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은(사과계열09)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난 잠이 많다. 취미는 낮잠이요, 특기는 늦잠이다. 잠은 잘수록 는다는 말의 산 증인이다. 아무리 자도 졸리다. 시도 때도 없이 졸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알파벳은 z다. 난 참 잘 잔다. 그런데 미인은 잠꾸러기지만 잠꾸러기가 미인은 아니더라. 아무튼 어떠한 시공간에서도 내 눈꺼풀은 순순히 중력을 따른다. 내가 디즈니 동산에서 태어났으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명성을 날렸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돈암동 태생이다. 하루는 종일 자다가 일어나서 뜬금없이 이렇게 자다간 난 죽을 때까지 첫차를 한 번도 못 타볼 것이란 생각에 빠졌다. 이런 생각이 들고 나니 괜히 호기심이 생겨 첫차를 탈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밤을 새고 타기로 했다. 마을버스 첫차 시간도 컴퓨터로 찾아두었다. 요샌 컴퓨터에 별게 다나온다. 새벽 5시 20분. 첫 날은 실패했다. 4시 반에 10초만 눕겠단 생각으로 침대에 등을 댔다가 5초 쯤 후에 잠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충분히 잠을 보충한 후 재시도했다. 난 게임의 도움으로 잘 버텼다. 성공이었다. 5시쯤 옷을 입고 나가 정류장으로 갔다. 졸리지만 무지 상쾌했다. 정류장엔 부지런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나와 계셨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인사까지 할 뻔했다.

그리고 딱 5시 20분, 새벽의 어둠을 뚫고 내 생애 마지막 첫차가 도착했다. 맨 뒤에 타 창문을 열고 아직 자고 있는 세상을 구경했다. 첫차가 가르는 공기는 내가 오늘 처음 들이마시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원한 공기였다. 외국 여행 하듯이 창밖 세상을 샅샅이 관찰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종점에 가까워오자 승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시더니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꿈만 같았다. 모범택시보다 훨씬 멋진 첫차였다. 정말 근사했다. 한번 뿐이기에 더 근사했다. 또 타고 싶지만 또 탈 순 없다. 내 수면욕은 한 번은 졌지 두 번은 안 진다. 첫차에서 안 잔 걸로 난 만족한다.

슬슬 잠이 온다. 이제 잘 시간이다.