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이건 코딱지를 파는 제 모습이지요’
맞다.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의 손은 코를 향해 있다. 하지만 검정과 흰색의 뚜렷한 대비, 그리고 불안한 듯 거친 붓질에 아무렇게나 흩뿌린 검정 물감. 누가 봐도 우울한 심상을 드러냈고, 작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말은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얼마나 슬펐는지’였다.

 그런데 작품을 하나하나 들추며 설명해 주는 그의 입에선 ‘소년 김동기’의 유치해서 순수한 추억이 쏟아져나왔다. 그림엔 백합을 사랑했던 소년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백합 알뿌리가 심어져 있는 흙바닥에 바짝 기대 무언가를 들으려는 모습, 비오는 날 행여나 꽃이 떨어질까 백합 잎에 봉지를 씌우는 모습까지. 어린아이처럼 들뜬 작가와 대화하다보니 그의 작품에서 새삼스럽게 재기발랄함이 느껴지고 웃음이 나왔다.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먼 길 거쳐 문화인과의 동행 인터뷰를 위해 대구 작업실에서 만난 49세의 김동기 작가는 이처럼 그림에서 소개받은 소년 김동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소탈하고 유쾌한 그는 ‘꿈의 무지개, 희망의 파랑새가 언덕 너머에 있다’는 믿음을 가진 꿈꾸는 소년이었다. 이런 그의 마음이 작품에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일까. 삶에 치여 죽음까지 생각했다던 한 사람이 그의 작품을 감상한 후 희망을 기다리게 됐다는 얘기가 그제서야 완전히 이해가 됐다.

그리고 문득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정호승 시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 김동기 작가. 그는 대구 방천시장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며 재래시장을 구경시켜줬다. 서민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재래시장, 그 그늘엔 이미 그의 따뜻한 마음이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