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용 경제04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코디언선율에 맞춰 관능적인 몸짓으로 탱고를 추는 댄서의 스텝에 맞춰 몸을 들썩이는 일이 자연스러운 곳, 각자가 가진 끼와 재능으로 거리에서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 아무 거리낌이 없어지는 이곳. 아르헨티나의 일요일 낮은 한국의 밤보다 아름답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두 얼굴이 있다. 계획적으로 세워진 반듯한 도로와 고층의 건물, 오고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센트로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구 시가지는 좁은 골목과 차곡차곡 닦아진 돌길, 고풍스런 식민지풍 건물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 관광객들의 다양한 구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세월이 묻어나는 골동품 시장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큰 볼거리 중 하나인 산텔모 지구의 도레고 광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우리나라의 5일장보다도 휴면기간이 긴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물론 타 지역, 심지어는 인접국가의 사람들까지 모여든다. 저마다 애지중지 싸놓던 진귀한 물건들로 곳곳에 진을 펼치니 지나며 보는 눈이 즐겁다.
금, 은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액세서리와 식기류, 헌옷, 가구, 그림까지. 그 제작시기와 사용목적이 불분명한 온갖 물건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도레고 광장은 형형색색의 노점들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모습을 뽐낸다. 몇몇 상점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기념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상점에는 집에서 묵혀놓았던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막 먼지를 훔치고 꺼내놓은 듯 거리 한 켠에서 힘겹게 연주하는 축음기 소리가 고풍스러운 건물과 어울려 고대 유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는 넉넉한 풍채의 노년 주인에게 영어설명과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조금 어렵다. 아끼던 소장품들을 늘어뜨려 놓으며 오고가는 사람 구경이 낙(樂)인 듯 도레고 광장의 상인들은 물건을 매만지는 이방인의 손길 보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웃 상인들과 담소가 더 즐겁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골동품과 은발의 수염 너머로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는 주인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보기힘든 삶의 여유가 물씬 풍겨난다.

화려하지만 슬픈 댄스. 탱고
도레고 광장 주변에 흩어진 조그만 공간도 거리예술가들에게는 근사한 무대이자 공연장이다. 그들에게는 거리가 바로 자신의 갈고닦은 실력을 평가받는 기회의 장이며, 자신의 공연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광고무대이기도하다.
과거 산텔모는 고향을 잃고 이주지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팜파스에서 쫓겨난 가우초들,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울분을 풀기위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그러한 고뇌 속에서 탄생했다고 하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댄서의 손끝에서 그때의 애환이 전해지는 듯하다. 아르헨티나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버린 탱고. 그 정열의 춤을 거리곳곳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건, 탱고가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서민의 춤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페인어 설명으로 시작된 공연은 연주 음악에 맞춰 댄서의 스텝이 점차 빨라지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한다. 내뻗는 발끝에서 파트너를 응시하는 매혹적인 눈빛까지 하나도 놓칠 수가 없는 그들의 진지함에 한번 매료되고, 공연 중간과 끝에 이어지는 무대매너에 한 번 더 반하게 된다. 댄서를 가운데로 둥글게 모인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댄서의 손에 이끌려 잠깐 동안 무대의 주인공이 되면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정열의 본토 아르헨티나에서 추게 된 탱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노년이 아름답다고 느낀 이유 중의 하나는 젊음의 열정으로 무장된 청년층부터 관록의 노련함으로 갖춰진 노년층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춤을 즐길 줄 아는 댄서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렇기에 탱고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곳,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볼거리는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당당히 즐길 줄 아는 이색 예술가들이다. 사람들이 동전을 건넬 때마다, 포즈를 조금씩 바꿔가며 함께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하는 그들은 이곳 도레고 광장의 양념과 같은 인물들이다. 요즘 들어 많은 관광지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거리 예술가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지만 아무 손짓과 소리 없이 가장 많은 관광객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주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리 곳곳을 거니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따가운 태양 아래에서 하루 종일 요지부동하고 있을 그들에게 돌아가는 건 바구니 속 몇 푼 안 되는 동전이 전부다, 하지만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그들의 장난기 어린 우스꽝스런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선물 받고 돌아갈 것이다. 웅장한 자연환경이나 유구한 역사가 낳은 문화유산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아르헨티나의 문화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탱고와 골동품, 거리 퍼포먼스로 가득 찬 아르헨티나의 도레고 광장. 물론 매주 일요일이면 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계절이 변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듯, 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곤 한다. 구석구석 거리를 거닐 때마다,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