다. 용기 마개를 열고 그 안에 든 것을 꺼내는데,
비명을 지르는 진호 어머니.

S#86. 병훈의 집(낮)
병훈이 거실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다.
옆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여자들.
병훈, 눈을 뜬다. 일어나서 방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다. 뒤돌아보면,
자고 있는 여자들 뿐, 그 외에는 아무도 없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꺼지지 않자, 화장실 쪽으로 가는 병훈.
화장실 문 열자, 수도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병훈, 수도꼭지를 잠그러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 뒤에서 나타나는 마스크를 쓴 진호. 병훈의 목 뒤에 칼을 꽂는다.

인서트 - 진호의 방.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손가락들.

병훈의 비명소리가 물소리에 묻힌다.
병훈의 오른 손을 잡고 약지 손가락에 칼을 갖다 대는 진호.
피범벅이 된 진호의 얼굴.
진호, 이번에는 병훈의 왼 손을 들어올린다. 왼 손목에 차 있는 영진의 시계.
진호, 영진의 시계를 풀어내려고 하는데 잘 안 풀어진다. 힘주어 시계를 끄집어내려고 하는데, 병훈이 갑자기 진호의 얼굴을 움켜쥔다. 그 바람에 마스크가 벗겨진다.
진호, 병훈의 목을 난도질한다. 숨이 끊기는 병훈.
이 때 문 열리면서 사람 들어오는 소리. 진호, 시계 푸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달려 나가면,
나갔다가 막 다시 들어온 병훈의 친구들이 멍하게 진호를 보고 있다.
진호가 들고 있는 칼에서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잠에서 깬 여자 한 명이 비명을 지른다.
진호, 베란다로 도망간다. 친구 한 명이 진호를 뒤에서 잡지만, 진호가 휘두른 칼에 팔을 베여 떨어져 나간다.
베란다 열려진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진호.

S#87. 진호의 집(낮)
진호의 집에 선영이 와 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진호 어머니.

진호모        선생님, 어떡하죠? 우리 진호 어떡하죠?

선영, 핸드폰을 꺼내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선영          성훈아. 지금 좀 와야겠는데.

S#88. 거리(낮)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는 진호. 사람들이 피 묻은 진호를 쳐다본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달리는 진호. 환희에 찬 표정.

S#89. 진호의 집(낮)
수사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거의 실신할 상태가 된 진호 어머니, 형사의 부축을 받고 나간다. 선영이 걱정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고,
형사 한 명이 성훈 앞으로 온다.

형사          살인을 암시한 듯한 각종 그림과 살인행적을 적은 일기장등이 다수
              나왔습니다. 최소한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것 같습니다.
성훈          혈흔검사는?
형사          과학수사대에 넘겼으니 곧 결과 나올 겁니다.
선영          어떻게 되는 거야?
인서트 - 책상 위에 올려 있는 손가락이 든 유리병.

성훈          일단 체포해야지.

선영, 안타까운 눈으로 성훈을 바라본다. 그러나 성훈, 고개를 돌린다.

S#90. 수배 시퀀스(몽타주, 낮)
1. 경찰서.
반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형사들.

반장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전국에 몽타주 배포하고, 의경에게도 협
              력 요청할거야.

2. 거리
전봇대와 담벼락에 진호의 몽타주가 붙는다.

3. 교실
생각에 잠겨 있는 선영.

4. 병원
하라가 식당에서 TV를 보고 있다. 뉴스에서 “충격! 고등학생 연쇄살인범”이라는 제목으로 진호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싱긋 미소 짓는 하라. TV를 향해 손을 흔든다.

5. PC방
모자를 눌러쓰고 PC를 하고 있는 진호. 계속 달력과 시계를 본다.

S#91. 하라의 방(낮)
하라가 도넛을 먹고 있다. 성훈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하라          아저씨도 드세요.
성훈          다 먹었으면 얘기 시작해도 될까?

하라 앞에 진호의 사진을 내려놓는 성훈.

성훈          이 아이 알지?
하라          (열심히 도넛 먹는다.)
성훈          모른 척 해도 소용없어. 이미 여러 차례 너 면회 왔었다고 병원기
              록에서 확인했으니까.
하라          모른다고 한 적 없는데요? 머리 스타일을 바꿨나 보네.
성훈          이 아이가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야. 지금 수배중이지. 너는
              알고 있었겠지? 방에서 네가 그린 그림이랑, 네가 쓴 글과 만화 복
              사한 게 여러 장 나왔어. 이제 더 이상 너랑 이 사건의 연관성을 부
              인하지는 않겠지?
하라          부인한 적 없어요. 나는 격려하는 입장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결정권은 직접 발로 뛰는 사람한테 있었죠. 저는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요. 물론 가끔은 나도 거꾸로 영감을 얻을 때가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하라, 서랍에서 그림 한 장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하라          이 아이의 아름다운 구도의 과정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제 만화의 결말도 바꾸기로 했죠. 이 그림이 그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에요.

