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섭(경제81) 동문, 우리 학교 핸드볼 부 감독

기자명 오성일 기자 (sungil27@skku.edu)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의 권유는 한 소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소년은 핸드볼로 프로 선수가 됐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땀을 흘렸으며, 30년동안 핸드볼과 함께 했다. “핸드볼이 물이라면 저는 물고기입니다”라고 말하는 핸드볼 소년. 그는 우리 학교 핸드볼부 감독이자 국가대표팀의 지도를 맡고 있는 최태섭(경제81) 동문이다.


선수시절의 그는 승부욕이 매우 남다른 선수였다. 이러한 승부욕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최연소로 대표팀에 뽑히고 국제 대회에서 우승도 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그와 가장 친한 선수 역시 89년에 세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강재원 선수라고. “후배였지만 같은 왼손잡이라 라이벌 의식도 있었죠. 하지만 서로 상승관계였고 고맙기도 한 동료입니다.” 그러나 승부욕으로 가득찬 그의 선수 생활은 다른 그림자를 남기기도 했다. “81년도에 입학하긴 했지만 바로 82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84년 올림픽, 86년 아시안게임 등 선수촌연습 때문에 등교조차 거의 못했어요.”


빛나는 활약으로 선수시절을 마감한 최 동문이지만 그러나 그의 핸드볼 인생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졸업 후 실업팀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당시 핸드볼 협회장의 권유로 고려합섬에 취직했다가 9년 만에 퇴직. 이후 IMF까지 겹쳐 어려운 시기를 보낸 그에게 다시 손을 내민 것은 역시 핸드볼이었다. 고등학교 선배로부터 중학교 핸드볼부 코치 제안이 들어왔던 것. 그리고 그는 1년 만에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주니어 대표팀을 맡게 된다. “처음 지도자로 시작할 때 심적 부담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 물 만난 고기처럼 모든 게 잘되더라구요.”


지도자로서의 성공요인을 묻자 최 동문은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원래는 체육선생님이 되기를 꺼렸어요.” 실제로 특출한 운동선수가 입학하면 원하는 과에 들어갈 수 있던 입학 당시, 그는 경제학과를 택했다. 체육선생님이란 이미지와 직업에 대한 비전이 자신과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그렇다면 핸드볼부 감독으로 성공한 최 동문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와 지도자간의 신뢰입니다. 서로가 신뢰하지 않는다면 기술과 전술을 습득하는 데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신뢰의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다. 이러한 자신만의 리더십을 통해 그는 국가대표팀과 우리 학교에서 성공 사례를 써내려가고 있다. 주니어팀 시절 최고성적을 거뒀고, 대표팀 때는 올해 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스페인을 역사상 처음으로 이기고 강팀들과 경기에 선전해 본선 진출했다. 이에 더해 지난 주, 우리 학교 핸드볼 부는 그의 지도 하에 핸드볼큰잔치에서 대학팀 중 최고성적인 3위에 입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불렀다.


현재까지 핸드볼을 통해 인생의 굴곡을 헤쳐 온 최태섭 동문은 “요즘 선수들은 의욕이 별로 없어 아쉽다”며 “일반 학우들이 경기장에 시합 때 많이 찾아와 힘을 실어주면 예전처럼 승부욕도 늘고 국제대회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학우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는 5월 초에 또 다시 시작하는 국제대회에서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높은 목표치를 함께 이뤄내겠다는 최태섭 동문. 항상 핸드볼과 함께 차분하게 역경을 헤쳐 온 그이기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히딩크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