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온통 검정 일색의 바탕이 주는 그림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음울함이다. 거친 붓터치하며 찢겨진 종이의 잔해, 검정과 회백색의 무채색 계열로 최대한 절제된 색감의 작품들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작품 속에 형상화된 인물의 표정, 무언가를 갈구하는 자세는 삶에 대한 두려움까지 새겨져있는 것 같다. 블랙페이퍼의 작가 김동기, 그를 만나기 전엔 이 ‘찬란한 슬픔’이 깃든 작품들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하지 못했다.

이은지 기자(이하:)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화두는 부조리한 세상 속 희망 찾기로 압축될 수 있다. 여기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김동기 화가(이하:) 독재가 횡행하던 시절, 불의에 맞서 데모를 하곤 했고 그 때마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어둠 뿐이냐는 자조어린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베케트, 까뮈,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를 탐독하면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희망을 잃지 말고 마치 까뮈의 책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이러한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존재의 가치를 찾아가자는 것. 또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고도가 올 것이라는 기약은 없지만 계속 기다리며 존재 의미를 찾겠다는 것. 희망은 빛이 있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유례없이 존엄을 보장받는 이 시대, 풍요 속에서 어둠은 소외되고 있지만 깜깜한 어둠 속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희망에 대한 내 신념도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그같은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 ‘고유 양식화를 정립했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독특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작품을 지배하는 검정은 타나토스(죽음의 의지)의 색이다. 모든 색을 흡수하는 검정은 주위의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한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한 세상 속,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힘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캔버스가 아닌 종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할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드리면 구멍이 나고 찢어지기 때문에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검정으로 칠한 종이 위에 칠하는 회백색의 안료는 △진주 △금 △은 △철 등 금속성분을 개어 만든 것이다. 여기에도 희망이 숨어 있다. 어두운 작품 속, 자세히 봐야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듯이 희망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연 성분이 아닌 재료로 현대인의 차갑고 기계적인 모습을 표현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작품의 면면에 주로 등장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듣고 싶다.
 어릴 적 원예사가 되고 싶었고 꽃, 특히 백합을 미치도록 좋아했다.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달빛을 쐬는 꽃밭을 서성거리며 알뿌리가 혹시나 얼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화원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내게 부모님께서는 ‘시험치는 데 우짜노’와 같은 말씀 보다는 ‘비 오는 데 백합 안 떨어졌나, 우리 동기 잘한다’라며 취미를 존중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유토피아적 기억이기 때문에 그 시절의 이야기를 세상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유년의 화원을 작품화했다.

 얼마 전 개인전으로는 최대 규모의 전시회를 가졌을 만큼 작품의 규모, 작업량이 엄청난데
 대구에 억수로 큰 전시관이 새로 생겼는데 그 곳을 다 채웠다. 1000호 크기의 작품도 몇몇 있고 대부분이 200호 이상이니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된 것 같다. 작품 규모를 크게 하는 이유는 진취적 기상, 도전적 기질에 입각한 결과이다. 이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단순한 진리에서 기인한 행위이다. 또 나는 작업실에 13시간 이상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한다. 계획된 그림은 인위적이며 신선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져왔기 때문에 떠오르는 영감을 바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영감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다가 받는다. 완벽한 맛은 없지만 다듬어지지않은 만큼 자연스러운 멋을 발견할 수 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지역작가로서 서울의 작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대구의 지역성이 작품 경향에 영향을 미친다. 대구는 시간이 늦게 움직이는 도시이다. 대구사람들은 우리 지역 사투리로 ‘낭창(반응이 빠르지 않고 느긋한 모양)’하다. 또한 주위의 환경 변화가 더디고, 머물러있다는 점이 어떤 이에게는 무료하고 따분하게 다가갈 지 모르나 내겐 자신을 돌아보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내가 태어난 부산은 구름의 모습도 시시각각 변하는 동적인 도시인데, 내 성향엔 잘 맞지 않는다. 또 대구는 대한민국의 변방이랄 수 있다. 세계무대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또한 변방이다. 나는 그, 스스로를 ‘변방의 고수’라 칭하며 여기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예술 세계를 널리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