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수작 - 서기슬(유동05)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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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반의 반쯤 남아서 오후 내내 혼자 식탁 위를 견디던 물컵, 내가 누웠던 자리가 갈증하는 소리를 물컵은 들었을까, 그 반의 반쯤 남은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눅눅한 오후 햇빛과 공기를 모두 마시는 기분이다, 혼자 견디며 증발하는 것 그리고 담담하게 서서히 미지근해지는 것, 주전자 속 끓었던 시간과 때로는 식었던 시간을 지나 스스로 느리게 자신의 내면을 만지는 법을 배워온 물의 그 미지근함에 햇빛은 가장 잘 녹을 것이다, 마신다, 마른 침에 섞인 불편함이 친숙하게도 내 안으로 녹는다.

2
목이 타는 자리로 물기를 밀어 넣는다, 아니 빨아들이는 것일까 그 안에 허공이 살고 있으므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갈증이 머무는 곳이 물의 종점이라면 저 바다가 생기기 전에 지구는 얼마나 그리움에 콜록 거리고 있던 것일까, 물기가 다다른 내 안의 심해에는 눈이 없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눈이 필요 없다, 하지만 수면에 담겨 있던 누군가의 눈빛이 자꾸만 눈이 없는 물고기 앞을 서성인다, 내가 관심이 많던 당신의 눈빛은 저녁 바다의 수평선 같은 곳에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모든 수면마다 조금씩 담겨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바다에 가지 않아도 목이 마를 때마다 수시로 당신의 눈빛을 삼키고 그 속눈썹 안쪽에 살던 떨림이 물결과 같은 무늬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안의 눈이 없는 물고기가 생전 겪어본 적 없는 그 눈빛을 따라 만져지는 출렁임을 나의 내면은 감각하는 것이다, 길도 빛도 보이지 않는 눈이 없는 물고기가 내 안에서 심해 속 물결을 두드리는 그 기분을 때로는 그리움이라고 부르던가.

 

 

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는 '삶'으로 쓰는 것이라는 실마리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한 번 호명해보기 위해 언어의 흔적 사이를 매일 밤 살피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누추한 '삶'이 언어의 옷매무새를 좀 가다듬고 ‘시’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 앞에 흘러나오게 되니 부끄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더욱이 시간을 쌓고 채워서 다음에 또 이런 글을 쓸 일이 생기게 되면, 좀 덜 부끄러운 모습으로 소감을 쓸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시대가 어렵습니다, 시를 쓴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얼 그리 열심히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변 사람들 밥도 사주면서 글쟁이 구실 좀 하라고 상금까지 주시는 것 같습니다. 문학상을 주관한 성대신문사 학우 분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하며, 또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몇 명 되지 않지만 소소한 글쟁이의 삶에 늘 관심을 가져주는 소중한 나의 독자님들, 함께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나의 삶에 포함되어주었던 내 주변의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