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시집』, 장용학

기자명 신주령 기자 (danielsjr@skku.edu)

『요한시집』장용학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존재하는가? 대의명분이 개인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장용학의 소설 『요한시집』은 바로 이러한 실존주의적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소설의 앞부분에선 토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우화가 등장하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평온한 삶을 향유하던 토끼의 굴에 어느 날 한줄기 빛이 들어온다. 이 빛을 보는 토끼는 바깥 세계라는 새로운 존재에 눈뜨게 되고, ‘나는 어디에서 태어나 이곳에 오게 됐는가.’ ‘이 굴 밖 바깥세상에는 무엇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토끼는 결국 피투성이가 된 채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던 햇빛에 눈이 멀고 죽음에 이르고 만다.

토끼가 바깥 세계를 동경했듯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은 ‘자유’라는 이상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소설 속 주인공인 누혜도 그 이상을 좇아 전쟁에 동참한다. 그러나 결과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뿐. 인간은 그 ‘이상’을 위해 서로를 죽이기에 이른다. 자유라는 대의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들 스스로가 죽음이라는 고통을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누혜가 원했던 자유란 것도, 실은 ‘참다운 것을 위해 겪어야 하는 또 하나의 구속’에 불과했기에, 현실 세계 어느 곳에도 진정한 자유가 없음을 느낀 누혜는 자살을 선택한다.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자유를 추구했던 그는 자유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상을 꿈꿨지만 오히려 그 이상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는 것. 이는 토끼의 우화와 누혜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이상에 불과한 허구다. 자유니 진리니 하는 이상들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누혜 앞에서 쓸모없는 사(死)론으로 변해버린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작가가 소설 속 ‘누혜’를 요한과 ‘같은’ 존재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출현을 위해 죽어야만 했던 ‘요한’.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현실 속 누혜의 죽음은 ‘예수’와 같은 그 무언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