하라, 그림을 내려놓는다.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가며 절규하고 있다.
지옥도를 그려놓은 것 같다.

성훈          힌트를 주는 건가?
하라          아뇨. 단지 제 만화의 엔딩에 대한 거예요. 게시판 같은데다가
              스포일러 띄우면 안 돼요.
성훈          이 그림은 누구한테 보여줬지?
하라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작가한테 어제 밤에 보냈으니까, 아마 며칠
              안으로 게시판에 연재되겠지요. 새로 일하게 된 작가는 성실해서 마감시간은 철저히 지키거든요.

하라, 침대로 가서 눕는다.

 하라         그 그림, 선물이에요. 도너츠 잘 먹었어요.

성훈, 그림을 집어 든다.

하라(소리)    반말 쓰는 거… 이제 나랑 친해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게요.
성훈이 하라를 쳐다본다.
하라,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성훈을 응시하고 있다.

하라          난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요. 특히 그 눈이요.

성훈, 긴장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킨다.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는 하라.

S#92. 승환의 집/ *동혁의 집(낮)
승환이 전화를 걸고 있다.
*동혁이 PC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승환이는 방 문 밖을 계속 눈치를 보면서 통화 중이다.

승환          이번에 연합모임 안 가면 안 돼요?
*동혁         미쳤냐? 너 개좆밥 취급 받고 싶어?
승환          거기 한 번 가면 밤새야 되잖아요. 저 외박은 절대 안 될 거 같아
              요. 짭새가 행동 하나 하나 다 감시한다니까요.
*동혁         누구는 짭새 안 붙었냐?

*동혁이 방문 열면, 소파에 동혁 가족과 앉아있는 형사.

*동혁         알아서 대충 따돌리고 나와. 안 나오면 나한테 뒤진다. 알았냐?

승환, 전화 끊고 방문 열어본다. 마찬가지로 형사 한 명이 대기하고 있다. 승환의 어머니랑 대화중이다.
승환, 옷 입고 나온다.

승환모(소리)  어디 가니?
승환          잠깐 슈퍼에…
형사          같이 가자.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승환, 눈살을 찌푸린다.
초인종 소리 들린다. 승환이 문 열어주면 성훈이 들어온다.

성훈          마침 있었구나.

(시간 경과)
승환과, 성훈, 형사가 식탁에 둘러 앉아있다.
성훈이 승환 앞에 하라가 그린 지옥도 그림을 내려놓는다.

성훈          이 그림 보고 짐작 가는 바 없니?
승환          (그림을 본다. 표정이 굳는다.)
성훈          다음 범행 계획을 스케치한 거야.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범인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최동혁과 너 둘
              밖에…

그림 속,  불에 타 죽어가며 절규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사람들 머리 위로 “S"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승환          몰라요!
성훈          ……. 너를 위한 거야. 짚이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봐. 네가 아
              는대로 말을 다 해줘야 우리도 너를 지켜줄 수 있어. 이 그림, 너희
              들과도 관련 있는 게 틀림없지?

그림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승환          (울먹이면서)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벌벌 떠는 승환.
성훈, 그런 승환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S#93. 경찰서(낮)
반장과 성훈, 형사들이 모여 있다.
책상 가운데 놓여있는 하라의 그림.

반장          이게 반드시 다음 사건의 암시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성훈          이유 없이 그림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형사1         하지만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짓을 할까요? 일부러 혼란에 빠뜨리
              려고 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린 거 보내준 걸지도…
성훈            그건 아닐 거야. 그렇게 수가 얕은 애가 아니야. 매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마치 신처럼.
반장          이 그림을 본 애 반응이 이상했다면서?
형사2         그게 분명히 뭔가 아는 게 있는 듯 했습니다. 굉장히 무서워하면서
              … 하지만 통 모른다고만 하니.
반장          아무튼 2년 전에 이하라 강간했던 애들 중 살아있는 두 학생은 무슨
              수가 있더라도 지켜내야 해. 성훈이는 이 그림의 진위를 파악하도
              록 하고.
형사1         선배. 저기…

형사1이 입구 쪽을 가리킨다. 성훈, 입구 쪽을 보면,
선영이 손을 들고 서 있다.

