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김유리 기자(이하:김) 전통적인 동양화를 고수하다가 2000년부터 현대적인 시도를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퓨전 동양화가 홍지윤(이하:홍) 학생이던 젊은 날의 나는 꽤나 혈기왕성했었다. 어렸을 적부터 내게는 항상 ‘멀티 플레이어’ 기질이 꿈틀대고 있었고 새로운 것들을 향한 욕망은 쉽게 침잠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학교에서 늘 접하던 전통적인 동양화는 무겁고 지루했다. 2000년 당시 IT 붐이 일었고 정보화시대에 나 혼자서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들어 답답했다. 마침 한 아카데미의 3D 애니메이션 과정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 덜컥 등록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메일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컴맹이었기에 컴퓨터 자판을 치는 방법부터 익혀야 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되자 전통적인 동양화에 컴퓨터라는 매체의 특성을 도입해보기 시작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퓨전 동양화의 표현 양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퓨전 동양화는 △지필묵(紙筆墨) △시서화(詩書畵) △서화일체(書畵一體)의 개념을 기반으로 글과 회화 및 그래픽과 영상으로 재현된다. 예컨대 <The Four Seasons>라는 작품에서는 먹으로 쓴 영어 알파벳이 영상의 시작을 알리고 은은한 수묵화를 배경으로 시의 한 구절이 지나간다. 이어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먹의 번짐으로 표현된 점과 면이 화면을 채우고 먹선으로 그려진 여인은 춤을 추고 꽃은 붉어졌다 노래졌다 하며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준다. 시, 글씨, 그림은 회화와 더불어 △설치 △그래픽 △사진 △ 영상 등의 매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며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는 방식을 거쳐 자유자재로 표현되는 것이다. 

김 작품에서 시와 글씨 등 텍스트가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은데
 홍
내 작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詩)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등의 문학적인 활동을 좋아해서 오래 전부터 일상을 짧은 글로 기록하곤 했다. 마침내는 글들이 모여 시의 형상을 띠게 됐고 또한 그것들이 내포한 함축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시의 맥락이 동양화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시는 주로 젊고 잘생긴 열정이 깃든 현실적인 일상에 대해 노래한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기억의 편린들과 낭만적인 상념들, 그리고 간혹 슬픈 기운 속에서도 긍정적인 청춘의 기쁨을 잃지 않으려 한다.  

 김 퓨전 동양화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지 
 홍
내 작품은 전통 수묵동양화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자연관을 기반으로 한다. 나는 시와 글씨를 기반으로 한 수묵동양화의 전통과 현실적인 삶의 정서를 현대의 기술과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로써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만나 이뤄지는 젊고 생기발랄한, 또 다른 문화의 존재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화장품과 다이어리 같은 아트상품과의 합작이 눈에 띄는데
 현대의 미술이 일상과 상품에 접목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내 작품이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내가 선호하는 소재들이 미래지향적이어서 시대에 부합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워낙 문화충돌과 새로운 문화의 창조에 유연한 편이라 요즘 같은 다원화 시대에 맞아드는 것 같기도 하고.

 김 퓨전 동양화를 통해 혁신적인 변화를 이뤄냈는데 동양화에 있어 바람직한 혁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홍
나는 내 활동이 혁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와 분야를 충돌시키고 그 속에서 보다 신선한 것을 창조해내는 행위는 옛적부터 꾸준히 존재해왔다. 시대마다 사용하는 매체가 달랐을 뿐이고 나는 서양화의 매체를 사용하는 것 뿐이다. 동양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서 시대별로 묘하게 조금씩 변화해오고 있는 동양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양화는 변함없이 자생적으로 변화하면 된다. 혁신이나 발전 같은 거창한 단어로 굳이 수식하지 않아도 동양화는 그 특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