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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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나타, 끔찍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말은 거짓이라구요! 이게 어디 숙녀들이 앉아 있는 응접실에서 연주할 곡입니까?”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남자주인공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체르’ 이야기가 나오자 흥분해 소리칩니다. 음악은 그의 생각처럼 때로는 영혼을 고양시키지도, 억압시키지도 않고 단지 자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성이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의 감정에 구속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음악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이른 봄날 기차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연을 털어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영혼의 교류가 결핍된 부부생활은 주인공과 그의 아내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증오와 상처를 남길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아내는 피아노를, 남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강한 이끌림을 느끼게 되지요. 그 후 두 사람의 밀회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은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아내를 살해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져버린 아내와 남자가 합주한 곡이 바로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였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치열하면서도 완벽한 조화가 돋보이는 곡이죠. 곡은 바이올린의 가느다란 선율로 시작하지만 곧 가슴을 격렬하게 뒤흔드는 멜로디로 접어듭니다. 특히 마지막 3악장은 쫓기는 듯 불안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로 걷잡을 수 없는 애증의 소용돌이를 묘사하는 듯합니다. 마치 연주자들이 서로를 향한 감정을 조심스레 억누르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격정적인 사랑과 그 위태로움으로 빠져드는 것처럼요.   

평소 상당한 피아노 실력을 뽐내던 톨스토이는 베토벤을 각별히 존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베토벤의 소나타를 부정적인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을까요. 그 이유는 이 소설이 톨스토이가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노년기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은 그는 그 곡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도덕의 테두리에서 일탈하도록 부추긴다는 데 섬뜩함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의 도덕성을 뒤흔든 베토벤의 음악에 노여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끼고 소설을 통해 반항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의 베토벤을 향한 이러한 애증이 소설 속 엇갈린 세 남녀의 격렬하고도 낭만적인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