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옥예슬 기자 (yso1089@skku.edu)

의학과 미술의 만남. 마치 영영 못 만나는 평행선과 같은 두 분야의 만남이라 언뜻 듣기엔 의아할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만남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심찮게 접해왔다. 바로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몸 그림들로부터 말이다. 이러한 교과서 삽화에서부터 전문 의료 서적에 이르기까지 의학 관련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한다. 의학 전공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림을 통해 신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장동수 작가. 긴장이 흐르는 의학의 장에서 오늘도 그는 잡은 펜을 놓지 않는다.

옥예슬 기자(이하:옥) 미대를 졸업하고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장동수 작가(이하: 장)
홍익대 조소과 학부생이었던 시절 수강했던 ‘미술 해부학’이라는 수업에서 느꼈던 흥미와 아쉬움 때문이다. 해부학에 대한 심층 이해가 아닌, 미대생이 신체를 표현함에 있어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수업이었기에 직접 보고 만지며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만 호기심을 충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마음을 묻어두고 있던 차, 내가 졸업할 즈음 마침 연세대 의대 해부학과에서 미술학 전공자를 선발한다는 공지를 보고 호기심으로 지원하게 됐다. 우연이 만들어 준 기회를 통해서 의학 조교, 그리고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옥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가


쉽게 말해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광고 기획자와 비슷하다. 광고 기획자가 광고주의 요구에 맞춘 광고를 만들어 내듯이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또한 의사 선생님들의 필요에 맞춘 그림을 그린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사진 촬영을 한 후 여러 번 수정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의학 삽화는 △의학 책 △의학 논문 △의료 광고 등 의학에 관한 그림이 필요한 곳이면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쓰인다. 이러한 일들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선 그림 실력은 물론 의학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저 무턱대고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 잘 알고 그리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옥 미술 전공자가 해부실에서 일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합격한 후 선임 선생님께서 했던 업무들을 한달 동안 인수인계 받고 바로 의대 본과 1년 실습에 투입됐다. 학생들이 실습하기 전, 수업하게 될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하느라 일주일 중 2~3일 정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처음엔 해부실에 즐비하게 늘어선 카데바(의학용 실습 시신)가 무섭기도 했고, 학생들이 내게 질문을 할 땐 긴장을 해 땀으로 온 몸을 적시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나 나나 함께 배우는 입장이었기에 동지의식을 갖고 일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과 고민 상담을 하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면서 힘든 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옥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이 다른 미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 활동이 모티브가 돼 작품 전반적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이 스며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특히 ‘삶은 항상 반복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과거와 미래가 있지만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니체의 글귀에서 이 깨달음을 확신했다. 현실의 삶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첫 전시회에서는 이러한 긍정적 사고를 사실적인 방법으로 나타냈다. 그런데 첫 전시회가 지나친 사실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는 평을 듣게 됐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단순하고도 가벼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두 번째 전시회에선 단순화된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또한 그동안 막연한 것들에 대한 생각들로 복잡했는데 이를 떨쳐버린다는 의미로 ‘NO BRAIN’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전공을 살린 조소 작품으로 파스텔 톤의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옥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해부실에서 인체를 들여다볼 때 나는 의학적 시각이 아닌 예술가적 목적의식을 가진 관찰자였다. 그 과정에서 인체의 아름다움과 조물주의 위대함을 느꼈다. 신체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감상을 <몸속의 자연>이라는 나의 작품 속에 표현해보기도 했다. 이와 같이 각기 서로 다른 분야의 벽이 허물어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분야를 접목하는 시도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시너지 효과도 무시하지 못할 좋은 산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