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경영 현대화에만 치중해 부작용 만만치 않아… 문화를 통해 재래시장 활로 모색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재래시장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재래시장은 그래서 서민 경제의 ‘실핏줄’이라고 불렸다. 그런 재래시장이 지금은 대형 할인마트와 백화점에 밀려 추억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의 개방과 함께 대형마트가 속속 등장하면서 재래시장은 속수무책 도산의 도미노에 빠져들게 된다. 이는 재래시장 자체의 발전 노력 부족에서 기인하기도 했지만, 시장논리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대형마트가 급속도로 상권을 잠식하는 것을 수수방관한 정부의 소극적 대처가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재래시장 살리기에 ‘예산 잔치’… 효율적 사용은 의문
정부는 뒤늦게나마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재래시장에 대한 지원 공세에 한창이며, 2010년까지 1조 1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선 이러한 ‘예산 잔치’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동두천 재래시장 활성화의 경우 막대한 예산이 편성됐지만 ‘투입’에만 초점을 맞춘 예산 사용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활성화 정책이 진행되는 다른 한편에서는 재래시장 주위 중ㆍ소형 마트의 허가를 남발해 재래시장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꼴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상권 확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의 규모만 늘려 보여주기 정책에 불과했다는 것이 상인들의 중론이다. 경기도 안양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 예산 배분을 둘러싸고 특혜 시비가 일어 예산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받는 등 잡음을 빚었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적인 예산 확충에만 급급한 정책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눈총을 받았다.

전통적 색채 잃은 재래시장에 돌아온 시민들의 외면
예산문제 뿐 아니라 개발 논리에 입각한 주먹구구식 재래시장 정비 사업이 오히려 재래시장의 본래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지금까지의 시장 활성화 노력은 시설 및 경영현대화 사업 부분에 집중된 측면이 강했다. 시장경영지원센터에서 전국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전통시장 활성화 수준 평가 기준은 이러한 사고를 단적으로 입증해준다. 편의 시설을 어느 정도 갖췄는가를 평가하는 △시설, 배송 및 결재 수단, 배송 등과 연관된 △점포경영, 상품권 활용과 같은 이벤트 정도를 가늠하는 △공동 마케팅 등 구획을 나누고 정비하며 백화점 식의 서비스를 강요하는 기준은 과연 진정한 ‘우수 재래시장’을 선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재래시장에 백화점식의 편리함을 강조한 시설 정비 논리를 대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매출 증가 등 활성화에 기여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고유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행한 시설로 인한 후유증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신설동에 위치한 서울 풍물시장을 들 수 있다. 서울 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짓기 위해 서울시에 의해 강제 철거된 노점상들이 지난해 개관한 2층 빌딩으로 자리를 옮겨 형성된 것이다.

서울시에서 80억원을 들여 시행한 이 정비사업은 건물 1층에는 △민속품 △골동품 △토산품 등을, 2층에는 잡화와 전자·공구 등을 위치시켰다. 개장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꼭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개장한 지 많은 시일이 지난 지금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 시절만 못하다며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풍물시장이 문화관광상품으로서 시장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민들이 풍물시장에서 기대하는 요소는 이전과 개발 과정에서 솎아져 나와 고유의 맛을 잃어버렸다. 서울풍물시장에서 전통 풍물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은 1층 전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손때와 함께 추억이 묻은 제품을 판매하기보다는 남대문ㆍ동대문시장에서도 다 볼 수 있는 의류, 잡화가 대부분인 등 특성화가 잘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서울풍물시장의 경우는 시장이나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이 시장을 개발하다보니 재래시장의 매력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죽이고 기계적이고 재단된 백화점식 요소를 도입해 서울 풍물시장은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 지붕공사로 대표되는 획일적인 정비를 지양하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문화를 통해 인간미 넘치는 재래시장으로
다행히도 2000년대 이후 전통시장에 문화적 요소가 투입됨으로써 시장이 활력을 되찾고, 지역주민으로서의 예술가가 공간에 개입함으로써 삶의 공간이자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는 작업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우주희 연구원은 “이러한 문화적 접근은 지역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기대효과로서 관광의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며 “상인들을 위한 시장 활성화 차원을 넘어 상인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주민에게도 매력적인 환경 요소로서 시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하는 공간, 지역에서 살아 숨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재래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