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우수작 - 김인한(철학04)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엘리뇨와 지구온난화,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2099년까지 지구평균기온이 평균 4도 정도 올라가고 북극의 빙하도 전부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UN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문제긴 문제더라고. 이번 겨울도 더웠는데 앞으로 사계절에서 여름만 남는지 모르겠어.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고 녹아버린 빙하와 미국 어딘지 모를 곳을 덮치고 있는 홍수가 차례로 화면을 채운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지구를 살리고 싶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했다. 그때에도 언젠가 저런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지구가 아파요’. 지구는 분명 열이 나고, 피부는 갈라지고, 심한 복통을 일으키고 있었다.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프구나, 지구가. 삼십분 가량 계속된 지구의 모습은 나의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만큼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가 지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과 자막이 화면 위로 떴을 때, 방법을 꼭 실천하겠다는 나의 각오는 아주 결연했다. 지구를 구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 뛰었다. 정말로 지구를 구하고 싶었던 때가, 그런 적이 있었다.
 
 -저것도 문젠데 말이야. 국민소득 2만불이면 뭐해.

 이번에는 IMF이후 빈곤층이 2배로 증가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화면 위로 홀로 앉아있는 할머니, 판자촌, 공원의 노숙자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 저런 영상을 보고 있던 기억도 난다. 외롭고, 아프고, 고통 받는 표정들이 지금처럼 화면에 차례로 나왔었다. 아프구나, 사람들이. 나는 그 표정들이 하나씩 내게 와 닿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아주 선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서서 웃고 있는 모습을 화면에 내보냈을 때, 세상에 아직 남아있는, 슬픔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저렇게 환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말이지 그들을 돕고 싶었던 때가, 그런 적이 있었다.
 뉴스는 다음 소식으로 넘어간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지만 더 이상 보고 있지 않다. 다만 텔레비전의 검정 사각 테두리에 시선을 던진 채로 앉아있다. 김 선생님이 온난화와 빈곤층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자, 봅시다. 아까······. 그래, 나는 본 적이 있다. 내가 이 학교에 첫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복도에서 두 아이가 싸움이 붙었다. 그때 마침 복도를 지나고 있었던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두 아이를 말리려 다가갔다. 바로 그 순간, 깝치지 마!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내지른 소리였지만, 나는 ‘깝치지 마’가 왠지 나를 향한 말 같이 느껴졌다. 깝치지 마. 그 말의 깊이를 알 적이 되면, 그때야 비로소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는 너무나 작아서 고작 한 뼘의 내 삶조차 지키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건 어른의 말이었다.
 
 지구를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아주 평범했다. 정말이지 지구를 구하고 싶어서 분리수거니 뭐니 이것저것 했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고, 정말이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티비에서 홍수특집 수해기금마련, 사랑의 리퀘스트 따위를 보고 ARS에 몇 번 참여해 본 게 다다. 나는 나를 향해 되뇌었다. 깝치지 마. 그리고 아까부터 혀를 차며 문제, 문제 어쩌고 떠드는 김 선생님에게도 깝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김 선생님, 어제 은희 어머니가 준 촌지는 잘 받으셨나요? 라는 말과 함께.

 커피를 다 마실 때쯤, 휴대폰이 울린다.
 
 -도서관 문 좀 열어주세요, 코팅기를 사용했으면 해서요

 통화를 끝내고 폴더를 닫으니 액정화면 속 시계가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코팅기는 대체 왜 도서실에 있는 거야. 나는 툴툴대며 기지개 한번 켜고, 일회용 컵 바닥에 얕게 깔린 남은 커피를 입에 다 털어 넣는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일회용 컵을 한 손으로 꾸겨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게실을 나와, 도서실로 향한다.

