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나란히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소녀, 미나와 에델. 10년 넘게 우정을 간직한 둘도 없는 친구인 그녀들은 빨간 모자를 사이좋게 쓴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미나는 데생 학원에서 눈을 맞췄던 소년에 대해, 에델은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는 자유로운 영혼의 청년에 대해 한참 이야기꽃을 피운 후입니다.

“무슨 생각해?”/ “너랑 같은 생각, 넌?”/ “바보같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고 했나요. 프랑스 영화 <미나 타넨바움>에서 미나와 에델은 이처럼 굳이 꺼내보이지 않아도 속 깊은 이야기까지 마음으로 느끼는 사이입니다. 그녀들의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것이죠. 그러던 그녀들이 일곱 살이 되면서 발레 교습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녀들의 재회를 가리켜 영화에서 ‘만난 게 전부고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하는 것처럼, 그 때부터 두 소녀는 서로의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자리하게 됩니다.
사실 그 둘은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라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민하고 조숙하게 자라 자의식이 충만한 미나와 달리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에델은 질투심 많은 어린 소녀였죠. 그런 둘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미나가 자신이 그린 그림 한 점을 마음에 들어하는 에델에게 선물한 것에서 비롯합니다.

“게인즈버러의 복사본이야. 그의 딸들이 귓속말하는 걸 내가 첨가했어”
그림 <화가의 딸들>처럼 소녀 둘은 늘 함께 하고, 그들만의 비밀 언어로 속삭이게 됩니다. 이처럼 그림은 우정의 시작을 함께하고, 상징처럼 작용했습니다. 초상화와 풍경화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했던 영국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는 인물을 그릴 때 감정의 결을 녹여내는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하는 화가의 두 딸. 그래서인지 화폭에 담긴 소녀들에는 아버지의 애정과 함께 어딘지 모르는 근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화가는 그림 속에서 두 딸을 행복한 소녀로 남겨 놓았습니다. 미래에 어떤 가혹한 운명이 닥치더라도 그림 속에선 두 소녀 간 내밀한 감정만이 숨쉬는 것이죠. 그러나 그림 속이 아닌 현실을 사는 미나와 에델의 사이는 틈이 벌어집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소녀가 여인으로 한 뼘 나아가는 데 존재하는 숙명적 마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