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임산호 사진부장 (mangojelly@skku.edu)

난주 조부상이 있었다. 장례절차를 밟으며 한국에서 관혼상례가 차지하는 비중과 특유의 상부상조 정신에 대해 가늠할 수 있었다. 반면 장례라는 의식의 가려진 부분에 대해서도 절감함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예식과 장례식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가 드러나는 자리다. 어떤 영정제단을 쓰는지 화환의 규모가 어떠하고 화환 리본에 누구의 이름이 쓰여 졌는지가 사회적 영향력과 비례한다는 생각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각 방마다 실내를 넘어서 문 밖까지 늘어선 화환들과 가족들이 어느 소속에 있는지 보여주는 깃대들은 고인에 대한 위로를 전달하기 보다는 ‘우리 집안에는 이런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했다.

늘날 사회에서 그 사람이 얼마만큼의 재력을 가졌는지가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성이나 도덕성 여부에 관계없이 재력은 이를 벗어나 사람의 등급을 구분 짓는 큰 잣대가 되곤 한다. 부산·경남 지역을 거친 정·관계 인사 중에서 박연차 회장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아직 검찰 수사 중이지만 일간지에서는 박연차 회장을 두고 ‘큰 손’, ‘마당발’ 등의 별명을 각종 사례를 들어 공공연히 보도하곤 한다. 그의 호탕한 성격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박연차 회장 사건은 어쩔 수없는 우리 시대의 어두운 부분이다. 그의 인맥들은 단순히 ‘인맥’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금전적이고, 부정적인 관계들이 뭉치고 뭉쳐 결국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터져 나온 것이다. 재력이나 권력에 흐름에 따라 결집되어 도움을 주고받고, 패거리가 되어 웬만한 사건이 있어도 잘못이라고 여기지도 않은 채 서로를 눈감아 주는 구시절의 폐단이다.

러한 성격의 게이트들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이 연루된 ‘세종증권 게이트’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이 연루된 ‘3홍 게이트’ 등, 역대 대통령들이 정경유착 근절을 매번 외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정경유착은 뿌리 깊은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한 번 이러한 사건들이 터지면 당이나 이념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줄이어 국민 앞에 치부를 드러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이런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자정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라고 하지만 구호로만 외치다 끝나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도 박연차 회장과 여야 정치인 몇몇을 구속한다고 해서 권력기관들과 자본의 비리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누구누구의 이름들을 담은 ‘리스트’가 터져 나오는 것은 고구마 뿌리처럼 줄기 마다 연결된 한국 사회의 인맥주의가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맥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상부상조의 정신이 강하고 ‘남의 일도 내 일 같이’여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인의 정서상 아직까지 인맥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그것이 금전 관계와 결부되어 정치계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런 일이 너무나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의 입에서 ‘서로를 도왔을 뿐인데 재수 없이 걸렸다’는 말이 나오고, 국민들에게 밝혀진 뒤에도 ‘표적 수사’ 등을 운운하는 것이다.

당발을 최고로 치는 이러한 인간관계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꿰뚫는 핵심 코드였다. 어디선가의 안면이나 인연, 그리고 전화 한 통으로 정상적인 절차를 따지면 한 참이 걸릴 일도 뚝딱 해결 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인맥의 힘이다. 이러한 편리함과 똘똘 뭉친 소속감 때문에 인맥은 우리나라에서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며, 넓은 인맥은 남들의 부러움을 산다. 진중권 교수는 그의 저서 「패거리의 문화」에서 한국의 정체성은 곧 패거리의 정체성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집단’은 있되 ‘사회성’은 없는 것이 한국의 인간관계며,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친절함은 정확하게 자신이 속한 친분이 있다는 집단의 동그라미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가 폐쇄적으로 단단하게 뭉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떨어질 수 없는 패거리 문화였다면, 다양한 개성들이 수평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패거리주의에서 발현되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또 다른 ‘리스트’들을 근절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김무곤 교수는 그의 저서와 강연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사회의 조직원리 역시 계층적 연줄 사회를 탈피해 합리성, 보편성 및 평등성에 의해 인간관계가 지배되는 네트워크적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인간관계의 점성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리스트’들을 막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