S#94. 공원(낮)
나무 아래 신문지를 펴놓고 앉아있는 성훈과 선영. 도시락을 먹고 있다.

성훈          이런 걸 다 싸오고 그래. 잘 먹을게.
선영          너도 바쁠 거 같아서 그냥 김밥으로 해왔어.
성훈          정신없을 텐데, 미안하게…

맛있게 먹는 성훈.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선영.

(시간 경과)

성훈과 선영이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선영          나 내년쯤에 선생님 그만 두려고.
성훈          왜?
선영          유학 갈까 해. 학교 다닐 때 상담치료사 같은 거 생각했었거든.
성훈          선생님 좋잖아.
선영          좋은 줄 알았지. 이런 일 겪고 나니까 하나도 안 좋아. 이제는.
성훈          나도 유학이나 갈까?

선영, 갑자기 현기증을 호소한다.

성훈          왜 그래, 괜찮아?
선영          아냐. 요새 따라 현기증이 자주 나네.
성훈          가자. 데려다 줄게.

성훈, 선영에게 업히라고 한다. 선영이 사양하자,

성훈          옛날에는 잘 업혔으면서. 사람들 보기 전에 얼른.

선영, 성훈에게 업힌다.

S#95. 선영의 집(낮)
성훈이 선영을 업고 들어온다. 침대 위에 선영을 내려놓는 성훈. 이불을 덮어준다.
선영, 침대에서 일어난다.

선영          물 좀.

성훈, 선영에게 물을 떠다 선영한테 준다. 선영, 물을 마시고,

선영          미안해. 요새 빈혈기가 있나봐.
성훈          아냐. 피곤하니까 그렇지. 쉬어.
              내가 죽이라도 끓여놓고 나갈게.
선영          아냐. 성훈아. 그러지 마.
성훈          괜찮아. 염려 말고 쉬어.
선영          그게 아니야. 여기 있어.

성훈, 놀라서 선영을 바라본다. 선영, 애정 가득한 눈으로 성훈을 바라본다.
선영, 성훈의 손목을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끌려가듯 선영 옆으로 가서 앉는 성훈. 키스 하는 두 사람. 부드럽게 시작했던 키스 점점 더 격해진다…….
갑자기 키스를 멈추는 성훈. 선영을 다시 침대에 눕힌다.

성훈          쉬어.

성훈, 선영의 몸에 이불을 덮어준다. 선영, 성훈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눈을 감는다.

성훈, 주방으로 나와서 죽을 끓일 준비를 한다.
요리도구를 찾느라 선반을 이곳저곳 열어보는데, 성훈, 갑자기 한 쪽을 응시한다.
냉장고 뒤에 가려진 구석진 쪽 벽에 밑에서부터 천장까지 신문기사가 붙어있다.
모두 학교 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이다.
성훈, 놀라움 가득한 눈으로 기사 붙여놓은 것들을 읽고 있는데,

선영(소리)    얼마 안 됐어. 영진이 자살 소식 듣고 나서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까.
성훈이 돌아보면, 어느 새 선영이 다가와 있다.

선영          더 이상 영진이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려면, 먼저 학교 폭력 실
              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성훈, 다시 눈을 돌려 기사들을 읽어나간다. 어느 한 지점에서 시선이 고정된다.
성훈, 기사 한 장을 벽에서 떼어낸다.

성훈          이거 한 장 가져갈게.
선영          잠깐만. 밥이라도 같이…
성훈          미안해. 나중에.

성훈, 나간다. 그러다 다시 들어와서 선영 앞에 선다. 쭈뼛쭈뼛 거리다가 어색하게 선영의 볼에 뽀뽀하고 나가는 성훈.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간다.
뽀뽀 받은 볼을 매만지면서 성훈이 나간 곳을 보고 있는 선영.

S#96. 경찰서(낮)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성훈.

모니터 - 검색어 창에 “일진회”라는 단어가 뜬다. 검색 버튼 클릭한다.

기사 하나를 클릭하는 성훈. 잠시 후 옆에 있는 프린터기에서 기사가 출력된다.
기사를 뽑아서 들어보는 성훈.

인서트 - “일진회 학생 300명, 성인클럽에서 광란의 환영회”

성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S#97. 화장실(낮)
변소 안에서 통화중인 동혁.

