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모두가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그러나 아무도 먼저 말하지는 않으려는 것, ‘性(성)’. 성을 작품의 주제로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부끄러움 없이 ‘모두가 쉬쉬하는 이야기, 내가 먼저 얘기하는 것일 뿐. 명랑하게 얘기하겠다’라고 당당히 외치며 오히려 더 가볍고 유치하게 표현하려는 작가 이미정. 늦은 오후 홍대 앞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김영인 기자(이하:김) 성이라는 주제가 다소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주제로 작품을 창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이미정 작가(이하:이) 주제의식으로 성을 구현했지만 한 번도 그것이 특별하거나 새롭다고 생각한적은 없다. 성은 예로부터 인간의 본질로 여겨진 것 아닌가. 또한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없다. 그 저 ‘그게 좋았기 때문’이라면 이유가 될까(웃음). 누구나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야한 만화나 야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 돼있었다. 또한 분명 나뿐만 아니라 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이런 대화들이 공공연하게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성과 관련된 얘기는 너무 은밀히 숨어있더라.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SEX의 생산물이기에 성과 너무나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무조건 덮고 가리려 하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다. 그렇기에 당신들보다 조금 더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됐다.

▲ 이미정 <ah, ah, ah, ah, icecream>

 김 : 성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라 해도 아직까지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면 거부감이나 당혹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의도로 이렇게 표현하게 됐나
 이 : 성이 결코 덮는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를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장난스럽고 유아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민한 이야기도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것 보다 포장을 잘 하면 훨씬 받아들이기 편한 게 사실이니까. 어떻게 보면 내 그림의 화법이 귀여움일 수도 있겠다. 말을 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듯 나는 내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작품을 본 대부분의 반응은 ‘낄낄거림’인데 그럴 때마다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통해 나를 이해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take care my self>

김 : 그렇다면 작품 중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것이 있나? 물론 모두 다 열 손가락 같겠지만 말이다
이 : 깨물어서 다 아픈 만큼 모두 애정이 크다(웃음). 그러나 그 중 지금 하고 있는 연작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다. <Take Care My Self>라는 주제인데, 해석하자면 ‘자기 스스로를 돌보다’이다. 즉 ‘자위’. 그 중에서도 ‘여성의 자위’를 주제로 하는데, 온전히 내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가장 애착이 크다. 전공인 도예 뿐 아니라 △유화 △페인트 △판화 등도 사용해 ‘딜도(여성용 자위기구)’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동물모양의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큰 산을 동물이 타고 있는 장면으로 전환해 표현한다든가, 남성의 성기를 꽃으로 합성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두 번째 작품의 꽃은 원래 암술이 가장 큰데 이 암술에 남근을 삽입해 ‘발기된 초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발기를 단순한 성적 본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열정이나 준비, 일어섬 등으로 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품이 좋다.

김 : 보통 ‘자위’는 은밀하게 다뤄지지 않나. 이런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며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온전히 나의 죄책감을 내려놓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작품 활동이란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위를 했다. 어느 누구도 자위 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할 줄 알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는 그저 순수한 욕망이자 나 스스로를 ‘돌보는’ 행동인 것 같다. 그러나 첫 자위를 시작한 15살 소녀는 너무나 순수했고, 그 후 자위를 할 때 마다  ‘이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근거를 댈 필요도 없이 죄악시하며 살았다. 그러나 껍데기를 벗고 생각해보면 자위라는 행위가 사실은 얼마나 온전한 행위인지, ‘나쁘다’라는 간편한 언어를 붙일 수 없는 본질적인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을 때, 그런데 그 외로움이 끔찍이도 나를 무겁게 짓누를 때 외로워서 죽어버리느니 자기라도 자신을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를 더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그런 죄책감을 작품 활동을 통해 내려놓는 것이다. 내 안의 아픔들을 세상에 내뱉었을 때 그것이 큰 세상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미함을 느꼈다. 이렇게 보면 나는 ‘자위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김 :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작품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관객들도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이 : 내 자신의 치유를 위해 작업한다지만 이를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통해 대리 위안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적이고 동시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교감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업을 한다.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거짓이나 가식으로 뒤덮이고 깊이도 얕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의 상처를 솔직히 까서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내 작품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기만 하면 된다. 우리 모두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는 같은 인간이기에.

김 : 최근 성 예술가들과의 연합 전시를 가졌는데 이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이 : 전시회명은 <Some Like It Hot : 뜨거운 것이 좋아>로 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됐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가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과의 특성상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은데,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나에게 ‘관계’를 가져다주었다.

김 : 신진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포부를 밝힌다면
이 : 특별히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다. 여태껏 고민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것 같다. 그러나 진실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삶과 작업에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5년 뒤, 10년 뒤에도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한 것이지만 현 미술계의 상황에 비춰보자면 거대한 꿈이다. 비교적 시작이 쉬웠고 그동안 운도 따른 편이었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노력해 이 바닥에서 살아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