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임산호 사진부장 (mangojelly@skku.edu)

하늘이 짙푸르게 변하는 5월은 젊음이 생동하는 달이다. 녹색잎의 나무들에서 이육사의 시처럼 싱그러운 청포도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대학가에서 축제들이 열리던 시기와 비슷하게, 2년 반에 걸친 필자의 성대신문 임기도 끝이 났다.

한 학보사의 일원일 뿐이지만, 신문기자라는 명함을 달고 활동하는 것은 꽤나 큰 부담이었다. 수업을 빠져야 했을 때도 있었으며, 미숙한 사전조사로 취재가 펑크라도 나면 등골이 쭈뼛 서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 ‘요즘 뭐해?’ 하고 물으면 자랑스레 ‘신문사!’라고 답했던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어떠한 보직을 맡고 기자로서 활동한다는 것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한 가닥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었다. 비록 기사와 사진의 질은, 일간지 기자의 그것보다 훨씬 못 미치고, 오보가 나 항의가 들어오는 일도 있었더라도, 그리고 임기 동안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신문 대하기를 소홀히 한 적이 있더라도, 이러한 자긍심만은 마음 한 구석에서 지켜왔다.

그렇게 신문사 기자로서의 임기를 마친 필자는 대학에서 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자 동네 보습학원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돌아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문사를 떠나자마자 애써 마주하지 않고 있던 또 다른 현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 열에 반수 이상은 ‘위기의 인문계’를 보는 눈초리로 힘들겠다며 말을 건넨다. 그 기세에 눌려 ‘아 예, 복수전공은 뭐를 하려고요’라며 머쓱하게 답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전공자로서 장 보드리야르나 미셀 푸코 같은 프랑스 지성인을 동경하면서도 이들의 저서를 읽고 치밀하게 그들의 담론을 탐구하는 것보다는, 하루 빨리 프랑스어를 마스터해서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도 발을 뻗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보습학원에서는 하교 후에 교복 차림으로 직행한 어린 학생들이 자정까지 콩나물처럼 앉아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오직 상위권 대학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대학에 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엄마들의 달콤한 구슬림에 혹해 외국어를 열심히 써가면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대학생이 되서도 도서관에서 똑같은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현실을 알고 있을까.

때때로 부모님은 ‘남들은 어학연수든 학원이든 다니면서 살길 찾기 바쁜데 넌 신문사 한답시고 헛세월 보낸 것 아니니?’라며 묻곤 하셨다. 그 때마다 웃고 지나갔지만, 신문 한 부 한 부를 만들기 위해 셀 수 없는 자료들을 뒤적이며 더 나은 기획을 위해 고민하고, 수많은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해 들었던 기억들이 어째서 헛세월로 간단히 일축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점수가 있고, 내 이력서에 ‘너‘와 다른 어떤 한 줄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대학생활을 지냈다고 인정받는 시대다. 집회를 엄중히 단속하겠다며 시민들에게 소환장을 남발하는 정부만이 자유를 옭아매는 주체인 것이 아니다. 부당한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들숨 날숨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한국에서 대학생의 자유는 이런 식으로 결박당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질주하고 있는 오늘, 이러한 부당함에 역기를 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전혀 답을 낼 수 없다. 결국 필자도 보습학원의 학생들처럼 앵무새처럼 영어를 외다가 대학까지 흘러 들어온 학생 중 한명이기에, 혼자 힘으로 바닥을 더듬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질적인 스펙 걱정에 전전긍긍한다.

성대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몸이 지치고 능력에 한계를 느껴 포기하고 싶던 적도 수번이었다. 그러나 정작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지금은 현실에 파묻히지 않고 나름의 자긍심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얼마나 값진 시간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학우들에게 더 의미 있을 기사를 위해 힘들게 의견을 수렴하고, 모두의 힘을 모아 한 부 한 부 낳았던 신문들. 취업과 경력들을 떠나 오로지 나 자신, 그리고 타인들을 위해 해왔던 그 활동들. 당시에 영어학원 다닐 시간조차 없다며 불평했던 필자는, 이젠 그 때야말로 진정한 대학생활이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스펙이며 취업이며 위협 속에서도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대학생활을 각각의 방식으로 묵묵히 수놓고 있으리라는 것 역시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