동혁          너 어디야. 출발했어? 난 지금 간다. 시간 내로 와라. 너 때문에
              무시당하면 넌 학교에서 알아서 해. 

동혁, 전화 끊고 문에다 귀 기울인다.

인서트 - 화장실 밖에서 대기 중인 형사.
동혁, 변소 뒤 창문 열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S#98. 승환의 집(낮)
승환이 베란다에서 물을 주는 척 하고 있다.
(승환의 시점) 승환 어머니와 형사가 밥을 먹고 있다. 형사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승환 어머니는 다용도실로 들어간다.
승환, 베란다에서 나와 현관으로 달려간다. 승환이 현관문 손잡이 잡는 순간,
현관문 열리면서 성훈이 들어온다.

성훈          어디 가니?
승환          아뇨…
성훈          (주머니에서 출력한 기사를 꺼내어 보여준다.)여기 가니?
승환          (놀라움.)

성훈, 하라가 그린 그림도 꺼내어 기사와 나란히 보여준다.

성훈          이제 어딘지 말해줘. 네 친구들 살리고 싶으면.

승환, 울음을 터뜨린다. 형사와 승환 어머니도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달려 나온다.

S#99. 차 안(낮)
인서트 - 도로를 질주하는 성훈의 차.
성훈이 운전하고 있다. 성훈,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 버튼을 누른다.

소리          전화기가 꺼졌사오니 소리샘으로…  삐이이
성훈          난데. 진호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좋은 소식 전해줄게.

S#100. S클럽 건물(낮)
차에서 내려서 달려 나오는 성훈. “club S"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보인다.
클럽 입구로 달려가는 성훈.

S#101. S클럽 입구(낮)
입구에 서 있던 양복을 입은 고등학생 두 명이 성훈을 막는다.

학생1         여기 오늘 저희가 빌렸거든요?

성훈이 경찰 배지를 보여준다.

성훈          엄마 얼굴 보려면 빨리 애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 알겠냐?

안으로 들어가는 성훈. 학생들 무안하게 쳐다보다가 전화기를 꺼낸다.

S#102. 클럽1(낮)
어른처럼 차려입은 백여 명 이상의 학생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 스테이지에서는 여학생들이 옷을 벗으면서 스트립쇼 같이 난잡한 춤을 춘다.
한 쪽에서는 남학생들끼리 이종격투기 시합처럼 격투를 하고 있고, 상대방에게 주먹을 작렬시킬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스테이지 위 벽에는 크게 “S"자가 붙어있다.

가운데에서 술병을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혁.
다른 학교 일진학생 무리가 동혁에게 다가온다.

일진1         야~ 천하의 최동혁이 여기서 혼자 뭐하는 건가? 애들은?
동혁          (불만 가득한 얼굴로)늦는대.
일진1         (비웃듯)늦어? 최동혁이 요새 한 풀 꺾였나 보네? 예전엔 애들이 질
              질 쌌잖아?
동혁          할 말 다 했으면 알아서 꺼져라?
일진1         또 우리 최간지 기분 너무 상하게 하면 안 돼지. 가뜩이나 혼자서
              처량한 신세인데. 가자!

일진학생들 깔깔거리며 옆으로 지나간다.
동혁, 분노해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데,
동혁의 전화벨 울린다. 전화 받는 동혁.

동혁          뭐? 짭새가? 알았어.

동혁, 움직인다.

성훈, 옆에 있는 아이들 붙잡고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지만 음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어떤 아이가 갑자기 성훈에게 주먹을 날린다. 성훈, 아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흥분한 친구들이 성훈에게 일제히 덤벼든다. 2층으로 도망가는 성훈.


S#103. 클럽2(낮)
구석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일진 남녀.
일진 남자의 손놀림이 점점 더 과감해지는데,
갑자기 억 하면서 쓰러지는 남자.
여자가 놀라서 쳐다보면,
진호가 술병을 들고 서 있다. 여자를 향해 술병을 휘두르는 진호.

S#104. 클럽3(낮)
성훈, 술병을 들고 가던 학생을 덮친다.

성훈          여기 가스 연결된 곳이 어디야?

S#105.  클럽2(낮)
진호가 전기 배선관을 열고 작업 중이다. 그 뒤로 쓰러져 있는 일진 남녀.
니퍼로 전기 줄을 끊는 진호. 불이 꺼진다.

S#106. 클럽4(낮)
사방이 어두워진다. 음악 소리도 멎는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
동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간다.

