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내 고장 경기도 의정부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가 파한 뒤 날씨 좋은 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갈라치면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의정부 시내를 친구들과 꼭 한 번 들르곤 했다. 시내는 물론 서울보다야 덜하지만 어린 나에겐 우리 집이 있는 금오동처럼 주거지가 밀집한 의정부 다른 동네보다 볼 것도 많고 놀 곳도 많은, 별천지같은 곳이었다. 팬시점이나 옷집을 찾아다니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거리를 배회하다보면 시내와 얽혀있는 재래시장 길을 거쳐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잘 정비되지 않은 바닥에 고인 구정물, 비릿한 젓갈 냄새하며 고사용으로 진열돼 있는 돼지 머리에는 섬짓한 미소가 감도는 것도 같았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생이 됐다.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에 이전과 같이 시내를 배회할 기회는 흔치 않게 주어졌다. 그러던 중 의정부 재래시장에 관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의정부 제일시장 2006 국무총리상 수상’ 썩 좋은 인상을 준 것은 아니었던 의정부 재래시장의 놀라운 발전 소식에 오랜만에 구경도 할 겸 시내를 찾아갔다. 아니나다를까 입구부터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시장 명칭을 알리는 아치형의 큰 설치물이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깨끗하고 넓게 정비된 길과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천장 막이는 언론의 칭찬대로 ‘대형마트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곳은 예전에 존재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자주 가던 냉면집의 삐뚤빼뚤 정감어린 간판은 다른 모든 상점의 간판과 같이 빛을 발하는 동그라미 간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깔끔하지 못하다고 피했어도 장 보러 온 손님과 상인 사이 정감어린 에누리가, 흥성흥성하는 삶의 생기에 괜히 나까지 신이 나곤 했는데 말이다.

 이번 호 문화면 기사에서도 언급됐던 전국 재래시장 대상 전통시장 활성화 수준 평가에서 의정부 제일시장은 경기 1위 우수 재래시장으로 선정됐다. 제일시장은 정말 편리한 시장 맞다. 시장 내에서 카트도 운용하며, 쿠폰제 및 택배 시스템은 매출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의 깔끔하지 못했던 재래시장에서 형성된 고유의 공간성은 제일시장이 ‘모범’이 되는 데 걸림돌이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