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다빈 기자 (ilovecorea@skku.edu)

2009년 5월의 광주는 활기찼다. 80년 당시 계엄군이 있던 자리에는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벼워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5.18의 아픔은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의 곳곳에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실제로 광주 민주화운동의 최후 항쟁이 벌어졌던 전남도청에는 온갖 현수막들이 나부꼈다. 역사의 현장인 전남도청의 별관이 철거되는 것에 반대하는 5.18 유족들의 ‘한’이 서린 현수막들이었다. 그리고 도청 앞 철탑에서는 70일 동안 2명의 해직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물티슈로 세수를 하고, 빈 물통에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등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 나갔다. 적어도 이들의 눈으로 본 광주는 아직 진정한 평화의 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광주순례단 동행취재를 통해 2009년 광주에는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대학생의 재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주순례단에 참가한 이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 속에서도 역사의 현장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대학생들은 사회에 무관심할 것이란 편견에 대해 유쾌한 도전장을 던지려는 듯.

그 결과, 29년 전 계엄군의 총성이 가득했던 금남로에 대학생들의 함성이 울려 퍼질 수 있었다. 항쟁의 거리였던 그 곳에서 젊은이들은 신나는 구호를 외쳤고,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나갔다. 참여한 목적과 이유는 다양했지만 함께한 이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희망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외치는 구호가 아직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아무리 외쳐본들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의 큰 변화는 대부분 학생사회의 작은 외침들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년 5월의 광주 역시 이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현실 문제를 넘어 사회 개혁의 중추로서 활약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직은 작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