- 빨리 좀 와요

 도서실 문 앞에서 6명의 아이들이 나를 보며 외친다. 매일 적으면 넷, 많으면 열 명도 넘는 아이들이 도서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공식적인 점심식사시간은 12시부터 12시 50분이다. 물론 밥은 빨리 먹으면 20분 만에 먹는다. 그래서 처음에 왔을 땐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밥을 먹자마자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밥을 먹자마자 곧장 노동현장으로 뛰어 들 만큼 어리석지 않다.
 사실 이건 아이들이 밥을 너무나 빨리 먹어서 생긴 문제다. 아이들은 12시 반부터 점심시간이지만 어떨 때는 채 12시 40분이 되지 않았는데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있었다. 밥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버리는 건지,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참 빨리도 먹는다. 이 정도면 병이다. 만성 스피드중후군 정도로 해둘까. 대충대충 빨리빨리,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 쑥쑥 커서 할머니가 되기도 전에 뼈가 부서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참으로 한국인스러운, 한국병이다.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지나쳐 빠르게 도서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만화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책을 빼내 도서실 오른편에 위치한 책상 위에 띄엄띄엄 앉는다. 욕심은 많아서 서너 권씩 들고 앉는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에 손을 가져간다. 한낮이므로 문에서 가까운 라인 하나만 켠다. 그래도 도서실은 환하다. 코팅하러 왔어요, 형광등 스위치에서 손을 내리자마자 학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온다. 내 노동시간을 10분 연장시킨 장본인들이다. 물론, 점심시간에 일을 부탁할 정도로 담임선생님도 바빴을 테고, 대부분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은 이 동네 특성상 저 두 사람도 바쁜 시간 쪼개서 온 사람들일 테다. 이해할 수 있지만,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용법을 몰라 코팅기 앞에서 허둥대고 있는 두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모두 바쁘기 때문에 이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가 말했었다. 그녀는 벌써 화장이 신부화장 수준으로 두터워져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성인 여드름은 그래도 가려지지 않는다. 나는 문 바로 옆에 놓인 대출반납대를 겸한 내 책상으로 가서 첫 번째 서랍을 연다. 립글로즈를 꺼내 두세 번 입술 위를 문지른다. 입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메말라가는 것 같았다. 립글로즈를 다시 서랍에 넣으며 나 역시 화장이 두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선생님 ‘학교가기 싫어요’ 책 찾아주세요, 네? 네? 찾아주세요, 새된 목소리로 여러 번 반복하는 버릇이 있는 연주가 어느새 내 앞에 와서 개짖듯이 사납게 쏘아붙인다. 나는 노골적으로 짜증난다는 표정을 보이지만, 연주는 완전히 무시한 채 더욱 재빠르게 짖는다. 선생님 반납함 열쇠주세요, 귀여운 말투를 가지고 있지만 하는 짓이 영락없는 악동이라 양아치가 될 소지가 다분한 정연이가 도서관을 들어오면서 외친다. 정연이는 매일 반납함을 확인한다. 그것이 무슨 특별한 권력이라도 되는 양, 내가 직접 그 일을 하거나 다른 아이에게 시키는 걸 용납 못한다.

-어? 언니 언제 왔어?
-방금 왔어, 방금

 둘은 2년 차이가 나지만, 금세 친구가 된 터였다. 둘 다 도서실에 자주 출입하는 까닭이다. 책을 많이 읽진 않는데, 그냥 자주 출입만 한다. 나는 연주의 입막음을 위해 얼른 책을 찾아주고는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그 전에 정연이에게 반납함 열쇠를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렇게 자리에 다시 앉으면,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 든다. 엊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 오전 계속되었던, 일상의 의미 없는 반복이 다시금 시작되기 때문일까.
 