S#107. 클럽2(낮)
동혁이 온다. 일진 남녀가 나란히 쓰러져 있다. 배선함 열어보는 동혁.
모든 전선이 끊겨 있다.
동혁, 핸드폰 열어서 앞을 비추는데,
앞에서 진호가 나타난다. 엉겨 붙어 싸우는 둘.
동혁의 배에 칼을 찔러 넣는 진호.
동혁의 오른 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에 칼을 가져다 대는 진호.
진호, 어디론 가로 달려간다.

S#108. 클럽5(낮)
보일러실. 진호가 들어온다. 진호, LPG가스 통 앞에서 멈춘다. 진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다. 진호, LPG가스 연결고리를 돌리려고 하는데,

성훈(소리)    손들어.

진호가 돌아보면, 성훈이 총을 겨누고 서 있다.

성훈          그 손 내려놔. 이건 장난이 아니야. 이제 그만해야 해. 진호야.

진호, 라이터를 내려놓는다. 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올린다.

성훈          어머니랑 선생님이 네 걱정 많이 하신다. 이만 돌아가자.

진호, 천천히 손을 내린다. 다시 연결고리를 잡는다.
흠칫하는 성훈.

진호          저는 이 일을 끝내야 해요.
성훈          진호야, 이러지 마.

진호, 연결고리를 푼다. 다시 라이터를 주워드는 진호.

진호          왜 저를 방해하시죠?
성훈          이건 옳지 않아.
진호          저를 애 취급하시는군요. 상관없어요. 제 목표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거니까.
성훈          어머니 생각 안 하니? 네 어머니께서 이걸 보시면…

성훈이 진호에게 달려든다. 엉겨 붙는 두 사람. 진호가 칼을 꺼내어 휘두르려고 하
지만 성훈이 먼저 진호의 팔목을 누른다. 진호, 자유로운 반대편 빨을 뻗어 떨어진
라이터를 주우려고 한다. 라이터를 발로 차버리는 성훈. 성훈, 진호를 한 방 먹여 기
절시킨다. 재빨리 LPG연결 고리를 다시 잠그는 성훈. 환기구를 열고 환풍기를 켠다.

진호(소리)    후회하실 거예요.

성훈이 돌아보면, 진호가 자기 목에 칼을 대고 있다.

성훈          내려놔!
진호          저것들은 나가서 자기처럼 악한 씨를 세상에 퍼뜨릴 거예요.
              없애야만 깨끗해지죠.        
성훈          칼 내려놔! 미쳤어?
진호          저는 실패했어요.
성훈          부탁이야! 칼 내려놔.
진호           저를 막은 걸 후회하실 거예요. 십년 후, 이십 년 후에 아저씨의 아
              이들이 저런 쓰레기들에게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평생 동안.
진호가 자기 목을 칼로 긋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성훈, 달려가서 칼을
빼앗고 옷으로 진호의 목을 지혈하지만, 이미 진호 숨이 끊어졌다.
성훈, 멍해져서 자기 온몸에 피가 튄 것도 잊고 진호의 시체를 안고 있다.

인서트 - 클럽 앞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학생들.

S#109. 교무실(낮)
인서트 - 평온한 학교의 모습.

한 교사 앞에 성훈이 서 있다.

교사          이민성 선생님은 그제 날짜로 사표 내셨습니다.
성훈          어디로 간다는 얘기 없었고요?
교사          네.
성훈          혹시 메모 같은 거 남긴 거 없습니까?
교사          (고개 저으며)혹시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성훈, 씁쓸한 얼굴로 교무실에서 나온다.

S#110. 하라의 입원실.(낮)
하라가 이젤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성훈.

하라          진호는 어떻게 됐죠?
성훈          부모님께 맡겼어. 어제 발인이었어.
하라          아까운 재능을 사라지게 했네요. 정말 아름다운 아이였는데.
성훈          다 끝났어.           
하라          무슨 말이죠?
성훈          너의 그 망상은 이제 끝이라고.
하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진호가 죽은 거랑 제 계획이랑 무슨 상
              관이죠?

하라, 싱긋 웃고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성훈,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S#111. 경찰서(낮)
성훈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반장이 다가온다.
반장          휴가 어디로 갈 건데?
성훈          글쎄요. 그냥 아무데나 며칠 머리나 식히고 오려고요.
반장          그래. 고생했으니까 잘 놀다 와.

반장 간다. 매니아가 성훈에게 온다.

매니아        선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성훈          뭔데?
매니아        (망설이다가)보고서 작성하는데요,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서요.

