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민주당 의원

기자명 윤다빈 기자 (ilovecorea@skku.edu)

“대학생들이여 '붉은 뺨을 가진 야수'가 돼달라” 최문순 의원은 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해 대학생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여기서 붉은 뺨은 우리가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이겨 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대학생들이 자신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크고 패기 있게 살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붉은 뺨을 가진 야수'는 또한 최문순 의원의 삶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MBC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25년 간 그 역시 자신을 던져가며 방송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 왔기 때문이다. 소박한 인상의 ‘야수’ 최문순 의원. 그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1. ‘까까머리’의 강원도 청년 최문순의 학생 시절
■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유년 시절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그 때는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깨끗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물론 개인적인 상처도 있었다. 소총을 든 2인조 강도가 침투해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강도들 간의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일로 강도 중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죽은 강도의 유족들이 우리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다녀야 했다.


■ 유신 체제가 한창이던 시기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내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그 때는 대부분의 시위를 고등학생이 주도했기에 학내에서 자연스럽게 시위 그룹이 형성 됐다. 본인 역시 '태백문화촌'이라는 지하조직을 건설해 토론, 유인물 제작 등의 활동을 했다.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이름을 '태백문화촌'이라고 지은 것도 잡힐 경우 문화운동 단체라고 해명하기 위해서였다.(웃음)
#2. '카메라 출동' 기자 최문순, MBC 사장이 되다


■ 입사 당시 방송사의 분위기는 어떠했나
입사했던 그 때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다. 하얀 것을 까맣다고, 까만 것을 하얗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등 취재를 하고도 보도를 할 수 없었던 사안들이 있었다. 기자로서 이 사건을 제 때 보도하지 못했던 것을 아직까지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인터뷰에서 자세히 밝히진 않았지만 당시 최문순 기자는 2년 후 MBC 노보에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기자가 아닌 것은 물론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라는 참회의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구속이 될 것을 각오하고 말이다.


■ 방송기자 시절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다면
영등포에서 화상 전문병원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는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분신자살이 일상적으로 일어나 학생들이 매일같이 실려 왔던 시기였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고통 속에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 95년 MBC 노조위원장을 거쳐 98년 전국언론노조연맹 위원장 및 2000년 전국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이 됐는데, 기자의 신분으로 노조위원장이란 자리를 맡는 것이 꺼려지지는 않았나
당시 노조위원장은 구속되거나 짤리는 직업이라 하기 싫었다.(웃음). 실제로 노조위원장을 하는 동안 낙하산 사장이 들어왔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파업을 하다가 1년 간 해고되기도 했다. 물론 노조위원장을 타협적으로 느슨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언론의 독립성과 관련한 부분은 완강하게 저항해야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 사장이 되기 쉽지 않은 조건임에도(노조위원장 출신, 48살의 젊은 나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 MBC 사장에 도전했던 이유는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엄청났다. 사실 외국에서는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다보니 저항이 심했던 것이다. 사내에서도 연공서열로 인한 반발이 상당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서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건의 사람이)사장이 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를 '진일보'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도전하게 됐다.


■ MBC 사장에 취임한 후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있었을텐데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 지역을 떠나 단결된 힘을 갖게 하자고 생각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싶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많이 벌어서 많이 나누고, 많이 나눠서 많이 버는 시스템을 추구했다. 즉, 노력에 따른 이익을 충분히 구성원들에게 나눠주고, 그것을 통해 다시 회사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 MBC 사장 재직 당시 황우석 사태와 삼성 X파일 보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장직을 떠나 개인적으로는 두 사건 모두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기에 보도가 조금 지연된 측면이 있었다. 특히 황우석 사태 때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정말 '칼날' 위에 서있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당시 사표를 쓰고 보도를 강행해 그 내용이 전파를 타는데 성공한 점은 다행이다. X파일 사건과 관련해서는 화끈하게 보도를 지시하지 못한 점이 욕먹을 소지는 있다. 그러나 도청한 내용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적 가치 역시 중요했기에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 방송사 기자와 사장을 거치며 느낀 한국 방송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예전에는 방송사 사장을 청와대 출신 인사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방송사는 정권의 나팔수였다. 그나마 정치권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끝난 것은 몇 년 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특보 출신들이 방송사 사장으로 임명되는 모습에 또 다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3. 또 한 번의 도전, '금배지'를 달다


■ MBC 사장을 끝마치고 얼마 후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에 당시 ‘폴리널리스트’(Politics와 Journalist의 합성어)라는 비판도 받았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MBC 사장을 그만둔지 얼마 안 되고 국회의원이 된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본인 역시 이 행동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부분에 대해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사실 그는 사장의 임기를 끝내고 언론운동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국회에 방송 전문가가 없으니 여기서 관련 활동을 해보라는 권유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제도권 내에서 '언론 독립'을 지키는 활동을 누군가는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겐 변명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언론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위의 현장을 누비며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폴리널리스트와 언론 독립의 신념 사이, 판단은 독자의 자유다.


■ 국정감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여러 시민단체들로부터 국감 우수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본인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그 분들이 그렇게 평가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내가 보기엔 형편없다. 방송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PD 체포, 낙하산 특보 임명 사건 등을 하나도 막아낸 것이 없지 않은가. 정치인은 결과가 중심이 돼야하는 만큼 결과로만 보면 '빵점'이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후배 기자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 말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다.(웃음)
#4. 좀 더 편안하고 진솔하게


■ 강원도 출신의 소위 비주류로서 한국사회에서 느낀 한계나 설움은 없었나
개인적인 욕심이 많았다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면 약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 역시 흑인이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나. 누구나 핸디캡은 다 있게 마련이다. 본인 역시 지방 출신이라는 것이 결정적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항상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사람을 공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제공해줬다.


■ 4월 재보선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비례대표 의원직을 버리고 지역구 선거에 도전하려 했던 이유는
무언가에 성공하기 위해선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는 사람을, 경제는 돈을, 언론은 정보를. 그러나 자기 것을 쥐고 있기만 하면 모아지지가 않는다. '탁'하고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탁자에 놓여있는 유리컵을 가리키며) 여기에 신선한 주스를 채우려면 컵이 비어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지역구 출마 역시 기존에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얻어 보려는 시도였다.


■ 인생에 있어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그냥 돈만 많이 버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국민 개개인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자가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 사회 진출을 꿈꾸는 대학생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6월 민주화 항쟁, 4.19 혁명 등 세상을 바꾼 것은 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주체 의식없이 주어진 체제에 위축되고 매몰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을 작게 규정  짓고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사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취직을 위해 노력하되, 취직자리를 만드는 노력도 함께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고 싶다.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이 되려면 개인의 이익을 넘어 좀 더 넓고 큰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패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불의, 부조화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돼달라.

경력
2008 ~ 민주당 국회의원
2006 ~ 2007 한국방송협회 회장
2005 ~ 2008 MBC 대표이사 사장
2000 ~ 2001 전국언론노조(산별) 초대위원장
1998 ~ 2000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1995 ~ 1996 MBC 노조위원장
1984 ~ 1997 MBC 보도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