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3.1운동의 평가를 둘러싼 논란으로 올 3.1절은 별반 숭엄하지 못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 4.19혁명과 함께 헌법상에 규정되어 있는 유일한 역사적 사건인 임시정부로터의 법통을 부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한국근대사의 두 축 중 어느 한쪽만을 중심에 놓으려는 편벽된 목소리도 비등해 있다. 그 부정의 범위나 정도가 지나쳤음인지 거듭되는 비판·반비판 속에서, 일각에서는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인 4월13일까지 태극기를 달자는 요란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당성을 그 근거로 삼는 정치의 질서에서 정권의 부침이나 변화에 따라 역사가 논란의 대상의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계통을 세우기 위해 이미 있는 계통을 부정하는 일은 역사에서 흔히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세우려는 정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그러한 움직임이 역사에 대한 성찰과 합의의 과정을 동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별반 긍정적인 것이 못되지 않은가 하고 우려한다.  

 3·1운동이라는 전민족적 사건에 의해 생겨난 임시정부의 공화제와 독립운동은 반봉건, 반제국주의라는 한국 근대사의 과제와 결부되어 있었기에,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뿌리로서 언급되어 왔다. 또한 근대화라는 역사적 요청 역시 눈부신 경제성장와 함께 새로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는 역사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식민지기와 대한민국 사이의 물적·인적·제도적 연쇄를 전후 경제성장의 원천으로 보고 이를 통해 현재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역사관이 민주화와 그 근원 역사를 성급히 부정함으로써,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우려한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인식을 제도 속에 포용하는 절차와 이해의 과정이다. 헌법의 주어가 ‘우리’이듯이, 우리는 역사 또한 ‘우리’의 것으로 다루어야져야 한다고 믿는다. 공동체는 합의된 가치와 상징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아무리 근대화에 대한 재평가가 중요하다하더라도, 이러한 인식이 국가적 사안인 한 이는 민주화의 위업과 함께 제도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건국의 정당성이나 법질서 수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법통·민주개혁·평화적 통일과 같은 헌법상의 가치·상징들을 부인하려 드는 일은 지혜로운 태도라 할 수 없다.

  역사적 계통을 세운다는 일은 다시 말해 현재의 위치와 미래의 과제를 규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이해는 신중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하지만, 우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중하지 못하다. 문제는 그 신중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과제들을 그르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욱 풍요로운 삶. 바람직한 뿌리를 찾아내는 것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우리는 최근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적 자산들을 정리하는 필연적인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접근하는 태도의 경박함과 성급함에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번 호의 특집들이 신중하고 성찰적인 역사 이해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