매니아가 수사파일을 성훈에게 건넨다.

매니아        다섯 번째 피해자 이병훈은 2년 전 이하라 강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그 때 미국에 있었대요. 그리고 이게 결정적인데…
              세 번째 피해자 김정무가 죽은 그 시각에, 김진호는 유영진의 가
              족들과 함께 유영진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건 유영진의 어머니로부터 확인한 내용입니다.

성훈, 당혹스러운 눈빛.

S#112. 교실(낮)
교사가 출석을 부르고 있다. 한 명씩 대답하는 학생들.

교사          변승환!

대답 없다.

교사          뭐야. 변승환이 안 나왔어?
학생          오늘 결석이에요.

승환의 빈자리.

S#113. 보일러실(낮)
눈을 뜨는 승환.
가정용 보일러실이다.
승환, 손과 발이 묶여 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다.
불투명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S#114. 법원(낮)
인서트 - 서울시 법원.

성훈이 법원 안으로 들어온다.

매니아(소리)  2년 전에 단 한 명만이 법원의 합의판결에 끝까지 항소했다고 하
              더라고요. 법원에 그 항소신청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는 성훈.

S#115. 법원 열람실(낮)
법원에서 자료를 열람하고 있는 성훈. 갑자기 손이 멈춘다.
인서트 - 성훈이 들고 있는 판결문에 “원고 이선영” 라고 써있다.

S#116. 구청(낮)
구청 직원 뒤에 서 있는 성훈. 구청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면,
호적등본이 두 장 연달아 출력된다.

직원            이민성 씨는 재작년 12월 12일에 이선영씨에서 지금 이름으로 개명신
              고를 하셨습니다.
성훈          원래부터 이름이 두 개였던 것은 아니고요?
직원          아니오. 원래 이름은 이선영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부모님이 이혼하셨네요.
성훈          부친 호적을 볼 수 있을까요?
직원          잠시만요.

직원이 클릭한다.
모니터 상에 화면이 뜬다.

직원          재혼하셨네요. 따님 한 분 더 계시고요.

모니터 자녀란에 떠 있는 ‘이하라.’

성훈          잠시만요, 자녀란에 있는 딸, 사진 좀 볼 수 있나요?
직원          그러죠.

직원이 모니터 두드린다.
모니터 위로 뜨는 하라의 얼굴.
경악하는 성훈.

[플래시 백] S#70 회의실
교장          오늘… 교무주임의 일을 비밀로 부쳐주세요.
반장          범인이 학교 내부인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플래시 백] S#78 차 안
성훈이 운전하고 있고 옆 자리에 선영이 앉아있다.

성훈          이번에는 약지 손가락 차례인데 똑같이 가운데 손가락이 또 잘렸기
              에. 범인도 실수를 하나…….
선영          그러게. 이상하네.

[플래시 백] S#110 하라의 입원실
하라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다.

하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진호가 죽은 거랑 제 계획이랑 무슨 상
              관이죠?

(플래시 백 종료) 
                                             
다시 현재.
성훈, 달리기 시작한다.

S#117.  차 안(낮)
성훈, 운전하면서 전화를 건다.

소리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성훈          제길!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성훈.

인서트 - 질주하는 성훈의 차.

S#118. 선영의 집 앞(낮)
성훈이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문을 마구 두드리는 성훈. 성훈, 전화기를 꺼내어 통화버튼을 누르고,

성훈          경비실이죠? 여기 15층인데요. 저 경찰이거든요?

대문이 열린다. 선영이 안에서 나온다. 성훈, 전화기 집어넣는다.
부스스한 모습의 선영.

S#119. 선영의 집(낮)
츄리닝 차림의 선영. 막 잠에서 깬 듯하다.

선영          화장실에 있어서 전화도 못 받았나봐. 웬일이야? 갑자기?

성훈, 집 안을 날카롭게 둘러본다.

선영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요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또 너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참았어. 커피 한 잔 할래?
성훈           으응.

선영, 주방에서 커피를 탄다.
선영의 걷어 올린 소매 위로 팔에 난 피멍 자국이 보인다.
선영의 뺨도 몸싸움을 한 사람처럼 할퀴고 긁힌 흔적이 보인다.

선영           미안해. 나 나쁜 애지. 너도 힘들었을 텐데, 나만 힘들다고 불쑥
               연락 끊어버리고 잠수 타서. 예나 지금이나 이 천성은 못 고칠 거
               같아. 걱정 끼쳤다면 미안해.

