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20세기의 문제적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그는 어떤 장르의 영화를 찍든지 혁신적인 영상을 만들어 내며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영화의 대가라고 일컬어집니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 특히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8년에 2001년을 상상한 영화로, 제작 당시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감각적 특수 효과와 사실적 우주공간의 재현으로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샀는데요. 철학적 사유가 깃든 미래적인 표현은 이후 서사적 공상 과학 영화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하는 버팀목이 됐습니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영상 표현과 주제 의식 이외에도 탁월한 영화 음악에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미래시대를 전달하는 공상 과학 영화에는 으레 전자음악이 사용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전곡을 고전적인 클래식 음악으로 선곡한 재기가 엿보이는 것이지요. 4백만 년 전부터 2001년까지를 교향악적인 주제들로 분할해 각각의 주제에 걸맞은 음악을 삽입했습니다.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과 행성들을 보여주는 장면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배경 음악으로 깔립니다. 이는 첨단 과학의 산물조차도 우주의 무한한 포용성 앞에서는 한낱 티끌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 외에도 무용 음악 <가야네>, 죄르지 리게티의 <Atmospheres> 등 전 세대에 걸친 클래식 음악들이 사용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요 주제곡인 리하르트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의 주제 의식과도 연관되며 절묘한 조화를 선보입니다. 이 곡은 작곡가 니체의 동명 소설을 읽고 느낀 감명을 선율에 담은 것으로 서서히 감정을 고양시키며 전개되는 악곡 구성 방식이 찬사를 불러 일으켰는데요.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이 이 곡을 들으면 곧잘 영화를 떠올릴 만큼 영화의 주제를 푸는 열쇠임과 동시에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경음악으로 기능합니다.

곡은 우선 영화 도입부에 입혀져 장중한 시작을 알리며 관객들을 압도하지요. 일출의 경외감과 그에 따른 벅찬 감정을 극대화하고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우주의 심연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또한 원시 인류가 동물의 뼈를 휘둘러 또 다른 뼈를 부수는 장면에는 도구의 사용으로 진일보한 인류의 도약을 묘사합니다. 이어서 공중에 높이 오른 동물의 뼈가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로 절묘하게 전환되는 장면은 계속되는 발전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곡이 그토록 중요한 인류의 진보라는 상징을 획득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곡의 모티브인 니체의 소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지니는 주제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신화에 대한 인간 이성과 합리의 승리를 장쾌하고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소설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새로운 인간의 원칙을 제시했지요. 작곡가 스트라우스는 철학의 음악화를 실험하여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장했던 것입니다. 즉, 니체의 초인 사상을 곡에 그대로 담아낸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주제곡으로 이용해 큐브릭은 관객들이 영화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공상 과학 영화가 모험이 아닌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던 이 영화는 그만큼 난해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 경험을 우선해서 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영화에 삽입된 곡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요? 천재적인 영상과 음악이 이끌어내는 진정한 예술성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