-대출이요
-다음주 월요일까지

 별 볼일 없는 일의 무미건조함이 바코드를 찍는 팔 동작과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난다. 언젠가 정연이가 대출해주고 있던 내게 와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왜 여기서 일해요? 나는 할말이 없었다. 왜 여기서 일할까. 너도 크면 알게 돼. 나는 이런데서 일 안 할 건데요. 정연은 나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어이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른은 아이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만 하니까. 자란다는 것은 한심해지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자라서, 아이에게 경멸을 받는 것이라고.
 어느새 아이들이 도서실에 많이 들어왔다. 오늘은 4교시까지만 하는 수요일이라 아이들이  도서실을 다른 날처럼 꽉 채우진 않는다. 꽉 차면, 여기저기 조금씩 부딪히고, 부딪히면 웅성거리고, 웅성거리다가 시끄럽게 떠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서실이 꽉 차지 않은 오늘은 물론 조금 소란스럽긴 하지만, 여유 있는 날이다. 나는 책상 왼편에 놔두었던 ‘직장이 즐거워지는 10가지 비법’을 집어 펴든다. 이번 주는 이 책이 권태로운 일상에 새로움을 더할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오늘 오전까지 삼일 동안 겨우 70쪽 정도 읽은 상태다. 한 4줄 읽다보면 아이가 오고, 한 5줄 읽다보면 또 다른 아이가 오고. 그렇게 너덧 번 반복하면 ‘직장이 즐거워지는 10가지 비법’은 내게 새로운 권태를 주고, 책은 덮어진다. 그렇게 권태가 내려앉은 책은 절대로 집에 가져가서 읽지 않는다. 내용이 아니라 집어 드는 행위에 권태를 느껴 주인에게 버림받는 책의 심정은 어떨까. 이미 이 책과 같이 빌려온 ‘경주마처럼 달려라’는 월요일에 단 36 쪽까지만 읽힌 채 버림받았다. 그래서 아직 이 책은 더 참고 읽을 필요가 있었다. 아직은 수요일이었고 시립도서관에 다시 가기엔 귀찮았기 때문이다. 이곳이 초등학교 도서실이긴 하지만 교사들을 위한 책들이 너무 부족하기에, 책을 빌리려면 거리가 꽤 되는 시립도서관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청소 다 했어요.
 
 빗자루를 든 아이가 어느새 내게 와서 무표정으로 말한다. 청소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오는 지도 모르게 와서 성의 없는 빗자루 질과 걸레질을 한다. 무표정과 무성의가 특기인 녀석들이 한번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런데 저희가 왜 여기 청소를 해야 하나요?
 -너희가 쓰는 곳이니 너희가 깨끗이 청소를 해야지.
 -저희는 여기 안 오는데요.
 -너희, 여기서 책을 한권도 안 읽었단 말이야?
 -예, 책 읽는 거 싫어하는데요.

심지어는,

 -선생님이 여기 계속 계시니깐 선생님이 해야 하지 않나요?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이해는 가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걸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청소담당이니 청소하라면 할 것이지 왜 말이 그렇게 많아, 라고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지만, 내 월급에 청소 수당은 들어가 있지 않거든. 그런 말들은 속으로 삼킨 채.
 나는 검사하는 척 대충 둘러보고는 수고했다며 돌려보낸다. 서가 아래 빈틈에서 빠져나온 먼지가 도서관 구석을 굴러다녔지만 못 본 척 했다. 그 먼지가 하루나 이틀쯤 더 있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처음 이 학교 도서실 사서로 취직해서 아침마다 열심히 청소한 적이 있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내내 쓸어도 다음날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걸 목격한 나로서는 그게 이제 놀랄 것도, 혐오할 것도 아니었다. 도서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들락거려 활기 넘치는 도서실에는 있을 수밖에 없는, 어쩌면 그 증거로써 제시 가능한 게 바로 먼지 아닌가. 그렇게 결론이 난 다음날부터, 아침 청소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청소하는 아이들의 질문을 받은 게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내 자리로 돌아오려고 몸을 돌리는 데, 맨 끝 서가 뒤편에서 쑥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연주와 정연이의 목소리였다. 이 도서실은 서가가 가로로 놓여져 있어서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바로 앞 서가에 의해 차단된다. 그래서 맨 끝 서가 뒤편에 서면 완전히 모습을 숨길 수 있어서 별일이 다 일어난다.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팔이 까지고, 뛰고, 떠들고, 레슬링 등등.
 저 둘은 위험한 아이들이다. 책은 별로 읽지 않으면서 도서실을 자주 출입하기 때문에 독서 외 활동을 많이 해서 나를 곤란케 한다. 어제만 해도 내 컴퓨터를 몰래 만지작대다가 대출반납프로그램 속 연도를 잘못 건드려, 제때 반납한 책을 연체 450일로 나오게 한 전과가 있었다. 그랬기에 맨 끝 서가 뒤편의 저 둘이라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얼마 안가 쑥덕대길 마치더니 얌전히 서가의 육중한 몸 밖으로 나온다. 이상했지만, 일단 안심하고 내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을 두 아이에게 두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들은 내 앞을 가로질러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서린에게 다가간다.