성훈의 방 안을 조심스럽게 관찰한다.
(성훈의 시점)학교 폭력관련 기사들이 붙어 있는 냉장고 뒤쪽의 벽.
성훈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춘다.
(성훈의 시점)보일러실로 들어가는 작은 불투명 유리문.

성훈          선영아.
선영          응?
성훈          너 하라랑 자매사이지?

컵 떨어뜨리는 소리. 선영이 성훈 쪽을 돌아본다.

선영          날씨 좀 쌀쌀하지 않니? 보일러 좀 킬까?

선영, 보일러실로 간다. 반대편 보이지 않는 손에 과도를 들고 있다.
선영, 보일러실 문 여는데,
총 꺼내어 선영을 향해 겨누고 있는 성훈.

성훈          첫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은 다른 세 건의 살인이랑 얼핏 비슷해 보이
              지만, 살인 수법과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랐지. 진호는 마취약을 먹                이지 않아. 나이프로 경동맥을 끊는 게 아니라, 큼지막한 사시미 칼
              같은 걸로 잔인하게 난도질 하지.
선영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도무지…
성훈          하라가 네 이복동생 맞지?
선영          … 그래 맞아. 하지만 그걸로 나를 범인으로 몰아붙이는 건 너무 말
              이 안 되잖아. 원래 말하려고 했어. 하지만 걔랑 나는 한 집에서 산
              적도 없고, 얼굴 본 것도 최근의 일이란 말이야. 엮이기 싫어서 숨
              기고 있었을 뿐이야.
성훈          교무주임이 죽은 거는 교장이랑 나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어.
              그런데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혁수의 약지 손가락이 아닌, 가운데
              손가락이 잘린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 교무주임이 살해된 것을 몰랐
              다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닌데 말이야.
              애초부터 범인은 너랑 진호 둘이었던 거지.

선영, 보일러 실 문을 활짝 연다. 재갈을 물고 있는 승환의 얼굴이 보인다. 울상이 되어 재갈을 문채로 절규하는 승환.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뜨는 성훈.

성훈          다 끝났어.
선영          아니. 이제 시작일 뿐이야.

선영, 승환을 끌어낸다. 승환의 목에 칼을 가져다대는 선영.

선영            한 가지 알려줄까? 애초부터 둘은 아니었어. 시작은 내가 먼저 했지.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었더라고. 그 녀석도 하라의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뒤로 빠졌지. 하지만 그게 진호인 줄은 나도 몰랐어.
성훈          …그럼 김정무는 네가?
선영          김정무는 즉석에서 내가 죽이기로 결정한 거야. 고맙게도 네가 전
              화로 그가 목격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줬잖아? 살려둘 수가 없었지.
성훈          나를 이용한 거군.

성훈, 권총의 안전장치를 푼다. 손가락이 떨린다.
선영, 승환의 머리채를 움켜쥔다. 재갈을 문 상태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승환.

선영          이 미친 세상을 살리려면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애초부터 죽여
              없애야만 해. 봐. 친구 돈이나 뺏고, 때려서 자살하게 만들고,  힘없는 여중생 강간하고, 그러고도 빽 써서 유유히 학교 다니고. 이런 놈을 어리다고 살려둘 필요가 있을까?
성훈          선영아. 제발…
선영          정답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살려둬서는 안 된다야.
성훈          네 마음 이해해. 하지만 이건 올바르지 않아.
선영          이해한다고? 네가 뭘 어떻게 이해한다는 거야!

선영, 승환의 어깨 죽지를 칼로 찌른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승환. 그러나 선영, 차갑게 미소 지으며 승환의 머리채를 잡아당긴다.

선영          내 동생 하라는 대학교 들어오면 나랑 배낭여행 가는 게 꿈인 아이
              였어. 나랑 같이 밥 해먹는 게 가장 좋다고, 행복하다고 했던 아이라                고. 그런데 이 개자식들한테 짓밟히고 나서 어떻게 된 줄 알아?
              착하기만 하던 동생이 어느 날 목이 잘려나간 시체를 그리고 있는
              걸 봤을 때 어떤 심정이 드는지 네가 알기나 해?
성훈          …….
선영          너희들은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존재하지. 그런데 정작 하는
              짓은 뭐야? 너희들이 지키는 것은 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딴 더러                운 것들의 목숨이잖아!
성훈          …….
선영          애초부터 위험부담을 안고도 하라의 만화대로 행동한 건 이 사건이
              화제가 되어 사람들한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지. 다시는 이런 놈들이 발붙이고 살수 없게 말이야! 진호가 중간에 끼어든 것은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좋았어. 걔는 하라 말처럼 빛나는 재능이 있는 아이였거든. 네가 막지만 않았어도!

