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 인터뷰 - 만화평론가 백정숙
■어떤 만화를 대안만화로 보는가
정치적 의미로는 언더그라운드, 자본적 의미로는 인디 대안만화라고 부른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저항만화를 대안만화로 볼 수도 있고. 한마디로 대안만화는 주류가 추구하는 유행에서 벗어나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를 추구한다. 주류 만화판이 잡지 중심으로 편성돼 있는 데 반해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목적으로 하는 동인지가 무크지(비정기 간행물)의 형식으로 독립만화 개념을 표방했다. <새만화책>과 같은 단행본이 외부 자본의 개입 없이 수익구조와는 무관하게 발행되는 것이 그 사례다.

■대안만화는 만화의 사회적 책임 중 어떤 역할을 수행했나
TV같은 매체가 정부의 검열 아래 있을 때 사회상의 증언자 역할을 수행했다. 대중과 유기적으로 엮여 저항만화(△노동 △농민 △빈민만화)를 통해 지배층에 선명하게 저항했다. 만화작가 박건웅의 <노근리 학살사건>, 제주4ㆍ3사건을 다룬 <홍이이야기> 등은 누군가는 짚어야 할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질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퀴퀴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보는 시간때우기 문화로 취급받던 만화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이러한 성격이 점점 희석돼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악법 릴레이 카툰’을 연재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웹툰’을 그린다.

■외국에서는 다양한 대안만화가 시도된다고 하던데
대안만화는 여러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60년대 불었던 메카시즘 열풍과 월남전으로 억눌린 사회에 ‘히피’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영혼에의 부르짖음이 들불처럼 번졌다. 또한 슈퍼히어로물이 대부분이었던 미국 만화에 반해 내면 심리에 집중해 기괴하고도 실험적인 대안만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유럽 또한 프랑스 5월 혁명 후 대두한 68세대가 진보적 흐름을 주도하며 풍자가 깃든 만화가 등장했다.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로 전쟁 이후 정신적 고통을 준 사회체제에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를 대안만화로 풀어냈다. 어느 국가에서 먼저 대안만화 흐름이 나와 후에 다른 나라가 이를 동조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각 나라가 처한 모순적인 사회 체제에 반해 그에 맞는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대안만화에도 명백히 한계가 존재할 텐데
우선 대안만화를 향유하는 독자층이 두텁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예술이 변이되고 진보하는데 향유층이 다양하고 깊이가 있으면 구조도 탄탄해진다. 둘째로 진실성을 알아주는 독자가 있어도 지배층에서의 딴지는 여전하고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것은 아니다. 또 민중이 직접 창작에 참여하는 등 대안만화의 창작 주체가 다양화됐지만 목소리가 분화돼있어 아직 일관된 경향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안은 대안일 뿐이라는 점이 태생적 한계랄 수 있다. 대안이 주류에 흡수되면 그때부터 대안이 아닌 것이 된다. 이는 대안만화와 주류만화가 대립된다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대안만화가 만화의 기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려면 앞으로 어떤 점이 선행돼야 하는가
우선 진지하고 깊이있는 만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일본 만화 작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 관해서는 전문 학자와 견줄 정도로 취재와 연구를 한다. 만화는 상상력의 산물인 만큼 심도깊은 사유체제를 확립해 작가들의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처럼 작가 차원의 노력 뿐 아니라 작가 주변 환경, 즉 △정부 △기획자 △평론가 △독자 등이 작가가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