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리: 기자 (joje0201@skku.edu)

지금으로부터 1백년 전인 1909년 6월 2일, 이 날 창간된 <대한민보> 1면에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이도영 화백의 1칸짜리 만화가 실렸다. 바로 서양식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창간취지를 설명하는 짤막한 그림. 이는 한국 만화의 역사를 여는 첫 작품으로 기록됐다. 1칸에 담긴 최초의 만화는 반일감정을 담아내는 등 민족주의적 색채가 깊은 시사만평에 가까웠다. 대중문화의 대표주자로서 가장 친숙한, 또는 저속한 문화로 여겨지며 질곡의 1백년을 보내온 한국 만화. 그 역사의 숨결을 함께 느껴보도록 한다.

20세기에 시작된 한국 만화의 역사
우리나라의 만화는 근대 문물이 유입되던 20세기 초반에 시작됐다. 이 시기에는 여러 편의 만화로 된 삽화들이 <가정조선>이나 <노동야학독본> 등의 신문ㆍ잡지를 통해 발표됐다. 한편 3ㆍ1운동을 기점으로 일본이 1920년대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민간언론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때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기사 내용은 물론 시사만화를 통해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그러나 해방 전의 한국 만화는 일본의 감시 아래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해방 후 50, 60년대 한국 만화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당시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암흑기 와중에도 <고바우 영감>과 같은 작품들은 독재정권 초기의 사회상을 고발하는 시사담론을 다루며 비평 만화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1968년부터 실시된 만화사전검열로 인해 한국 만화의 침체가 가속화됐다. 해방 전에 비해 생산되는 만화의 양은 늘었지만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대급부로 70년대는 ‘명랑 만화’의 시대였다. 강력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밝고 건전한 사회를 향한 염원을 만화로 표현한 셈이다. 가족중심의 밝고 쾌활한 이야기를 다룬 <꺼벙이>, 국민 캐릭터 <태권V>도 이 시기가 낳은 작품이다. 또한 작가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를 비판하는 우회전략을 썼다. 신문에 실린 고우영의 △<임꺽정> △<수호지> △<삼국지> △<일지매> 등의 역사 만화에는 현실을 꿰뚫는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었다.

억압적인 시대 속 풍자 만화 피어나
80년대는 양질의 만화가 많이 창작돼 한국 만화의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현세 △허영만 △고행석 등 만화계의 거성들이 주옥같은 작품들을 우후죽순으로 쏟아냈으며, △<공포의 외인구단> △<무당거미> △<불청객> △<머털도사>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1987년 발생한 6월 항쟁은 만화의 풍자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항쟁의 주체로 일어났던 대학생들은 대학신문을 통해 시위현장을 담아냈고 학내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들을 표출했다. 마찬가지로 대학신문의 만화에서도 기존 상업만화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시각을 보여줘 폭압적 정권 아래서 살아 있는 대학생들의 의식을 보여줬다. 이처럼 1980년대 중후반 대학신문은 비평 만화의 주요한 발표공간이었던 것이다.

90년대는 김영삼 정권의 문화산업 육성정책으로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산업화가 가속화됐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이 처음으로 개최됐고 대학교에는 만화관련 학과가 늘어나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부천만화정보센터 등에서 만화자료 복원(아카이브)작업과 자료축적 등의 만화산업 지원사업도 시작됐다. 한편 이 시기는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의 일본 만화가 대량판매되면서 그에 따른 일본 만화의 불법복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됐다. 그러나 그에 따른 자정노력이 일면서 대중문화산업인 만화의 사회적 역할을 돌아보는 의식적 성숙의 계기가 됐다.

21세기 맞아 형식 다변화돼
격변의 한국 현대사에서 시대의 감성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던 만화는 2천년대 들어 PC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며 또 다른 격변기를 맞는다. 초기에는 네티즌들이 온라인에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그려내는 ‘데일리 툰’이 유행한다. 일정한 서사구조를 갖춰서 스크롤바를 내릴수록 감정을   몰입하게 만드는 강풀의 △<순정만화> △<바보> △<아파트> 등의 작품이 잇달아 유행하면서 웹사이트(web)에 연재되는 만화(cartoon)라는 뜻의 ‘웹 툰’이 하나의 대세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한국만화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왔다. 글과 말로는 이루 다 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만화는 그림과 함께 담아냈던 것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책과 지면을 벗어나 만화의 형식 또한 급변하고 있는 요즘, 한국만화가 또 어떤 시도로 새로운 역사를 남길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