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나카자와 신이치

기자명 신규철 기자 (singue45@skku.edu)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나카자와 신이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었을 때 돈을 벌어서 노후에 편안한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활동을 하고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무언가 소진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의 저자 신이치 교수 또한 이러한 고민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필두로 해답을 찾아간다.

책의 제목 중 일부이기도한 로고스의 어원은 ‘모든 것을 근본에 해당하는 곳에서 통합하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제목에서의 ‘로고스’ 즉 ‘사랑과 경제의 개념을 통합’한다는 것이 어색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에는 이미 사랑과 경제가 결코 통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게 굴러가는 우리 주변의 경제는 사실 크게 교환활동과 증여활동, 두 가지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활동의 두 축인 교환과 증여는 물건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동한다는 점은 같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증여는 사람의 인격이 물건에서 분리되지 않지만 교환에서는 인격과 물건이 철저하게 분리돼 버린다. 증여에서 물건의 이동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매개로 전달되는 사랑이나 신뢰 등 우리의 감정이나 영혼과 관련된 것이다. 때문에 증여는 크리스마스나 각종 기념일에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선물을 주듯 사람 사이에 인격적 관계를 맺게 해준다. 이때 전달되는 물건은 이차적인 것일 뿐, 물건에 담아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핵심인 것이다.

반면 교환은 증여에서 교류하던 감정이나 정서적인 것들을 제거한다. 시장에서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므로,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감정적인 것들은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책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난 증여의 복원을 제시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아프리카 부족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 존재했었던 사례들을 발굴해 증여가 어떻게 경제의 선순환을 가능케 했는지 말해준다.

19세기 중반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에 사는 선주민들의 포틀래치라는 증여의 관습은 이러한 예 중 하나다. 포틀래치는 엄청난 규모로 치러지는 ‘증여의 제의’로서, 이 기간에는 부족들 사이에 선물경쟁이 일어나 얼마나 더 좋은 선물을 상대에게 주는지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는다.

이렇듯 선물이 집단과 집단 사이를 옮겨 다님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영력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게 되고, 이 물질-정신적 순환은 끊이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즉 증여라는 것은 곧 선물의 순환이라는 둥근 고리를 만들고, 이 둥근 고리 위에 선물과 그에 대한 답례가 계속 순환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에 경제적 관계와 동시에 사랑의 관계가 엮이게 된다. 물물교환이라는 개념에 순수증여라는 이질적인 고리가 엮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경제라는 개념이 한 도시나 국가단위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얽혀있고, 그 개념으로 ‘증여’보다는 ‘교환’에 가까운 상황에서 그러한 대안이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과 경제를 결합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경제가 처음부터 달랐던 것이 아니라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쌍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어쩌면 현대자본주의의 문제점인 양극화, 인간 소외와 같은 현상도 사랑과 같은 원초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