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사랑’을 주제로 한 무용 공연이 열린다고 가정해보자. 안무가는 무대 위 무용수의 감정변화는 빠트린 채 무대 밖에서 정형화된 안무를 짠다. 이 안무를 무용수는 무대에서 단 한 동작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시연한다. ‘즉흥춤’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버린다. 즉 계획되고 정제된 움직임 대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충실한 몸짓을 추구하는 것이다. 형식을 버림으로써 시작되는 즉흥춤은 ‘특정 주제 아래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흥에 따라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춤’으로 정의된다.

8일간에 걸쳐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열린 <서울 국제 즉흥춤 축제>가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한 이 축제는 2001년 개막 이후 현재까지 아시아에서도 유일한 즉흥춤 축제로, 재능 있는 안무가를 발굴하고 우리 춤의 국제무대 진출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 ⓒ서울 국제 즉흥춤 축제

특히 지난 9일에는 테마가 있는 즉흥춤이 무대에 올라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냈다. ‘웃음’을 주제로 한 이 그룹즉흥 공연에선 △트러스트 무용단 △Movement Factory △NOW무용단 △Ubin 댄스 등 총 4팀이 출연,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여 각기 다른 즉흥춤의 흡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무용수들은 온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움직이고 서로 몸을 부대껴 수많은 몸짓들을 만들어냈다.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어느새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며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이었다.  

무용수들 중 몇몇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손을 건네고, 때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좌석에 앉아있기도 했다. 자유로운 몸짓을 추구하는 만큼 관객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시도하는 듯 했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생소하고 난해한 춤에 다소 경직된 반응을 보였으나 ‘웃음’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점차 큰소리로 웃고 박수를 치며 무대와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는 것처럼. 

이처럼 이번 축제에서는 관객과 소통하는 축제를 위한 다양한 장이 마련됐다. 시민들이 직접 무대에 서볼 수 있는 △즉흥잼 △해설이 있는 즉흥공연 영상감상회 △다함께 즉흥춤 체험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또한 즉흥연주가와 세계적인 안무가들이 초청돼 축제 기간 내내 이들의 즉흥 워크숍을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됐다. 즉흥춤 축제의 신혜인 사무국장은 “국내에 즉흥춤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거의 없어 공연 섭외부터도 매우 어려웠다”며 “이번 축제가 국제적으로 유능한 안무가를 배출하고 춤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무용계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일반 대중에게 무용은 다가가기 어려운 분야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즉흥춤은 이러한 대중의 거부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몸을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기 때문에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가 비교적 쉬운 것이다. 불필요한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진심으로 건네는 즉흥의 몸짓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진한 호소력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