선영, 칼 손잡이로 승환의 후두부를 내려친다. 고꾸라지는 승환.

선영          이딴 쓰레기들 수백 마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는데! 네가 모든 걸
              망친 거라고!
 
선영, 칼을 높이 치켜든다.
성훈, 총을 든 손이 흔들린다.

선영          이제 종지부야. 여기서 마침표를 찍어야해.
성훈          (이를 악문다.)
선영          야아아아!!

탕!
성훈의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승환의 위로 엎어져 있는 선영. 그 밑으로 핏물이 번져 나간다.
성훈, 털썩 주저앉는다.
선영의 시체 아래로 번지고 있는 핏물.

S#120.    진호의 묘(낮)
인서트 -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천의 경치.
         가족들이 나와서 나무를 심거나, 묘의 잔디를 정리하고 있다.
진호의 묘 앞에 꽃을 내려놓는 성훈. 그 옆에는 진호 어머니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시간경과)

나란히 서서 먼 경치를 보고 있는 성훈과 진호 어머니.

진호모        종교가 있으세요?
성훈          없습니다.
진호모        이 세상에서는 우리 진호가 죄인이죠? 세상이 비난하는.
              다행히 저 세상에서는 진호도 죄인이 아니래요. 진심으로 회개하면. 진호가 회개할 수 없으니까 대신 제가 매일 이렇게 와서 기도하고 있어요. 죽어서도 속 썩이는 게 자식이네요.
성훈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진호모        네?
성훈          모든 사람이 진호 군을 비난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S#121. 하라의 방(낮)
아무도 없이 빈 방. 이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S#122. 경찰서(낮)
여경이 통화중이다.

여경          김형사님 모레까지 휴가세요.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S#123. 아파트 1층 입구 앞(낮)
하라(소리)    시간 나면 yy병원 412호에 들려주라고 전해주세요. 거기 김성훈
              형사님께 드릴 선물이 있거든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손.
대학생처럼 발랄하게 꾸미고 나온 하라.
아파트 1층 자동 출입문 앞에 서 있는 하라.
하라,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낸다. 선영과 함께 찍은 사진이 지갑에 끼워져 있다. 사진을 빼는 하라의 손.
사진을 보고 있는 하라의 얼굴. 입가에 미소.
다시 지갑에 사진을 끼워 넣는 하라. 이번에는 사진이 보이지 않게 지갑 뒷면에 끼워 넣는다.
하라, 호출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호출기로부터 등지고 선다.
호출벨 소리가 들리고,

승환(소리)    누구세요?

하라, 천천히 돌아서면서 손으로 호출기 카메라를 살짝 가린다.

하라          과외 선생님이에요.
         
인서트 - 하라의 입원실. 이젤에 걸려있는 한 소녀의 그림.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각기 다른 다섯 손가락을 모아 완성된 손 하나를 들고 있다.

잠시 후, 현관 자동문이 열린다.
하라, 미소를 짓는다. 
호출기 카메라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하라의 손.

화면 어두워지며,

끝.

 

 

한 번은 심리치료를 연구하시는 교수님께서 제 습작들을 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폭력과 살인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혼자 즐기는 것 같다.”라고.
 그 분 말씀대로 제 안에 그러한 불온한 욕망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생각했을 때, 제 시나리오 나오는 폭력은 응징의 의미일지언정 유희의 의미였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나리오도 ‘그들’을 응징하고 싶은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을 즈음, 저는 사건 후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취재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여학생은 자퇴해서 정신병 치료를 받고 있고, 가해자 남학생들은 다들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한 동안 충격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습니다. 피해자는 계속 고통스러워하는데 가해자는 너무도 쉽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째서 빈번하게 되풀이되는 것일까요? 때때로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값싸게 사용하여 정작 지켜야할 정의를 무너뜨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은 부당한 현실에 대해 제 나름대로 맞서 싸우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저는 자신의 죄를 가볍게 생각하며 희희낙락거리고 살고 있을 ‘그들’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표현하며, ‘그들’을 응징했습니다.
 미숙한데다가 거칠기까지 한 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긴 시나리오를 모니터 해준 친구들 - 승환이 형님, 수호, 동생 승환이, 초롱 누나 … 많은 사람들 -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저의 분노를 보다 더 정제된 언어와 형식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