 -야 너 수업 다 끝났지?
 -응 왜?
 -우리랑 같이 놀자.

 한 아이가 대출하러 오는 바람에 다는 못 들었지만, 그 둘은 서린에게 같이 놀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어제 연주와 정연은 서린과 욕을 하며 싸웠기 때문이다. 연주가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는 사이, 연주가 읽고 있던 만화책을 서린이 읽었던 게 발단이 됐다. 연주는 보자마자 야, 너 뭐야, 재수없게! 라고 외쳤다. 옆에서 정연은 아, 쩔어! 라고 거들었다. 둘이 책을 뺏으러 달려들자 서린은 손을 휘둘렀다. 나는 셋이 엉키기 시작하자 달려가서 싸움을 말렸다. 그리고 정연에게 물었다.

 -너 그거 어디서 배웠어?
 -뭐요?
 -쩐다는 말.
 -아 이거요, 애들 다 써요.

 어제 연주와 정연은 내내 씩씩대고 있었다. 그 수준이 한마디로 ‘쩌는’ 수준이었다. 분명 서린에게 큰 적의를 품고 있었을 터였다. 같이 놀자 라는 말엔 무언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그 둘 외에 다른 4학년 아이 두 명이 더 붙어 같이 놀자고 한다. 이상하다. 서린은 왕따다. 대놓고 너 왕따지? 라고 쏘아붙이는 애들이 서린과 같이 놀기를 원하고 있다.

 -아 같이 놀자고!

 정연이 짜증을 낸다. 서린은 여전히 책을 읽으며 대꾸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온다.

 -선생님, 컴퓨터 해도 돼요?

 아주 느릿한 말투다. 서린이 말한 컴퓨터는 검색용 컴퓨터다. 하지만 인터넷도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호시탐탐 컴퓨터를 노린다. 원칙은 인터넷 금지지만 허용해 줄 때도 더러 있다. 서린과 같은 경우는 대개 허락해 준다. 서린은 컴퓨터를 좋아한다. 도서실 문이 닫히면 피씨방에 간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집에 갈 시간에 서린은 피씨방에 간다.
 처음 서린의 존재를 안 것은 퇴근하다가 잠시 도서실에 들른 최 선생님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어느 흐린 날의 오후 5시쯤이었다. 폐실 시간이라 도서관에 아이들은 고작 3명 남아있었다. 그리고 막 2명의 아이들이 학원에 간다며 가방을 매고 문을 나서려던 찰나였다. 단발머리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가 그들에게 달려가더니 다짜고짜 나가는 그들의 가방을 한 손에 하나씩 잡고 세게 당겼다. 한 아이는 비틀거렸지만 한 아이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넘어진 아이는 곧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울 듯한 표정의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착하지, 착하지 하며 달랬다. 최 선생님은 그 단발머리 아이에게 다가가 무슨 짓이야! 하며 혼을 냈다. 가까스로 울지 않은 아이가 비틀거렸던 아이와 나가고 나는 고개를 돌려 최 선생님과 단발머리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혼나면서도 표정이 없었다. 최 선생님이 혼을 내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 아이가 입을 열었다. 왜 다들 나갔죠? 최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제 문 닫을 시간이니까 그렇지. 넌 집에 안가니? 계속 열어요. 안돼, 여기 사서 선생님 퇴근하셔야지. 그리고 학교도 문이란 문은 다 잠글 거야. 너 그럼 집에 영영 못 들어간다. 집에 안가요. 피씨방, 피씨방에 갈 거예요. 집 싫어. 집에 안가? 집에 아무도 없어요. 부모님이 일 나가시니? 예. 근데요, 집주인이요, 어, 어, 집을 판대요. 어떤 할아버지가 저번에 놀러왔었어요. 막 집 여기저기 돌아 다녔어요. 최 선생님은 학원에 가는 아이들도, 부모님도, 집주인도, 집을 보러온 할아버지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아이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야? 서린이요. 그때부터 서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린은 매일 폐실 시간까지 도서실에 남아있었다. 나는 서린이 검색용 컴퓨터로 인터넷 하는 걸 허락해주었다.

