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우수작 - 허준행(국문0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몸과 마음을 다해 무궁한 영광을 더는 국가에 바치지 않아도 온갖 축복은 우리 가정에게 있으라는 正名은 언제까지나 무서워요.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다는 당신의 상투적인 성장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걸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에요. 모든 걸 통째로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삼킬 수 있잖아요. 당신의 집은 푸른 초원 위에 펼쳐져 있군요. 거기에서 즐겁게 뛰어 놀았나요? 갈라진 혀도 그 때 얻었나요? 짧은 다리를 가진 나는 빠르게 달리지 못해요, 잰걸음으로 여기까지 오느라 다리는 퉁퉁 부어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종일 서 있어야 했답니다. 그게 다 평범해지기 위해서였어요.
나는 푸르른 나무에요. 드넓은 대지에 뿌리를 콱 내려요. 내 종아리는 핏줄이 푸르게 툭툭 불거져 있어요. 나는 이 혈관이 살을 뚫고 땅에 깊이 박혀서 흙에 있는 풍부한 미네랄과 비타민을 깊숙이 섭취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식물로 꿈꾸고 싶었던 거예요. 광합성은 굉장한 축복이에요. 나는 88년에 태어났어요. 아무리 일을 해도 원죄처럼 88만원을 받고 살아요. 납세의 의무도 제대로 하는데 어쩐지 나는 당신처럼 평범한 국민이 될 수가 없어요. 당신의 보통 유전자를 이식해줘요.

어제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가 고흐를 만났어요. 고흐는 진열대 구석에서 녹슨 면도날로 귀를 자르고 있었어요.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물론 매끈하게 잘려지지 않았어요. 그가 비명을 질렀고 나는 양말로 그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어요. 고흐는 자른 귀를 나에게 선물로 주면서 말했어요. 그림을 그려서 얻는 수입이 한 달에 88만원도 안됐다고 말예요. 전적으로 동감이었어요. 과연 귀를 자를만한 이유였지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고흐의 귀는 펄떡펄떡 심장처럼 뛰고 있었어요. 나는 그걸 얼른 삼켜 버렸습니다. 아직도 그의 귀가 뱃속에서 쿨럭 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나는 결코 속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달콤함에 질식해버리면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내 안에 살아있는 숨결들이 하악하악 가쁘게 귀를 기울이지요. 당신은 들리나요?      

 

삶이 지난하고 고달픈 여정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될 때쯤, 그래도 그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기적 같은 일이 가끔 생기곤 한다. 나에게는 성대문학상 수상소식이 그랬다. 바랐으되 예상은 하지 못한 결과에 들뜬 가슴을 한동안 진정시키지 못했다. 추운 겨울, 잔뜩 움츠러든 몸과 마음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었다.
  먼저 보잘 것 없는 작품에서 칭찬거리를 찾아내시느라 고생하셨을 심사위원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국어국문학과와 사학과의 선생님들께도 말로는 다 하지 못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늘 자식 걱정에 시름이 깊으신 부모님과 잔소리만 늘어놓는 못된 오빠를 둔 여동생 선미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보낸다. 나의 친구들?족패를 비롯해 대학에서 만난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들에게 심심한 애정을 표하며, 특히 달콤한 겨울잠을 반납하고 열심히 자신의 꿈을 찾아 가고 있는 꽃돼지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싶다. 더불어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그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가득 담아 부친다. 내가 썼고, 쓰고 싶은 시는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에 대한 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