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옥예슬 기자 (yso1089@skku.edu)

‘88’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꽤나 익숙하다. 계속되는 불경기 속 20대를 지칭하는 말로 새로이 자리 잡게 된 ‘88만원 세대’. 그리고 온 국민의 희망이었던 ‘88 서울올림픽’. 아이러니하게도 88이라는 숫자는 이렇듯 우리에게 희망과 절망을 모두 가져다주었다. 마치 야누스와 같이 상반되는 두 얼굴을 지닌 숫자 ‘88’ 전시회에서 정윤석 작가는 올림픽을 시작으로 90년대를 거쳐 2009년 현재까지를 담아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서울올림픽 개막전과 폐막전 때의 영상이 나온다. 퍼레이드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군중들의 환호성, 주경기장에서의 대형 카드섹션 쇼. 영상을 통해 마치 그 때와 같은 희망과 열정으로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실 수 있다. 이렇게 푸른 하늘과 같이 맑은 시간을 지나, 90년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MBC 뉴스데스크의 주요 내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엮은 하얀 책 <new sdesk, please>가 있다. 꽃피운 민주화 그리고 샴페인 경제의 풍요로움과 이어 닥친 경제 위기 등 90년대 기억의 잔상들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과 함께 넘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의 눈길을 현재로 이끌면서, 88만원 세대의 단면을 거대한 음악 다큐인 <불타는 신기루>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흥겨운 배경음악이 깔린 촛불집회 영상를 통해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된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 냈다. 이렇게 우리가 시대적 기억을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향한 열망을 지켜나갈 수 있었기에 촛불집회는 하나의 축제로서 그려진다. 물대포 진압이라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에서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회는 ‘88’이라는 숫자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암울한 현실을 작은 용기와 실천을 통해 극복하는 희망. 그리고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 그것을 극복해내는 자세. ‘88 올림픽’에서 ‘88만원 세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들을 거울삼아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반성의 노력를 함께 기울이고, 이를 책임으로까지 이어가는 것. 이렇듯 ‘88만원 세대’의 절망이 아닌 ‘88 올림픽’의 희망으로 모두 하나가 되어 그 때의 열정을 재현한다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기간:~4월 5일
△장소:금호미술관
△입장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