 서린이 내게 오자 서린이 앉아있던 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아이 넷도 내게 왔다.

 -선생님, 합창부 점심 먹고 바로 오라고 했는데 지금 1시 반이니깐 안가도 되죠?
 -글쎄. 그걸 왜 나한테 묻니?
 -아니 째가요, 합창부 간다고 안 된대요.
 -우리랑 놀자니깐!
 -그래, 우리랑 놀아.
 -너희들, 왜 얘랑 놀려고 하는 거야?
 -놀고 싶어서요. 그동안 사이가 안 좋아서 풀려고요.
 -근데 얘는 그게 싫대.
 -싫어도 놀아야 되요.
 -왜?
 -우리가 놀고 싶으니까요.
 -너희가 놀고 싶다고 놀아야 되는 거야? 얘 동의 없인 당연히 같이 못 놀지.
 -왜요?
 -누가 너한테 같이 놀자고 하는데 네가 놀기 싫으면 넌 안 놀잖아?
 -아닌데요.
 
 연주는 침 뱉듯이 말을 찍찍 내뱉는 어투를 가지고 있다. 그 어투로 저런 말을, 짧게 쨉을 날리듯 날리면, 나는 기분이 더러워진다. 침을 맞는 기분이다.

 -아이씨, 놀자고!

양아치 유망주 정연이가 또 한번 제 성질을 내보인다.

 -얘들아, 얘는 놀기 싫다니까 너희들끼리 놀아.

 네 명의 아이들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됐다, 우리끼리 논다,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서린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이런 소란은 굳이 정연, 연주, 서린이 아니더라도 매일 일어난다. 나는 건방진 꼬맹이들을 최대한 점잖은 방향으로 설득하여 중재한다. 이런 소란이 연거푸 겹치는 날에는 그냥 화를 내며 도서실 밖으로 내쫒는다. 내가 설득을 하건, 화를 내건 퇴근 후에는 기분이 더러워진다. 입안에 걸레를 문 것 같이 텁텁하고, 몸이 걸레짝이 된 듯 흐물흐물하다. 그럴 때면 내가 로봇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장기와 피부 모두 단단한 강철로 피로를 모를 테니까. 설령 피로를 느낀다 해도 충전만 해주면 원상복구니, 불면과 만성피로에 지칠 일은 없을 테니까. 아마 학교에서도 내가 로봇이면 열렬히 환영할 텐데. 성능 업그레이드를 꾸준히 한다면 아마도 계약직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어느새 서린이 내 앞에 와있다.

 -선생님 열린 도서관 싸이트가 안 들어가져요.
 -그래? 인터넷이 안돼?
 -아니요. 인터넷은 되는데 그 싸이트만 안 들어가져요.
 -그럼 안 되나 보네. 그 싸이트가 문제가 있는가봐.
 -선생님이 와서 한번 들어가 보세요.
 -내가?
 -네. 선생님이니까요
 -네가 하나 내가 하나 똑같아.
 -아니에요. 선생님이잖아요.
 -싸이트가 너는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나는 들여보내 줘? 그건 그냥 그쪽 싸이트가 문제    가 있는 거야.
 -아이, 한번만 해봐요.

