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행 하자’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지를, 멀리 있는 여행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멀리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만 여행이라면, 한 평생 여행과는 무관하게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여행은 물론 ‘집을 떠나 멀리 가는 행위’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리고 ‘집’이 곧 ‘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행에 대한 이와 같은 고정관념은 멀리 달아날 것이다.

집을 떠나는 일인 여행은 궁극적으로 ‘나’를 떠나는 일이다. 지금의 ‘나’를 떠나서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를 찾는 일이 반드시 멀리 있는 여행지여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여행도 많다. 이 글 읽기를 멈추고 두 눈을 살며시 감아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검은 장막과 그 앞을 스치는 희미한 어떤 빛이 보이다가, 점차 안정이 찾아오면서 장막 너머의 일상들이 차단되고 ‘내 안의 다른 내’가 나타날 것이다. 두 눈을 감기 싫으면, 하늘을 쳐다보라. 맑은 하늘에 그려지는 ‘꿈꾸던 나’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여행이며, 지상에서 가장 먼 여행지에 다녀오는 일이다.

이 여행이 맘에 안 들면, 조금 움직여서 책을 보라. 책을 다 읽고 나면 타인이었던 저자는 ‘내 친구’가 되고, ‘내’가 어려울 때마다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도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나’를 찾게 해주는 조언자가 될 것이다.

필자가 여행 중인 『김삿갓 풍자시 전집』을 소개하려 한다. 한 번에 독파한 뒤 꽂아두고 마는 책이 아니라, 수시로 펴드는 책이다. 풍자시는 사회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울 때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현대시사에서도 풍자시의 조류는 평탄하지 않다. 풍자시의 등장은 사회에 그 이유가 있지만, 동일한 사건 앞에서 우리의 반응이 각각 다르듯이 근원적으로는 시인의 개인적 성향에 달렸다.

『김삿갓 풍자시 전집』은 <풍자시>외에도 <인도주의 사상과 평민 사상을 표현한 작품들>, <영물(詠物)시>, <자연 풍경시와 향토시>, <연정(戀情)시>, <과(科)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 정취는 풍자풍이다.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3.13~1864.3.29)이 누구인지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듯이 그의 시는 방랑객이었던 그의 삶의 반경을 반영하고 있다.

천하를 돌아다니되/다 환영하여/나라를 일으키고 집을 일으키는/그 세력이 가볍지 않다.//
  갔다가 다시 오고/왔다가 다시 가는 사이에/산 사람을 능히 죽이고/죽을 사람을 능히 살구어.//
  아무리 장사라도 이게 없으면/종시 힘을 못 쓰며/바보라도 이것 있으면/반드시 이름을 떨치니―//
  부자는 잃을까 무서워하고/가난한 사람은 얻으려고 애써/몇천 몇만 사람이/이 속에 늙어가나.
                                                                   <돈> 전문

원문이 <錢>이라고 되어 있는 위 시에서 우리는 김삿갓이 살았던 19세기 초에도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돈’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했음’을 확인하면서 무척 놀라게 된다. ‘돈’으로 사람을 좌우하는 근대화의 한 풍조가 19세기 초에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공간 이동 없이도 김삿갓을 만나고, 19세기까지 긴 여행을 하면서 그의 조언을 들었다. 

덧붙여서 글쓰기야말로 ‘나’를, ‘미래의 나’를 만나는 가장 탁월한 여행임을 말하고자 한다. 글쓰기는 우리를 어두운 일상에서 빛의 세계로 이끄는 진보적 여행이다. 이제 필자의 진보적 여행도 마쳐야 할 때다.

진순애(글쓰기의 기초와 실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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