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여기 누군가와 마주한 채 대화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위는 불투명한 실루엣들로 일렁이고 자신의 목소리만이 귓가에서 불안하게 맴돈다. 이윽고 대화 내용이, 심지어는 대화 상대방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기심으로 켜켜이 쌓인 마음에서 비롯된 소통의 부재는 현대인들에게 슬프지도 않을 정도의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우리의 이러한 무심함을 딛고 ‘그’들의 대화법에 귀 기울인 22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그림이라던 정물화. 때문에 정물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물질을 향한 인간의 애증을 되짚어준다. ‘사물의 대화법(The Still : Logical Conversation)’ 展은 이와 같은 정물화만의 색으로 사물과의 진심어린 소통을 시도한다.

전시장에는 온통 일상적이다 못해 진부한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다. 비누와 이불, 책 등 일상용품들이 하얀 벽에 뜸뜸이 걸린 채 관객들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만만한 물건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시장에 유유히 흐르는 탈고전적인 음악이 관람객의 몰입을 도와주는 덕분에 독특한 방식으로 형상화된 사물들은 평소의 진부함에서 탈피하게된다.

비누 그림에서는 갈라진 결 사이로 비누의 응어리진 속내가 힐끔 보이고, 사람을 향한 비누의 ‘희생’이 엿보여 서글퍼진다. 단청기법을 사용해 이불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직접 만져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곧고 섬세한 나무의 질감으로 따스함을 표현했다. 한편, 구리선으로 가방과 신발, 항아리 등을 만들어낸 작품에서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에서 느껴지는 묘한 입체감 덕택에 사물이 색다르게 보인다. LCD 영상으로 벚꽃나무가 비치는 작품에서는 비를 머금은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벚꽃이 지켜보는 이의 마음마저도 아롱거리게한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이처럼 단순히 회화성에만 머물렀던 과거 정물화에서 탈피해 △조각 △사진 △영상 등의 다양화된 형태로 사물을 표현해냈다. 무미건조한 사물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일상적인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겨나는 것만 같다. 오늘날 소통의 부재에서 종종 찾아오곤 하는 먹먹함을 ‘그’들과의 대화로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일시 : ~3월 29일
△장소 : 갤러리 현대 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