 서린은 말이 안 먹힌다. 한 달 전, 책이 연체되어 이달 말까지 대출금지가 되어있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내게 와서 오늘은 책을 빌릴 수 있냐며 나를 들들 볶았었다. 나는 친절히 저번에 빌린 책이 연체되어 이달 말까지 책을 빌리지 못한다고 말해주었지만 서린은 믿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서린의 대출증 바코드를 찍어 모니터에 빨갛게 뜬 대출 금지 표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또 그 다음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서린은 매일 책을 들고 왔다. 매번 대출 금지를 확인시켜줬지만 막무가내였다. 옆에서 보다 못한 한 아이가 너 왜 그러냐고 짜증을 낼 정도였다. 그만큼 징그러운 구석이 있었다. 나는 답답함에 서린을 쳐다본다. 내가 서린의 문제로 상담했을 때 왕따의 원인은 그 아이에게 있다는 명쾌한 해답을 준 내 친구가 떠올랐다.

 -한번만요, 한번만

 서린은 짜증을 유발한다. 내 친구의 말이 맞는 건가. 서린은 날 때부터 짜증유발유전자라도 달고나왔단 말인가. 내 친구는 내 친구이기는 하지만, 일찍 취직해서 화장이 무척 두터워진 내 친구는 왠지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신뢰가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서린이 쓰고 있던 컴퓨터로 다가가 접속을 시도한다. 될 리가 없다.

 -다른 싸이트에 들어가.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나는 도서실 가운데 벽에 걸려있는 동그란 시계를 본다. 분침은 어느새 45를 지나 50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계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길게 트인 창이 바라다 보이고, 창밖이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를 떠올린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예상됩니다.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창밖이 조금씩 어두워짐에 따라 도서실 안도 같이 조금 어두워지고, 조용하다. 소란하던 실내는 이제 소리 없이 독서에 열중한 아이들뿐이다. 나도 다시 ‘직장이 즐거워지는 10가지 비법’을 집어 든다. 세 번째 챕터가 거의 끝나간다. 그러나 세 번째 챕터가 끝나도록 모두 뻔한 얘기들뿐이다. 베스트셀러가 다 그렇지. 잘 팔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겹도록 뻔하면 된다. 마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패션만 바뀌고, 여배우들 코만 높아졌을 뿐, 스토리는 자기 복제 수준인 트렌디드라마들처럼. 그래도 잘 본다. 그게 트렌드니까. 그냥 세상 가는 데로 따라가면 마이너스는 되지 않으니까. 고전에 심취해 있었을 때, 그러니까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 제인 오스틴을 가깝게 두고 있었을 때, 그때는 청순했던 내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나도 그런 거 추천 좀 해줘. 가볍지 않은 거 말이야.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그녀가 화장이 지금보다 단지 약간 더 엷었을 때,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너 아직도 그런 쓸모없는 것들 읽니? 그런 건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돼. 실용적인 걸 읽어. 아님 최소한 트렌드는 맞춰. 쿨한 것들 말이야. 네게 어떤 플러스 요소가 있든, 마이너스 요소가 있음 다 말짱 꽝이라구. 그랬다.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 제인 오스틴. 모두 다 쓸모없는 이름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쓸모없음은 의미 없다는 말과 같았다. 쓸모없음과 의미 없음은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똑같이 취급했다. 나는 내가 점점 쓸모없어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렇게 쓸모없어진 나는 결국, 최소한의 인간조건을 상실한 채 의미 없는 존재가 될까 두려웠다. 그리고 또한 내가 조금이라도 무거워지는 게 두려웠다. 무거워지면 어느 순간 내 존재가 이 육지 밑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았다. 깊고도 깊은 바다 속까지 가라앉아, 그렇게 없어질 것 같았다. 두려워진 나는 평균을 향해 노력했다. 그리고 취직을 했고, 취직 후, 이 도서실의 이 책상에 앉아 자기계발서와 통속 소설들만 읽어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완벽하게 평범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완전하게 뻔해졌다고. 그래서 이만큼 버티는 거라고 생각한다.
 
