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이미 어긋나버린 사랑이라도 움켜쥔 미련을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했던 이와의 추억은 잔인하게 불쑥불쑥 떠올라 우리를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죠. 하지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여주인공 조제는 다릅니다. 그녀는 끝이 난 사랑을 뒤로 한 채 담담히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의아스러울만큼 조용하면서도 서둘러서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의 귀엽고도 애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일반인과 장애인의 사랑, 조금은 특별할 것도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여느 청춘들의 사랑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영화는 츠네오가 헤어진 연인 조제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빛바랜 사랑의 시간을 잔잔하게 되짚어 나가죠. 시작의 설렘, 빛나는 시간들, 시들어가는 감정 그리고 아픈 이별까지 어느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을 사랑의 과정을 말입니다.

영화 속의 조제가 즐겨 읽는 소설이 있습니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책이죠. 이 소설은 사랑의 위약함을 잘 알고 있는 조제, 부인이 있지만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 등 파리 아홉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과 삶을 통해 사랑의 본질과 인생의 덧없음을 그려냅니다. 소설 속 조제는 베르나르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끝내는 사라져버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랑이 다시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그녀가 사랑하는데는 지나친 열정도, 자기 동정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한편 조제는 원래 이름 대신 소설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조제라 일컬으며 그녀의 삶을 향한 담담한 태도까지 흡수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조제와 소설 속 조제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있죠. 조제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지고 마는 츠네오. 그는 이별의 중점에서 조제를 잊지 못해 길거리에서 끝내 오열하고 무너져 내리지만, 같은 시각 조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준비합니다. 결국 조제는 홀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단단하게 감싸안는 것이죠. 사랑의 짧음을 아는 소설 속 조제 역시 ‘우리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사건을 마냥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미쳐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조제, 그녀들은 이처럼 언제나 ‘사랑’과 ‘삶’의 유한성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순간들에는 온 마음과 감각을 다해 스며들죠. 바로 이것이 그녀들의 ‘사랑’과 ‘삶’이 달콤새큼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