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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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활짝 피었던 지난 4월. ‘꽃은 원래 하늘에서 핀다’라는 말이 손색없을 만큼 수줍은 분홍이 넘실대고 있었다. 꽃이 질세라 사람들은 연일 가족, 연인과 함께 여의도를 찾아 완연한 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벚꽃의 물결을 맞아 지난 달 11일과 12일에 ‘국회 벚꽃축제 여민락 한마당’ 행사가 마련돼 상춘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전통문화체험 축제라는 의도에 걸맞게 국회운동장 특설무대에는 다양한 즐길거리가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여성국극과 관련된 공연ㆍ전시였다. 국회 의정 61년과 역사의 궤를 같이 하는 여성국극의 가치를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기획된 행사였다.

이번 특설무대에 올려진 공연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춘향전>이었다. 여성국극답게 몽룡부터 시작해 사또, 이방 등 남자 역할을 모두 여성 배우가 연기했다. 몽룡으로 분한 젊은 여성국극 배우 박민혜는 키도 헌칠하고 호방한 기색이 청년 장정의 모습에 모자람이 없었다. 변사또 역의 허숙자 배우는 춘향을 보고 ‘예쁘게도 생겼구나, 어서 이리 올라오도록 해라’와 같이 능글맞은 대사를 연발하며 익살맞은 연기로 관중들의 웃음어린 박수를 받았다. 이밖에도 남역 배우들은 목소리 굵기나 강세 등에서 늠름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극의 전개에 맞춘 섬세한 감정 처리가 엿보여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처럼 남역이 주는 흥미 외에도 종합예술로서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여성국극은 △분장 △의상 △반주 등에서 독자적인 특수성을 보인다. 우선 화려하고 과장된 분장을 함으로써 멀리서도 배우의 연기에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배우들의 아름다운 의상은 봄날의 정취와 더없이 어우러져 관객들의 눈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본디 거친 이미지의 호위무사를 연기한 배우들조차 곡선미가 드러나는 반짝이는 갑주를 입어 그들이 추는 검무를 돋보이게 했다.

△거문고 △아쟁 △모듬북 등으로 이뤄진 반주는 이색적이게도 유일하게 남성이 공연에 참여하는 부분이었다. 단, 무대에 오르지는 않고 무대 앞에 마련된 자리에서 음악가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했다. 이 날 사회를 맡은 동국대학교 최종민 교수는 공연 시작에 앞서 “즉흥으로 이뤄지는 여성국극의 반주는 극의 감정 변화에 맞춰 음색을 달리함으로써 몰입도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의 애달픈 마음이 한풀이 춤으로 표현된다든지, 극본 특유의 언어유희 등은 관객들에게 전통 문화 공연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처음 접하는 여성국극의 오묘한 매력에 관객들이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 쌀쌀해진 날씨를 무색케 했다. 결말 장면에서 몽룡과 춘향의 꼭 잡은 손은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여성국극의 매력 때문인지 더 애틋함을 자아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