 창 밖이 먹이 번지듯 빠르게 어두워진다. 까만 밤도 아니고, 투명한 오후도 아닌, 반투명 먹색. 나는 아이들의 독서에 방해가 될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꺼져있던 형광등의 스위치를  모두 켠다. 도서실은 갑자기 환해진다. 아이들은 여전히 조용하다. 책에 몰두했다. 나는 뒤돌아 검색용 컴퓨터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린이 없다. 서린은 방과 후에 단 5분이라도 이 도서실에 없던 적이 없다. 마치 도서실의 일부처럼 그렇게 나와 함께 여기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을 갔을까. 그게 아니라면 갈 데도 없는 애가 어디로 갔을까.
 순간 창밖이 번쩍한다. 곧이어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잔뜩 몰려와 비를 뿌리고 있다. 하늘은 또 다시 번쩍한다. 그리고 또 다시 요란한 천둥소리. 어렸을 적, 천둥번개는 아주 놀랍고 두려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작년에도 천둥번개는 있었고, 재작년에도, 그보다 훨씬 전에도 천둥번개는 계속 있었다. 무료한 풍경이었다.
 고개를 내려 운동장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여러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 5명의 무리가 보인다. 서린이 거기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걸까. 그들은 뛰지 않았다. 비와 천둥번개 속에서 뛰지 않았다. 놀기 위한 의지가 대단하구나. 제대로 놀기 위해 작전이라도 짜는 걸까 싶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윽고 그들은 어디론 가로 이동한다. 움직이는 5명의 아이들 위로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마치 뭉쳐진 먼지 같았다. 천둥번개 아래 침착한 5명의 아이들은 제대로 놀기 위해 어디론 가로 사라졌다. 뭉쳐진 먼지가 도서실 구석진 공간으로 굴러가듯, 그렇게.
 서린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저는 왕따에요. 폐실 시간까지 홀로 컴퓨터를 하며 내게 자기 얘기를 느릿하고도 지루하게 늘어놓던 서린에게, 너는 너무 느리기 때문에 세상이 달리는 걸 잡을 수 없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기억. 다만 세상이 나쁜 게 아니다, 열심히 해라. 느려터진 서린에게 그렇게 말했던 기억. 왕따는 그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는 친구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서린의 문제에 대해 신경 끄라며 알려준 어느 책의 구절이 연쇄작용으로 떠오른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천둥번개가 쳐도 도서실 안은 고요했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적막 사이에 있었다. 모든 것은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나는 집에 두고 온 우산을 생각하고, 퇴근시간까지 몇 분 남았는지 계산해 본다. 퇴근까지 아직 3시간 남짓.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체크해주세요’ 4번째 비법은 직장 내 인간관계 문제를 유형별로 해결하기다. 체크리스트를 훑었다. 20개 문항이다. 내가 어떤 유형인지 예전에는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러나 지금은 금세 노멀한 타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테스트를 끝내도 아마 노멀한 타입 중 하나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정말 예전보다 좋아진 걸까. 노멀한 타입은 대체 무엇일까. 괴물은 아닐까. 나는, 괴물이 아닐까.
 창 밖이 다시 한번 번쩍했지만 세상은 그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이든 뭐라뭐라 쓸 수야 있겠지만 그런 말들이 조금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소감이라면, 더 말 할 것도 없이 ‘기쁘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뽑아준 교수님과 성대신문에 감사드린다는 말. 더 덧붙이자면 사실 신문에 게재되기도 민망한 내 소설을 읽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