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주의 철학

기자명 박경흠 기자 (trident22@skku.edu)

 “왜 에바에 타는거니?”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 주인공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에바’는 지구를 침공해오는 ‘사도’들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의 반(半)생명 병기로, 에반게리온은 이 에바의 탑승자인 신지, 아야나미 레이, 아스카가 사도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인류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우는 세 주인공의 처절한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의 감독은 이러한 평범한 스토리 구조를 넘어 주인공들이 그토록 바라는 ‘인류구원’이라는 대의와, 그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 자체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주인공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에바’에 탑승하지만, 정작 왜 그들이 싸워야 하는지, ‘인류구원’을 위한 이 전쟁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느냐는 거죠.

이처럼 이상이라는 것은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 거대한 전쟁의 배경에는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이상이 담겨져 있지만, 그 실상은 씻을 수 없는 상처뿐입니다. 이처럼 숭고한 관념들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등장한 철학이 바로 실존주의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수 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6.25 전쟁 이후에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것입니다. 실존하는 개인이야 말로 자유로운 존재며, 각 개인의 체험과 행동 하나 하나가 가치를 갖는다는 이 철학은 무엇보다도 이념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습니다. 60억 명이 넘는 인간들이 모두 다르듯, 한 가지 관념으로 인간을 묶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상이나 사상도,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우선할 수 없다는 거죠.

때문에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어떠한 관념이나 이상도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니까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고 말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겁니다.

물론 고귀한 이상을 끝까지 추구하는 행동이 결코 악하다고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평생 자신이 믿었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나쁘다고 평가할 순 없으니까요. 다만, ‘자유’라는 이상만을 찾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요한시집』의 주인공처럼 스스로의 삶이 ‘극단적’으로 변질되지는 않았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벌이는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있는 역설적 현실처럼, 삶이란 결코 이상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