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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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사실 어제 오늘 말이 아니다. 각종 문화예술 통계 지표를 봐도, 대학 무용학과의 실태를 봐도 이러한 징후는 예전부터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에 무용계·정부는 담론회를 갖기도 하고, 작년엔 대한민국 무용대상을 제정하는 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08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일정 기간(2007년 3월∼2008년 2월) 동안 무용을 0.03회 관람해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문화ㆍ예술계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영화 4.0회 관람과 △연극·뮤지컬 공연 △미술전시회 각 0.2회, △클래식ㆍ오페라ㆍ전통예술공연 각 0.1회에 비하면 턱도 없이 낮은 수치다. 즉 평균적인 한국인은 무용 공연을 30년에 한 번 꼴로 갈까말까할 정도라는 것이다. 오늘날 무용계가 어려운 상황임을 진단하는 수치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각 대학 무용과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음은 물론, 매년 1천여 편의 창작품이 쏟아져도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적 인기를 인정받는 작품은 드물다.

이처럼 예술로서의 춤을 보는 관객들은 규모 면에서 각종 통계수치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두드러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웰빙 열풍과 더불어 댄스스포츠, 비보잉 등 춤 자체는 생활 속 일부로 깊숙하게 자리했지만 정작 무대 위의 춤은 높고도 멀기만 하다는 것이 현재를 보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관객들과 멀어진 무용 공연… 풀리지 않는 고질적 문제
이같이 무용 예술 공연이 대중과 유리된 이유가 어디서 비롯됐는가는 교육, 정책, 공연장의 경영행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이다. 먼저 그 실마리는 부실한 교육에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공교육 실종은 결과적으로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의 소홀함을 유발했고, 이는 예술을 다른 장르와 버무려낼 수 있는 창의적 기반의 부실을 가져왔다. 일반 초중교에서 무용을 체육 교과로 편입시키고 독립적인 과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재교육 역시 무용인의 창작 정신의 혁신을 위해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해결책이다.

무용계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무용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중앙문예진흥기금이나 서울문화재단에서 개인 예술가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무용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무용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좌담회에서 안무가 박호빈은 “안무가 양성을 위한 안무 아카데미를 개설하고 시ㆍ도립 무용단의 창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무용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 한국 무용계의 현실이 답답한 것과 대조적으로 다행히도 해외에서 한국 무용가들을 주목하고 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검증된 안무가들의 해외 진출을 집중 지원해 주며 전략적인 정책을 경쟁력 있는 작품을 통해 국제시장으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무용전용극장, 대한민국 무용대상 제정 등 대책 마련 고심
정부 측에서도 이러한 목소리들을 좌시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그 움직임은 가시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지난 해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아르코예술극장을 2010년부터 무용전용극장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관객들과 만나는 창구 자체에 목말라하고 있던 무용계에서는 이를 반겼으나, 반면 연극계에서는 반발했다.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에 연극계에서는 ‘아르코 예술극장 전용 반대 1백인 성명’까지 내는 등 예술 장르 간 갈등까지 빚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반해 작년 11월에 시상한 한국무용협회의 대한민국무용대상 제정은 큰 성과로 꼽힌다. 매년 말 그 해 최고의 무용창작 예술가 및 작품을 선정해 대통령상 등을 수여하는 무용대상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용계에 환경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무용협회 측은 “한국무용은 유파ㆍ장르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상을 제정함으로써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모태로 작용한다”며 의의를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무용과 대중이 유리된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여전히 무용계의 철저한 자기 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와의 좌담회 등에서 무용계는 ‘우리는 문제없지만, 자생력이 없으니 무조건 도와만 달라’는 의존적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무용계 스스로의 치열한 자기반성과 현실인식을 통해 대중의 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