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나 조상의 훌륭한 전통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유물 등이 전시, 관리되고 있는 문화의 보고, 박물관. 이번 해는 특히 ‘한국 박물관 개관 1백 주년’으로 우리 박물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하는 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다. 이에 성대신문 문화기획면에서는 여러 형태의 박물관 중에서도 대학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대학 박물관’의 △기능 △의의 △현황을 조명해 지성의 요람으로서 대학 박물관이 활성화되는 것에 대해 다함께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한다.

1945년, 광복을 맞은 이후로 한국 사회는 민족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휩싸였다. 특히 대학사회와 각 교육기관에서는 실물에 의한 직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문화 향유 수준을 향상시키고 민족의식의 자각을 꾀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곧 대학설치기준령에 대학박물관의 설치를 권장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에 따라 1961년 한국대학박물관협회가 조직된 이후 늘어나는 종합대학교의 수에 비례해 대학박물관 또한 꾸준히 증가했으며, 현재 요건을 갖춰 협회에 등록된 대학박물관이 1백여 개를 넘어서고 있다. 1934년 고려대 박물관이 민속자료를 수집ㆍ전시하면서 한국 대학박물관의 효시가 된 이후, 이화여대 박물관과 서울대 박물관의 잇따른 개관으로 광복 전까지 대학박물관이 전국에 3관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급격한 성장세이다.

대학생 전통문화 교육은 물론지역 역사ㆍ문화의 중추 역할 담당해
우리나라에 대학 박물관이 급속히 확산된 배경에는 교육이 주효했듯이 박물관은 학문 연구를 위한 대학 부설기관의 하나로서 기능해왔다. 대학이 가지는 특성에서 말미암아 일반 박물관이 지니는 효과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이바지해온 것이다. 역사학, 인류학 등 학내 연구와의 연계를 통해 학문 활성화는 물론, 미래의 주역인 대학생들이 전통과 정체성에 기반을 둔 수준 높은 대학 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돕는다. 대학생들에게 뿐만 아니라 대학 박물관은 지역 사회 및 일반인들에게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제주대 김동전 교수는 “문화기관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국ㆍ공립박물관의 기능을 대학 박물관이 대신하고 있다”며 “지표ㆍ발굴 조사로 지역문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민들의 문화 교육에도 힘쓰고 있는 곳이 많다”고 대학 박물관의 위상을 평가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학 박물관
이같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기능과 의의를 지니는 대학 박물관은 정작 대학 내에서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연간 관람객이 5천여 명에 그칠 만큼 일반인은 물론 대학 구성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큼 전시 설명과 전시물이 빈약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존재하지만 전국 대학 박물관의 소장품을 모아 놓으면 국립박물관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로 훌륭한 전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대학 박물관이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일단 정부 정책적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일단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그 어느 쪽에서도 대학 박물관 정책 수립에 있어 중심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두 부처 중 어느 곳도 주관해서 관련 정책을 추진하지 않다 보니 자연히 지원책 등도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대학설치령에 대학 박물관을 명시해놓아 박물관이 활성화됐던 이전과 달리 법령을 개정하면서 설치령에 누락됐다. 이 사실과 더불어 대학 박물관의 전반적인 운영 상황이 대학평가 항목에 속해있지도 않아 대학 박물관을 제대로 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바탕에는 인문학적 교양보다는 현실적 영역으로 비중이 옮아가는 대학 본부의 정책적 문제가 깔려있다. 대학가가 취업준비기관으로 변질되면서 첨단 학문과 주력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바람에, 문사철(文史哲)이 푸대접을 받고 지성ㆍ예술ㆍ문화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탓에 박물관이 매번 재정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부지기수며, 심지어 어떤 대학교에서는 대학박물관의 자리를 고시 시설로 변경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성의 요람’으로서의 위상 찾아야
그렇다면 대학 박물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뒷받침이 마련돼야 하는 것일까. 일단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시급하다. 엄연한 학교 부설기관인 만큼 대학평가 항목에 추가해 대학들이 인문학의 보고인 박물관을 외면하지 않도록 장려해야 한다. 또한 앞서 살펴봤듯이 대학 박물관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에 비춰봤을 때 대학의 재정 지원 뿐 아니라 시비ㆍ국비를 지원해 학예원 인력보충 및 대우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신경철 회장은 취임사에서 “국립대 설치령이나 대학평가 항목에 박물관을 포함시키는 등 정책적이고 실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대학 박물관 내의 노력도 수반돼야 진정한 의미의 활성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 박물관은 관람객의 유치보다는 발굴조사, 연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소장 자료의 전문화에 따른 특성화와 차별화를 강구해야 한다. 이 외에도 지역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 추진 위원회 이어령 위원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젊은 세대들은 역사적 인식과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해 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하다”고 말하며 “박물관이 잃어버렸던 과거와 자기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생인 우리가 박물관을 통해 역사적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사립박물관 등을 찾기 전에 보다 먼저 대학 박물관을 들러야 하지 않을까. 대학생들 눈높이에 맞아 좋고, 가까워서 친근한 대학 박물관은 우리의 관심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