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 ⓒ황유식
차가운 금속의 동체, 이를 이루는 기하학적인 무늬의 연속. 조각가 최우람이 만든 기계생명체의 첫인상이다. 그러나 숨을 쉬듯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에 대한 놀라움을 넘어 자연사 박물관에서 느낄 수 있을 만한 묘한 향수까지 아려온다. 벌레나 곤충 또는 전기 담쟁이, 다이오드 민들레와 같은 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기계 생명체들… 현대 기계 문명 속 도시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서식하고 있는 기계 생명체를 발견해내는 ‘생물학자’ 최우람. 그가 만든 생물체 마디마디에는 현대 사회에 대한 사유의 편린이 스며들어 있다.

이은지 기자(이하:) 처음 기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조각가 최우람(이하:)
어릴 적 로봇과 같이 조립할 수 있는 완구를 정말 ‘집 살 수 있을 정도로’ 사 모았고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앞두고 현재의 로봇공학과 쯤인 제어계측학과를 가고자 했지만 높은 문턱 때문에 가닿질 못했다. 기계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다 주위의 권고도 있고 해서 미술을 하기로 결심하고 중앙대 조소과에 진학했다. 화실에서 찰흙과 나무를 만지는 순간 너무 재미있어서 로봇이고 나발이고 잊고 조소에 전념했다. 그러다 2학년 때 교수님께서 어떤 방식이라도 좋으니 조소에 ‘움직임’을 넣으라는 주문을 하셨고, 그 순간 ‘아 맞다!’하고 잊고 있던 기계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내 작품 목록엔 모터를 삽입해 움직임을 구현한 기계가 줄을 잇게 됐다.

▲ ⓒ키오루 케이죠

이 :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기계 생명체를 가지고 관람객과의 소통을 추구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최 :
 키네틱 아트, 사이버네틱 아트, 미디어 아트… 내 작품은 이처럼 다양한 단어로 수식되지만 장르에 얽매인다기 보단 하고 싶은 작품을 추구할 뿐이다. 한때는 작품에 CPU, 모터 등을 장착,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반응하게끔 만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도 시도했다. 그렇지만 충분한 성찰이나 확고한 신념이 전제되지 않은 채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다보니 작동원리가 알려지고 나면 본래 의도에 입각한 소통이 방해받는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이같은 한계에 대한 자각도 있었고, 말하는 로봇에 관해 꿨던 꿈도 방향을 전환하는 데 기여를 했다. 꿈꾸는 찰나의 시간 동안 ‘김팔봉씨의 전화번호는 뭐야?’ 식의 간단한 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로봇의 관계가 이미 예사로운 수준을 넘어 정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사람들이 기계생명체에 대해 으레 갖기 마련인 의문을 배제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 : 하나의 기계생명체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는가
최 :
 전시가 진행되는 장소가 리버풀이라고 하면, 그 곳이 기계 생명체의 서식지가 된다. 따라서 나는 그 곳에 살다시피 하면서 풍토를 파악하고 생명체를 연상해내게 된다. 숨겨진 달 그림자라는 뜻의 ‘Opertus Lunula Umbra’라는 생물체도 항구도시 리버풀의 물과 바람, 그리고 달빛에 영감을 받아 발견된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자칫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기계로 표현하는 것이니만큼 5~6개월에 걸친 설계와 제작으로 완성한다. 여기에 작품 제목을 겸한 학명을 붙이고 주요 서식지, 발견 당시의 상황 등 구체적인 설명과 현미경 사진 등 증거 자료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고 잠깐이나마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 ⓒ최우람

이 :  현대 기계 문명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기계 생명체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최 :  늘상 보던 자연물이 기계로 다시 태어나 숨쉬는 모습을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물을 볼 수 있다. 또한 기계 생명체를 보고 무서운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기술의 방패 밑에서 사는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영역이라 굳게 믿었던 생명에까지 영역을 넓힌 기계들을 보며 느끼는 위기 의식일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욕망이 어우러진 도시의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어디에선가 자생하고 있는 기계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비춰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계와 인간의 공생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